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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사 "고려 때 탑" 안내판엔 "통일신라 탑"

당당한 국보 40호, 바로 옆에 옥산서원과 독락당도 있어

등록|2012.06.18 15:08 수정|2012.06.18 15:10

▲ 발굴 작업 완료 후의 정혜사지 13층석탑 ⓒ 정만진


정혜사지 13층 석탑,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854번지에 있다. 주소지가 '시'에서 '읍'으로 왔다가 다시 '리'로 내려가는 데서 짐작되듯이, 이 탑은 시내가 아니라 산골 속에 있다. 바로 인근에 우리나라 5대서원 중 한 곳인 이언적의 옥산서원과 독락당이 사적 154호와 보물 413호의 위용을 뽐내고 있는 탓에 지명도가 조금 위축된 느낌이 있지만, 이 탑은 국보 40호이다. 옥산서원과 독락당만 둘러보고 돌아가는 여행자가 있다면 큰 잘못이라는 말이다.

이 탑을 10여 년에 방문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다른 여행자들처럼 옥산서원과 독락당을 답사하러 간 길이었는데, 독락당의 계정(溪亭) 뒤로 올라갔다가 우연히 '발견'을 하여 구경을 하게 되었다. 일행 중에 역사교사가 있어 누군가가 질문을 하였고, '모양을 보니 고려 시대 탑 같은데...' 하는 대답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는 안내판이 없었던 듯하다. 지금처럼 탑 입구에 안내판이 있었다면 결코 그냥 지나칠 우리 일행이 아니었으니까.

그 후 줄곧 그 탑을 고려 시대의 작품으로 알고 지내왔다. 그러다가 지난 1월 17일, 지나치는 길에 들러보았다. 책을 통해 정혜사지 13층탑이 국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언젠가는 다시 한번 찾아보아야 할 문화재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날 찾았을 때에는 탑 앞에 공사 안내판이 뒹굴고 있었고, 주변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공사 안내판에는 '2011년 9월 28일부터 10월 17일까지 부지 내 유적 발굴 조사'를 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그보다 몇 달 뒤인 1월 중순에 갔는데도 그 지경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 부지 내 유적 발굴 중이던 때의 정혜사지탑 ⓒ 정만진



지난 6월 15일, 탑의 온전한 모습을 보기 위해 재차 방문했다. 과연 공사는 끝이 났고, 탑 둘레는 말끔했다. 지난 1월과는 달리 '완치'된 모습의 탑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차근차근 안내판을 읽어본 것이야 두말 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통일신라 시대인 9세기 경의 작품으로 보이는 이 석탑은 흙으로 쌓은 기단 위에 13층을 5.9m 높이로 세웠다. 1층 기단은 웅장하지만 2층부터는 너비와 높이가 급격히 작아져 마치 머리장식을 한 듯 보인다. 안내판은 층수, 기단, 형태 모두가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당시의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 정혜사지 13층탑 ⓒ 정만진

10여 년 전에 그 역사교사가 어째서 '고려 시대 탑 같은데...' 하고 진단을 했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다보탑, 석가탑, 감은사지 쌍탑, 경주박물관 뜰의 고선사터 삼층석탑 등 신라가 남긴 대표적 국보 탑들과 견주어 볼 때 그 어느 것과도 닮은 구석이 없다. 참으로 색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국보다.

지금은 옥산서원이 공사 중

인근의 옥산서원은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 때문인지, 지금은 한창 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언제 끝이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10월 중순 종료로  예고되었던 정혜사지 13층탑 주변 유적 발굴 작업이 석 달 뒤인 1월 중순에도 끝나지 않았듯이 말이다.

하지만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는 옥산서원 맞은편의 독락당과, 다시 그 뒤의 정혜사지 13층석탑이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제 여름이 무르익으면 계곡 물 속으로 떨어지는 녹음도 짙어질 터, 천혜의 '피서지'임을 뽐내는 옥산서원과 독락당 일대의 시원한 풍치도 즐기고, 신라의 것으로는 유례가 없는 13층 정혜사지 석탑도 구경하는 옥산리 답사는 여전히 1급 여행으로 추천할 만하다.
덧붙이는 글 6월 15일에 답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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