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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30 여 년 전 책을 마음대로 읽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이라는 월간 잡지

등록|2012.06.19 21:44 수정|2012.06.19 21:45

▲ 지금도 서가에 꽂혀있는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입니다. 어쩌면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책을 빼서 펼쳐보기도 합니다. 어떤 글을 읽어도 지금 막 나온 책처럼 신선하고 재미있습니다. ⓒ 박현국


1980년 한국에서는 책을 마음대로 읽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일당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뿌리깊은나무>,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등 여러 잡지와 책이 출판금지 되거나 판매금지를 당했습니다.

당시 왜 이런 책들이 출판금지나 판매 금지를 당해야하는가 의문을 가지고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문학과지성>이나 <작과비평>은 사회학적 문학 연구 방법론에 입각하여 쓰인 책입니다. 그래서 사회현상에 대해서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빈곤층이나 저소득층의 생활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인간다운 사회, 이상적인 사회, 바람직한 사회는 어떠해야 하는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김성동은 「만다라」라는 소설에서 직접 1970년대 한국이 경제성장률이 10퍼센트를 달릴 때에도 노동자의 소득 증가율은 그 반절 5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비판이 당시 군부세력에게는 자신들의 정치에 대한 무능함을 공격하거나 비난한다고 두려워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 책 가운데 「뿌리깊은나무」가 제게는 많은 영향을 주었다. 「뿌리깊은나무」는 한창기 선생님이 만든 월간잡지입니다. 잡지로서 당시 한국의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잡지로서 한국 사회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멋진 책이었습니다.

「뿌리깊은나무」의 여러 가지 효과와 영향은 지금도 우리사회에 남아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전통문화와 예능을 상품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판소리나 민요, 공옥진의 병신춤들을 발굴하여 정기 공연을 실시하고 상품화시킨 것입니다.

「뿌리깊은나무」의 이러한 노력은 당시 우리 것이지만 우리가 제대로 가치를 알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것들을 찾아서 자리매김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뿌리깊은나무」는 여러 전문가들이 각 분야의 현재를 진단하기고 하고, 사라져가는 귀한 우리 생활사를 찾아서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뱀을 잡는 땅꾼을 비롯하여 소를 잡는 백정, 무당 등등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의 생활과 사상을 학문적으로 정리한 처음이자 마지막 글이었습니다. 이런 글들은 다시 모아서 책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뱀을 잡는 땅꾼은 단순히 뱀을 잡아서 보신용으로 먹거나 파는 사람이 아니라 뱀과 하나가 되어 뱀의 영혼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었고, 소를 잡는 백정은 소를 죽여서 고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소의 영혼을 저세상으로 안내하는 사제이자 그 영혼을 위로해주는 무당이기도 했습니다.

「뿌리깊은나무」에는 맨 마지막에 단편소설을 실었습니다. 사회현상이나 한국 문화에 대해서 치열한 내용의 글을 싣고 맨 마지막에 소설을 배치한 것은 여러 가지 뜻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현실과 이상, 현실과 진실의 문제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더불어 삶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뿌리깊은나무」는 철저히 한글전용을 실천하기도 했습니다. 책 내용에 나오는 숫자까지도 철저히 우리 글, 한글로 쓰기도 했습니다. 잡지 출판에 따라서 형식적으로 써야하는 숫자 이외에 모든 글자를 한글로만 썼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발행인이셨던 한창기 선생님의 고집이라고 들었습니다.

1976년 3월 창간호를 발간한 「뿌리깊은나무」는 1980년 8월 폐간될 때까지 4년 반 동안 모두 53권을 발행(1980년 6,7월 합병호)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이후 「뿌리깊은나무」를 만들던 직원들은 「한국의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각 도별 향토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후 「뿌리깊은나무」라는 회사에서는 1984년 11월 「샘이깊은물」이라는 월간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76년3월부터 만든 「뿌리깊은나무」가 남성과 사회를 중심으로 만든 책이라고 한다면 「샘이깊은물」은 여성과 가정을 중심으로 만든 책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샘이깊은물」은 2001년 11월을 마지막으로 휴간하였습니다.

처음「뿌리깊은나무」를 찾아서 읽을 때에는 부산의 헌책방이나 고물상들을 찾아다니면서 찾아서 읽었습니다. 그때는 막 나오던 때라 그래서인지 창간호부터 폐간될 때까지 모두 찾았습니다. 지금도 늘 서가에 꽂힌 「뿌리깊은나무」를 보면서 이 잡지를 처음 창간한 한창기 선생님의 깊은 뜻을 생각하고는 합니다.

비록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을 만든 한창기 선생님은 저세상에 가시고 없습니다. 더 이상 우리 땅에서 그러한 월간 잡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을 통해서 이루고자 했던 한창기 선생님의 뜻과 가치는 아직도 우리 문화와 사회 속에서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서정주의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쩌면 나를 키운 것은 9할이 「뿌리깊은나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창기 선생님은 가셨지만 당시 편집에 관여하셨던 설호정, 김당 등의 이름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박현국(朴炫國) 기자는 류코쿠(Ryukoku, 龍谷) 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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