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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전략, '연대임금'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②] 연대임금 패러다임과 다양한 교섭전략 채택을 제언하며

등록|2012.06.18 13:39 수정|2012.07.04 13:22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금융노조·보건의료노조 등이 참여하고 있는 '산별노조연석회의'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는 '2012 노동 있는 민주주의와 노사관계개혁을 위한 연속기고 -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 연중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2012년 권력교체기, 한국 사회에서 노동 있는 민주주의 담론 확산과 산별노조운동 진전을 위한 실질적인 공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산별노조운동이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던 시기가 있었다. 소박하게는 기업별 노조가 줄곧 범하던 사용자 종속성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부터 노동자가 기업별로 분열되어 있던 데서 벗어나 산업차원에서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광범위하게 존재했었다. 더불어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그러한 기대 속에는 안정된 일자리와 높은 수준의 임금에 대한 달콤한 희망도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 활동가나 전문가, 그리고 조합원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자와 노동운동이 헛된 꿈을 꾸었다가 깨어났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도리어 이는 산별노조운동이 한국 현실에 조응하여 치열하게 혁신을 고민하고 있음을 뜻한다.

사용자의 치열한 저항과 기업별 노조주의를 기반으로 한 노동법과 제도가 산별노조운동을 제약했다는 점을 굳이 들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한국에 적합한 산별노조운동의 모색은 불과 15여 년의 역사를 가진 산별노조운동이 만들어낸 성과이다. 기업별 노조운동으로는 현재 한국의 노동사회가 마주한 제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성과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산별노조운동의 혁신을 위한 모든 사안을 여기서 논의할 수 없다. 대신 이 글은 산별교섭 제도화와 관련하여 불분명한 몇 가지 이슈들을 다루고자 한다. 우선 한국의 산별교섭 제도화의 패러다임의 문제를 거론하고자 한다. 우리 산별교섭의 기원이나 역사, 그리고 활동양태를 보건대 독일, 스웨덴, 혹은 미국 등의 산별교섭과 다른 특수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특수성을 넘어 우리나라 산별교섭의 패러다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쉽게 발견하기가 어렵다.  

▲ 임금(인상) 지불능력 ⓒ 임상훈


위 그림은 독일과 스웨덴 금속노조의 산별교섭 패러다임을 설명하기 위해 그려본 것이다. 이 그림에서 산별교섭에 참가 혹은 산별협약에 적용되는 기업들의 임금인상 지불능력은 최저 0%에서 최고 10%까지이다. 중간 수준의 임금인상 여력이 있는 기업은 다수인 반면 최저율과 최고율의 인상 지불능력을 가진 기업은 소수라고 가정한다.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독일과 스웨덴 금속노조는 공통적으로 연대임금의 쟁취라는 산별교섭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즉, 두 나라 모두 산별노조는 임금인상 여력이 높은 기업의 노동자와 임금인상 능력이 적은 기업의 노동자가 동일한 수준의 연대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연대임금 패러다임은 미국 산별노조가 산업 수준에서 임금을 표준화하여 노동자들이 개별 기업에 고용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임금을 낮추는 것을 막고자 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독일과 스웨덴 노조는 연대임금을 현실화하는 데 서로 다른 교섭전략을 취한다. 독일 금속노조는 임금인상 지불능력이 취약한 기업에 속한 노동자의 고용을 고려하여 낮은 수준의 임금인상에 합의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스웨덴의 금속노조는 산업의 경쟁력을 고려하여 한계 기업의 도산과 소속 노동자의 실업을 초래하는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한다.

이러한 산별교섭의 전략은 독일의 노조로 하여금 실업수당이 중심이 되는 복지제도를 구축하게 하는 반면 스웨덴의 노조는 높은 세금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중심이 되는 복지제도를 구축하게 한다.

위와 같이 독일과 스웨덴, 그리고 미국의 경우와 달리 한국에서 산별교섭 패러다임이나 그를 위한 교섭전략은 아직 분명하게 형성되고 있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인다.

먼저 독일처럼 임금인상 지불능력이 낮은 기업의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산업 수준에서 낮은 임금인상에 합의할 경우 임금인상 지불능력이 높은 기업의 노동자들이 강하게 저항하게 되는데, 한국의 산별노조가 이들 노동자들을 설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산별노조가 대체로 임금인상 지불능력이 높은 기업별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되면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쉽다. 한국 산별노조가 주축 부대인 이들을 설득하기란 매우 어렵다.

한편, 스웨덴처럼 한계 기업의 도산을 초래할 수 있는 임금인상을 요구하기도 어렵다. 한국의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기 때문에 한계 기업의 도산은 소속 노동자의 실업으로 이어져서 이들이 받을 고통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산별노조운동의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산별교섭의 패러다임의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기는 곤란하다. 산별교섭의 패러다임은 연대임금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교섭 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산별노동조합이 산업정책과 복지제도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세우는 것도 전제된다.

그런데 연대임금의 패러다임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교섭 전략과 산업정책 대안, 그리고 복지제도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회피할 수 없는 논쟁이 존재한다. 그것은 산별노조운동의 핵심세력으로 누구를 설정하여야 하는가이다. 현재처럼 대기업 노동자들이 계속 핵심세력으로 존재하면서 산별교섭의 패러다임과 교섭 전략, 그리고 산업정책과 복지제도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 아니면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마련할 것인가?

본인은 후자의 입장을 지지한다. 해외의 사례나 한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연대임금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집단은 대체로 중소기업 노동자/비정규직 노동자 보다는 임금지급 능력이 높은 대기업 소속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경우 대기업이 도급관계에서 누리는 원청의 지위나 상품시장에서 차지하는 독점적 지위를 고려할 때 대기업 소속 노동자들이 산업정책에서 혁신적인 대안을 세울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산별교섭의 패러다임으로 연대임금이 채택된다 하더라도 산별중앙교섭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산업/업종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교섭방식을 활용하면서 한국적 교섭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그리고 금융노조의 산별교섭을 지켜보면 이들 노조들이 상대하는 사용자들은 임금인상지불능력에 기초하여 볼 때 아래 그림처럼 몇 가지 집단으로 유형화된다.

금속산업의 경우 주로 업종과 도급관계를 중심으로 사용자들이 상위 지불능력 기업, 중위 지불능력 기업, 하위 지불능력기업 등으로 나뉜다. 또한, 보건의료산업의 경우 대학/비대학과 수도권/지역, 그리고 민간/공공 등을 중심으로 사용자들이 서로 다른 지불능력을 보인다. 한편, 금융산업의 경우 은행/비은행, 민간/공공 등을 중심으로 상위 지불능력 기업, 중위 지불능력 기업, 하위 지불능력기업 등으로 사용자들이 구분된다. 물론 산업에 따라 상위-중위-하위간 차이가 달리 나타나기도 한다.

▲ 임금(인상) 지불능력 ⓒ 임상훈


이러한 발견이 주는 시사점은 노동조합이 연대임금 쟁취를 위하여 오직 산별중앙교섭에 집착하여 단 하나의 표준임금을 성사하는 데 전체 역량을 소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각 산업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이중교섭, 집단교섭, 대각선교섭 등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때로는 패턴교섭을 활용할 수도 있다. 노동조합의 전략적 선택에 의해 중단기적으로 서너 개의 소규모 연대임금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는 연대임금의 패러다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중장기적 연대임금의 형성을 위한 시도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 산별노조들이 듣기 꺼려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산별노조운동의 혁신과 산별교섭 패러다임의 모색에 있어서 산별노조의 정책개입은 매우 필요하다. 정책개입 여부에 대한 논의는 진부하다. 이제는 어떻게 정책개입을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지를 논의해야하는 시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법·제도·정책을 둘러싼 노사정 사이의 협의와 노사간 교섭이 단절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법이 협약 적용 확대를 거의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어서 일각에서 제안하는 '낮은 노조 조직률이지만 노동기본권이 정책을 통해 보장되어 높은 협약 적용률을 현실화한 노사관계로 한국 시스템이 전환'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현재 민주노총이 국가수준에서 노사정 사이의 정책협의에 참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수준에서의 정책협의 실험들을 만들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산업정책, 고용지원서비스정책, 직업훈련정책 등은 산별교섭을 보완할 수 있는 유효한 정책적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일부 자치단체에서 가능한 지역수준의 노사정 정책협의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기업의 영향력과 기업운영 방식을 볼 때 개별 기업의 틀에 머물면 쉽사리 노동자는 파편화되며 노동조합은 사용자에 종속된다. 이 와중에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물론이고 대기업 노동자 역시 노동사회의 시민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존엄성을 보장받을 여지는 거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산별노조운동은 활성화되어야 하며 산별교섭은 제도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조직노동이 홀로 산별교섭을 제도화하기란 매우 어렵다. 조직노동은 자기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시민사회와 연대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정치적 연대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산별교섭의 성과를 보다 많은 노동자가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위원장, 한양대학교 교수입니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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