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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중인 친구... 뭐가 그를 넉넉하게 만들었을까

깨어짐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안을 수 있다

등록|2012.06.21 17:16 수정|2012.06.21 18:09
'친구들 다 준비 됐네. 마을 앞 다리 밑에서 보세.'

국민(초등)학교 동창회 총무가 보낸 문자메시지다. 졸업생 43명인 촌놈들이 1년에 한 번 모인다. 이번 모임은 천렵(川獵·냇물에서 고기를 잡음)을 겸하자고 한다.

▲ 제일 앞쪽에서 손을 흔드는 친구가 항암치료 중인 친구다. ⓒ 이경모


지난 10일, 먼저 도착해서 점심식사 준비로 분주한 친구들과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하며 반가운 인사를 했다. 친구들 모두가 반가웠지만 이런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내가 먼저 찾는 친구가 둘 있다. 간암 환자로 항암치료중인 친구와 간경화로 복수를 정기적으로 빼내는 친구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친구는 기운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복수 때문에 장시간 외출이 어려운 친구는 이날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어렸을 적에 달리기도 잘하고 마을 앞 냇가에서 수영도 곧 잘하며 물고기도 잘 잡았던 친구들이다.

고향에 온 김에 예비사위와 함께 왔다는 친구, 내년에는 할머니가 된다는 친구,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걱정이라는 친구, 인플란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친구, 아들 녀석이 저 세상으로 간 지 3년이 됐지만 슬픈 그림자가 여전히 얼굴에 남아 있는 친구, 이미 고인이 되어 영영 볼 수 없는 친구도 있다. 대화중에는 세상 희로애락이 다 묻어있다.

▲ 5.18묘역에 묻혀 있는 친구의 묘다. ⓒ 이경모


식사가 끝나고 총무가 재무보고를 하면서 일순간 친구들이 울컥했다.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6년째 간경화로 투병 중인 친구에게서 받아 온 15만 원에 대한 보고를 들으면서다.

설명인즉 이랬다. 모임 이틀 전에 그 친구는 총무에게 전화를 해서는 다음날 몇 시간 운전을 부탁했다고 한다. 간암치료를 받고 있는 친구가 모임 하루 전에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친구와 5·18 묘역에 묻힌 친구도 찾아가보고 동병상련인 친구를 위로도 해주고 싶어서였단다.

그렇지만 장거리 이동과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결국 만나고 싶었던 친구와 동행을 하진 못했지만 총무는 그 친구와 함께 5·18 묘역에 들러 친구에게 술 한 잔 올리고 점심도 함께 했다.

그 친구는 점심식사 값을 계산하고는 총무에게 하얀 봉투를 내밀며 15만 원 중에 10만 원은 고마운 친구들에게 동창회 찬조금으로 내주고, 5만 원은 항암치료 중인 친구에게 맛있는 것 사먹으라며 전달해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넉넉한 형편도 아닌데다가 긴병으로 정신적 경제적으로 많이 지쳐있을 텐데 그런 마음이 어디서 생겼을까.

"경모네. 자주 찾아보지 못해서 미안해. 친구 덕분에 모임 잘 치렀고 자네 때문에 친구들 감동 먹었어."
"항암제가 독해서 많이 힘들 텐데 친구를 위로도 해주고, 고인이 된 친구를 찾아가 함께 열심히 치료하자고 다짐도 하고, 마음을 비우고 병원 치료와 식이요법을 병행하라고 말하고 싶었네. 또 늘 친구들에게 신세만 진 것 같아 적지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

"내년 모임에는 꼭 함께 가세."

동창회 모임 다음 날 친구와 전화로 나눈 대화다.

매일 대소변 이뇨제를 먹고 한 달에 한 번 병원을 찾으며 투병을 하고 있지만 전화 통화 내내 웃음을 잃지 않은 친구의 모습에서 병이 호전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깨어짐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안을 수 있고 고통을 견뎌낼 때 삶의 향기를 발하는 듯하다.

고향친구들은 베이비붐시대에 태어나 배고픈 시절도 맛 봤고, 낀 세대로 자식도 키우고 부모님도 모셔야하며 노후도 준비해야하는 숨 막힌 세대지만 아련한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재포장하며 떠들고 신나게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 윷놀이에 한창인 친구들. 한 판에 1만원 . 딴 돈은 전액 찬조금. ⓒ 이경모


물장구치며 놀았던 그리운 고향 냇가에서 윷놀이도 하고 직접 잡은 물고기로 찜도 해먹고 다슬기까지 넣어 끓인 어죽은 정말 맛있었다.

"올 가을 제주도 여행을 추진하겠습니다."

회장의 특별 약속에 친구들 입모양이 똑 같다.

늘 서둘러 가는 시간에 추억하나를 한 겹 덧댈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지만, 행복한 순간순간에도 자주 눈에 아른거리는 아픈 친구들 모습은 지울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투병중인 친구들과 제주도에 함께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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