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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달콤 떡볶이, 뼈대 있는 음식이었네

[음식잡담4] 역사와 더불어 새 옷을 입는 음식

등록|2012.06.16 16:19 수정|2012.06.17 12:31
우리는 흔히 길에서 파는 음식을 불결한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먼지 날리는 길에서 파는 허접한 싸구려 음식에 불과할 뿐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는 이 음식들에는 사람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서민 경제의 바로미터이자 그 시대 문화와 풍속을 알게 해주는 가장 간편한 측정도구 역할을 하는 것도 길거리 음식이다. 이처럼 단지 먹는 것으로만 기능하지 않는 길거리 음식, 그 속에 담긴 발자취와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그 중 한국 길거리 음식의 대표주자인 떡볶이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떡볶이는 원래 붉은 색이 아니였어

길거리에서 파는 떡복이. ⓒ 조을영


맵지만 달콤한 떡볶이의 맛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 입맛을 자극해서, 신사건 숙녀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길에 서서 먹도록 만든다. 게다가 떡볶이가 가진 장점도 만만치 않다. 일단 가격이 싸고, 탄수화물 식품이라서 간편하게 배를 채울 수도 있다. 특히나 매콤한 맛을 선호하는 대다수 한국인에게 고추장이 들어간 떡볶이는 사랑받는 서민음식으로 자리 잡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특히나 떡볶이의 인기를 몰아 떡꼬치, 떡강정, 양념 떡튀김 등에 이르기까지 떡볶이를 응용한 아류작은 무궁무진해서 선택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떡볶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원래 이것은 궁중에서 새해를 맞아 차례를 지낼 때 함께 올리는 음식이었다. 조선 후기 홍석모(洪錫謨)가 쓴 <동국세시기>에서 떡볶이는 궁중에서 정월에 먹는 대표적인 요리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떡볶이는 우리가 지금 먹는 것처럼 벌건 양념이 아니라, 가래떡을 기본으로 해서 쇠고기나 표고버섯 같은 육류와 채소를  넣고 간장으로 볶은 것이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는 '궁중 떡볶이'라 부르며 격식 있는 자리에 내놓는 요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궁중 떡볶이는 잡채를 만드는 방식과도 유사해서 잡채에서 떡볶이가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궁중 음식 떡볶이는 이후 시대가 흘러 서민들 곁으로 바짝 다가온다. 1953년에 그 유명한 '마복림 떡볶이'가 등장하면서 고추장 양념의 떡볶이 시대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로서 떡볶이는 붉은색이란 고정관념이 생기기 시작했고, 길거리 음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 떡볶이는 개발 계기도 매우 드라마틱하다. 당시, 가족들과 여럿이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던 마복림 할머니는 가게 주인이 건네준 개업 떡을 집어먹느라 손을 뻗었는데 그것이 그만 시아버지의 짜장면 그릇 속으로 떨어졌다. 할머니가 짜장 묻은 그 떡을 급히 건져서 먹어보니 의외로 맛이 너무 좋아서 춘장에다 고추장을 섞어 떡볶이 양념을 개발하고, 이것을 떡과 함께 볶아서 '마복림 떡볶이'가 만들어졌다.

이젠 1인분에 만 원 넘는 떡볶이도 있답니다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 떡볶이와 튀김. ⓒ 조을영


그 여세를 몰아 1970년대부터는 즉석 떡볶이의 시대가 시작된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가게 간의 차별화 전략이 심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경쟁을 입증이라도 하듯 떡 하나만으로 승부를 걸던 시대를 넘어서서 어묵, 양배추, 라면사리, 계란, 만두 등 다양한 재료들도 함께 넣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떡만 볶아 먹는 것이 아니라 부재료가 더 화려해지는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198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는 신당동 떡볶이집의 서비스 방식에 큰 변모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뮤직박스 안에서 음악을 틀어주는 DJ가 출현한 것이다. <나와 같다면> 등의 노래를 히트시키는 가운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주장을 항상 강조하는 가수 김장훈은 신당동 떡볶이집에서 DJ를 했던 경험을 방송에서 자주 이야기 했다. 뮤직 박스 안에서 신청곡을 들려주면서 경우에 따라선 "아줌마! 4번 테이블에 파인애플 한 접시 추가요"라면서 중간마다 손님들의 단무지 챙기는 것 까지 관여했다고 우스갯소리로 회상했다.

이렇듯 떡볶이가 한 끼 외식거리가 되는 시대를 넘어서서, 2000년대 들어서서 부터는 또 다른 변화를 모색하기에 이른다. 치즈, 짜장, 생크림 같이 떡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동서양 소스를 넣은 퓨전 떡볶이가 생겨난 것이다. 그간에는 길거리 음식의 대표 주자였던 떡볶이는 이로서 양식 레스토랑에 주요 메뉴로 등극하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2010년대 들어서서는 떡볶이집의 브랜드 시대가 왔고, 스파게티를 떡볶이와 접목시킨 '까르보나라 떡볶이' 같은 것은 1인분에 5000∼1만3000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흔한 떡볶이를 왜 비싼 돈을 주고 먹느냐'는 의견도 팽배하지만, 비싼 재료만을 고집하며 특별한 맛을 선보인다는 것에서 브랜드 떡볶이의  차별화가 존재한다. 특히나 몇몇 브랜드의 경우 한국을 넘어서서 해외 지점을 늘리는 방식으로 떡볶이의 글로벌화에 힘쓰는 가운데, 새로운 메뉴와 차별화된 서비스로 떡볶이가 단지 길거리 음식만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떡볶이. 이것은 과연 무엇이기에 이토록 한국인과 더불어 생존하고 있는가? 맛도 맛이지만 그것이 가진 추억과 친근함이 우리에게 더욱 다가와서 그런 것은 아닐까? 특히나 서울 통인시장의 기름떡볶이 같은 경우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오로지 떡과 고추장만을 사용해서 기름에 볶아내는데도 손님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서민적인 시장의 분위기와 더불어 가마솥 뚜껑에 떡볶이를 볶아내는 풍경은 그 맛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하고, 화려한 떡볶이에 질린 이들이 소박한 맛과 멋을 찾아서 몇십 년을 거슬러 들르게 한다.

떡볶이의 아류작 떡꼬치. ⓒ 조을영


한 마디로 떡볶이는 일상의 음식이다. 신선로, 구절판 같이 화려한 한식 요리도 많지만 우리는 그것을 일상에서 흔히 즐기지는 않는다. 반면에 떡볶이는 분명히 궁중의 격식 있는 명절요리였음에도 시대와 더불어 그 변화를 거쳐서 우리의 일상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 변화의 주축에는 서민경제와 문화가 함께 했다는 것도 매우 이색적이다. 지금껏 수많은 궁중요리들이 현대로 계승돼 왔지만 서민과 더불어 변화무상한 역사를 거치고, 더 나아가 세대를 뛰어넘어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경우는 떡볶이가 유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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