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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싸였던 '만화 원고료' 공개해보니...

[주장] 만화가, '노동 문제 제기'로 뭉쳐야 한다

등록|2012.06.25 15:39 수정|2012.06.25 15:39

▲ 2012년 3월, 만화가들이 뭉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일부 웹툰에 대한 예비 청소년 유해매체물 지정에 반대하는 집단 퍼포먼스를 벌였다. 원고료 문제에 있어서도 올해 초와 같이 똘똘 뭉쳐 맞서야 할 것이다. ⓒ 방심위 심의 반대를 위한 범만화인 비상대책위원회


최근 만화계에 작지만 큰 사건이 발생했다. <무일푼 만화교실> <툰(TOON)>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고 현재 일본에서 활동 중인 만화가 박무직이 지난 7일, 자신의 블로그에 일본에서 만화를 연재하고 받는 원고료를 공개하고, 동료 만화가들의 원고료 공개도 촉구한 것이다(http://blog.naver.com/boichi/90144878805). 그는 16일 또 한 번 글을 올려 "원고료와 수입이 선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선배 작가 의견에 동의했고, 그 판단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원고료 공개 이유를 밝혔다.

박 작가의 원고료 공개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50여 명의 한국 만화가들이 자신의 실명을 걸고서 만화잡지나 웹툰, 일본의 만화 매체에서 받는 원고료를 밝혔다. 특히 한국에서 활동하는 만화가들은 심혈을 기울여서 만화를 그려도 노력에 걸맞지 않는 고료를 받는 사정을 구구절절 토해내 많은 만화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느 작가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웹툰을 연재 중"이라며 "어시스트를 쓸 엄두가 안 나서 혼자 만화를 그리지만 연재를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났는데도 어떤 식으로 원고료가 책정되는지 모른다"고도 했다.

분명 박 작가를 포함한 많은 만화가들이 출판사나 포털로부터 받을 불이익을 감수하고 집단적으로 자신의 고료를 공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다른 분야처럼 만화가들 역시 원고료 공개를 꺼려한다. 업계 내부에서 알음알음 '어떤 만화가는 어디서 얼마를 받았더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퍼지는 게 전부다. 이번 원고료 공개가 있은 후에야 다른 만화업계 종사자나 독자들은 비로소 현재 한국 만화가들이 얼마나 벌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은 일본도 비슷한 실정

하지만 아쉽다. 원고료를 밝혔는데,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대신 원고료 공개의 물꼬를 튼 박무직 만화가나 이에 동참한 만화가들 대부분이 "한국에서는 만화를 그려도 돈을 많이 못 받으니 일본으로 건너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어찌보면 당연한 생각이다. 평생 쥐꼬리만한 돈을 받느니, 쉽지 않더라도 돈을 많이 벌면서 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개인 차원의 해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국 만화계 전체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 또 만화가 개인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을지라도, 한국의 모든 만화가가 일본에 건너가서 연재를 할 수 없다. 연재 기회를 잡는 것도 한정적이다.

더군다나 일본에서도 만화가의 생계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09년 8월, 일본 고단샤의 성인 대상 월간 만화잡지 <모닝 2>에서 <군청>(羣青)을 연재하던 만화가 나카무라 친(中村珍)은 자신의 블로그(http://ching.tv/)에 원고료와 지출 내역을 공개했다. 그 내역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한 달에 약 40페이지를 그리고 약 38만 엔을 받지만, 작업을 도와주는 어시스턴트를 고용하고, 재료를 구입하는 비용 등으로 돈을 쓰다 보니 적게는 1만 엔, 많게는 65만 엔까지 적자가 났다.

그가 연재하는 만화잡지가 한국처럼 잘 안 팔리거나, 작가의 수준이 떨어져서였을까? <모닝 2>는 일본의 '3대 소년만화잡지'(슈에이샤 <주간 소년 점프>, 고단샤 <주간 소년 매거진>, 쇼칵간 <주간 소년 선데이>)만큼 몇 십만 부씩 발행하는 잡지는 아니지만 작품성을 인정받는 만화를 연재하는 성인 대상 잡지 중에서는 잘 팔리는 편이다. 나카무라 친 역시 2005년에 고단샤가 주최하는 치바 테츠야상 일반 부문 가작에 입선하고, 2006년에는 슈에이샤에서 주최한 주간 <영 점프> 월례 만화 그랑프리 월간 베스트상을 수상한 실력 있는 만화가다. 그런데도 매달 적자를 보기 일쑤다.

인기 있는 만화가는 다를까? 한국에서 <해원> <헬로우 블랙잭>으로 유명한 만화가 사토 슈호(佐藤秀峰) 역시 비슷한 시기에 블로그에 '원고료 수입만으로는 적자가 나서 단행본이 많이 팔려야만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드래곤볼>의 토리야마 아키라나 <원피스>의 오다 에이치로 같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끄는 작품을 연재하는 만화가가 아닌 이상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은 일본도 비슷한 실정이다.

"원고료 10여년째 동결" "생계 유지하기엔 절망스러운 수준"

사실 한국 만화계에서 원고료를 둘러싼 갈등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현재 절필 중인 만화가 양여진은 2001년 만화웹진 <두고보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출판사가 원고료는 한 달, 인세는 최소 반년씩 늦게 지급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2010년 인기 만화 <열혈강호>의 그림을 담당하는 만화가 양재현은 "원고료가 10여 년 전부터 동결되었으며 그나마 받는 원고료도 어시스턴트에게 비용을 지불하거나 재료비를 사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다"고 밝혔다.

드라마 <무사 백동수>의 원작인 만화 <야뇌 백동수>의 글 부문을 맡은 만화가 이재헌은 "작품이 연재 중인 잡지에서 인기를 얻어도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료가 지급된다"며 "이 돈을 그림 작가와 나눠야 하기 때문에 더욱 절망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즉, 박무직의 제안으로 시작된 '원고료 공개'는, 만화가들이 지난 십여 년간 원고료에 분노했던 것이 쌓이고 쌓여 터진 결과다. 이제는 매듭을 지어야 할 문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 만화가의 처지는 골프장 캐디나 학습지 방문교사 등의 '특수고용노동자'와 비슷하다. 개인사업자로 사업장과 계약을 맺어 생활하는 특수고용노동자처럼 만화가 또한 출판사와 계약을 맺어 지급되는 원고료와 인세로 살아간다. 임금을 제때 못 받은 캐디나 학습지 교사처럼, 만화가도 원고료·인세가 밀리거나 못 받아도 각 지역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낼 수 없다. 오로지 민사 소송을 통해서 해결이 가능하다. 계약기간이 남은 상황에서 연재 중인 잡지가 중간에 휴·폐간되거나 단행본이 안 팔린다는 이유 등으로 잡지에서 잘려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가 없다. 구두계약을 맺었거나 출판사로부터 받을 불이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힘으로 풀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 만화가들의 대응은 어떠한가. 1997년 청소년보호법 사태나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 일부 웹툰을 '예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한 것에 만화가들이 합심해 대응한 적은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원고료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출판사에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 만화계의 양대 단체인 한국만화가협회와 우리만화연대에서 만화가 표준계약서를 만들고, 작년 만화진흥법 공청회에서 만화가들의 현재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원고료를 조사한 것이 그나마 성과일 따름이다.

'한국의 만화가들이여, 단결하라'... 뭉쳐야 산다

만화를 지원하는 정부·지자체 기관들 역시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04년부터 출판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원고료를 지원한 적이 있지만 선정되는 작품은매년 10~20편 내외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지원대상인 작품에 원고료가 늦게 지급되는 등 잡음이 있었다. 지난 2010년 경기도 부천시 산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작가 40명의 소득현황을 조사하기도 했지만, 후속사업은 이듬해 '내 고료 제대로 받는 법' 특강 정도였다. 한국만화의 발전을 외치던 기관들조차 원고료 문제는 건들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원고료는 노동 외에도 다양한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한국을 포함한 메이저 출판시장의 장기 불황, 청소년보호법 등의 문화 규제, 총판과 대여점으로 상징되는 왜곡된 만화 유통환경, 쉽게 해결되지 않는 불법 공유, 만화 출판사의 판매 전략 부재 등도 만화가의 원고료 상승을 막는 중대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규제가 사라지고, 만화 유통환경이 개선되고, 불법 공유가 사라져야만 만화가들의 원고료가 올라갈 수 있는 것인가. 시장 환경과 소비자의 인식으로 핑계를 삼기에는 십여 년의 세월은 너무나도 길었다. 이제 적극적으로 대응할 차례이다. 한국만화가협회나 우리만화연대 같은 기존의 만화가단체를 중심으로 뭉치거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나 민주노총의 전신이었던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같은 '준노조' 형태의 단체를 새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만화 진흥기관 또한 만화가의 노동권 문제를 적극 다뤄야 할 것이다. 권리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주어지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투쟁할 때 비로소 권리를 찾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참고자료]

김낙호(capcold), <만화 창작인 길드형 노조를 제안하며 (초기 노트)>, 2012년 2월 21일
김낙호(capcold), <만화에서 평론, 논의를 재방문하기>, 2011년 12월 26일
박관형(halim), <만화가에게 출판사는 어떤 존재인가… 아니면 출판사에게 만화가는…?>, 만화웹진 <두고보자> 4호, 2001년 6월
박인하, 김은권, <만화가, 얼마나 벌어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매거진 만화규장각>, 2010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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