모든 시민은 기자다

국제관계의 변동상황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3국의 역사

[서평]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의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2>

등록|2012.06.14 17:21 수정|2012.06.14 17:21

책겉그림〈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 ⓒ 휴머니스트



"한반도의 북부를 통해 만주로 진출하려는 일본군에 대해 청군은 병력을 평양에 집결시켜 이를 저지하려 했다. 1894년 9월 중순에 평야 공격을 개시한 일본군은 청군의 도주로 쉽게 승리했다. 일찍부터 청과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국내 여론을 전쟁 추진으로 몰아갔던 일본에 비해 청은 전쟁 방침에 대해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전쟁에 돌입했다. 청군은 근대적 군대로서의 편제와 훈련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군기 문란과 지휘관의 부패, 군대 내의 팽배한 패배주의 등으로 일본에 패하고 말았다."(1권, 82쪽)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에 나오는 내용이다. 청·일 전쟁이 단순히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만 비롯된 게 아니라 그 사이에 끼어 있던 우리나라와도 이전부터 깊숙한 관계가 얽혀 있었고, 3국내의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등 다각적인 관점으로 청·일전쟁을 밝혀주고 있다.

이 책은 국제관계의 변동 상황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역사를 읽어내고 있는 게 특징이다. 제 1권에서는 명·청의 교체시기로부터 시작해, 청일전쟁과 그 후의 열강의 경쟁구도 변화, 1·2차 세계대전 속 동아시아의 민족운동, 냉전체제 형성과 변용, 그리고 냉전 체제 붕괴 후의 동아시아의 정치변동 등을 다루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쿠데타 직후부터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한 미국으로부터 아시아 반공 진영의 보루라는 가치를 재확인 받음으로써 지속적인 대한 원조를 끌어내고, 심각한 경제난을 해결하여 쿠데타를 정당화하려 했다.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자 도입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본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일본과 국교를 수립해야 했다. 일본의 정계와 재계도 고도성장을 뒷받침해줄 수출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과의 국교 수립을 바라고 있었다."(1권, 289쪽)

제 7장에서 다루고 있는 냉전체제의 변용에 관한 한일기본조약과 관련된 내용이다. 당시 한국 국민들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성실한 반성을 요구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반공안보 논리와 경제 논리만으로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강화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한국의 대학생들은 비준저지투쟁까지 전개했고, 경찰과 군은 힘으로 그 시위를 봉쇄했다고 한다. 그것 역시 한중일 3국의 공통된 인식임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만큼 일본도 그렇지만 한국의 수장도 과거사 청산에는 전혀 뜻이 없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라는 뜻이다.

책겉그림〈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2〉 ⓒ 휴머니스트



2권은 1권과 달리 '테마로 읽는 사람과 교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이른바 헌법을 비롯하여, 상하이·요코하마·부산의 동아시아 도시화 문제, 철도와 이민과 유학, 국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던 학교교육, 대중의 의식과 감정을 지배했던 미디어, 그리고 과거를 극복하고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갈 3국 체제에 대한 게 그것이다.

"일본에서 전쟁이 끝난 후 천황을 신성시하고 제국주의적 침략과 전쟁을 합리화하는 내용을 담은 교과서의 사용이 중지되었다. 그렇지만 교과서 제도를 개편해서 새로운 교과서를 금방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교과서 내용 가운데 문제가 되는 부분만을 지운 '먹칠 교과서'가 등장했다."(2권, 257쪽)

2권의 제 6장에 나오는 '전시하 초등교육'에 관한 내용이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중일 한국이 행한 교육은 국가주의적 경향이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총독부도 '황국신민 서사'를 제정하여 학생들에게 암창하게 했고, 중국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이 보급되면서 '마르크스 이론'이 교육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러던 교육이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교육 분야의 과제도 달라졌는데, 그 중 하나가 일본의 교과서가 달라진 것이다. 이른바 '먹칠 교과서' 말이다.

"2001년 일본 우익단체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통해 편협한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황국사관을 고취하는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다. 이 교과서가 일본 문부성 검정을 통과하면서, 동아시아는 다시금 역사 분쟁에 휘말렸다. 한중일 세 나라 지식인들이 일본 우익과 보수 세력의 역사 왜곡 행위를 비판하면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고, 한중일 역사하자, 교사, 시민단체 관계자는 일본 후쇼사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함께 비판하는 과정에서 2002년 3월 중국 난징에서 '역사 인식과 동아시아 평화 포럼'을 개최했다."(2권, 367쪽)

이른바 이 책이 나오게 된 궁극적인 배경임을 알려준 내용이다. 사실 이번 책도 2005년에 편찬한 <미래를 여는 역사>에 두번째로 내놓은 연구물이다. 이번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3국 역사학자들은 2006년 11월부터 현재까지 무려 19차례의 국제회의를 가졌다.

그에 따른 서신교환과 통역작업, 그리고 역사적 검증 고증 작업등 그들의 노고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직 하나다. 역사왜곡을 바로잡고, 평화적인 3국 동맹체제로 발돋움하기 위한 것 말이다. 이 책에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한다고 하니, 정말로 바람직한 일일 것 같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