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중인 친구... 뭐가 그를 넉넉하게 만들었을까
깨어짐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안을 수 있다
'친구들 다 준비 됐네. 마을 앞 다리 밑에서 보세.'
국민(초등)학교 동창회 총무가 보낸 문자메시지다. 졸업생 43명인 촌놈들이 1년에 한 번 모인다. 이번 모임은 천렵(川獵·냇물에서 고기를 잡음)을 겸하자고 한다.
지난 10일, 먼저 도착해서 점심식사 준비로 분주한 친구들과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하며 반가운 인사를 했다. 친구들 모두가 반가웠지만 이런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내가 먼저 찾는 친구가 둘 있다. 간암 환자로 항암치료중인 친구와 간경화로 복수를 정기적으로 빼내는 친구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친구는 기운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복수 때문에 장시간 외출이 어려운 친구는 이날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어렸을 적에 달리기도 잘하고 마을 앞 냇가에서 수영도 곧 잘하며 물고기도 잘 잡았던 친구들이다.
고향에 온 김에 예비사위와 함께 왔다는 친구, 내년에는 할머니가 된다는 친구,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걱정이라는 친구, 인플란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친구, 아들 녀석이 저 세상으로 간 지 3년이 됐지만 슬픈 그림자가 여전히 얼굴에 남아 있는 친구, 이미 고인이 되어 영영 볼 수 없는 친구도 있다. 대화중에는 세상 희로애락이 다 묻어있다.
식사가 끝나고 총무가 재무보고를 하면서 일순간 친구들이 울컥했다.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6년째 간경화로 투병 중인 친구에게서 받아 온 15만 원에 대한 보고를 들으면서다.
설명인즉 이랬다. 모임 이틀 전에 그 친구는 총무에게 전화를 해서는 다음날 몇 시간 운전을 부탁했다고 한다. 간암치료를 받고 있는 친구가 모임 하루 전에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친구와 5·18 묘역에 묻힌 친구도 찾아가보고 동병상련인 친구를 위로도 해주고 싶어서였단다.
그렇지만 장거리 이동과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결국 만나고 싶었던 친구와 동행을 하진 못했지만 총무는 그 친구와 함께 5·18 묘역에 들러 친구에게 술 한 잔 올리고 점심도 함께 했다.
그 친구는 점심식사 값을 계산하고는 총무에게 하얀 봉투를 내밀며 15만 원 중에 10만 원은 고마운 친구들에게 동창회 찬조금으로 내주고, 5만 원은 항암치료 중인 친구에게 맛있는 것 사먹으라며 전달해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넉넉한 형편도 아닌데다가 긴병으로 정신적 경제적으로 많이 지쳐있을 텐데 그런 마음이 어디서 생겼을까.
"경모네. 자주 찾아보지 못해서 미안해. 친구 덕분에 모임 잘 치렀고 자네 때문에 친구들 감동 먹었어."
"항암제가 독해서 많이 힘들 텐데 친구를 위로도 해주고, 고인이 된 친구를 찾아가 함께 열심히 치료하자고 다짐도 하고, 마음을 비우고 병원 치료와 식이요법을 병행하라고 말하고 싶었네. 또 늘 친구들에게 신세만 진 것 같아 적지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
"내년 모임에는 꼭 함께 가세."
동창회 모임 다음 날 친구와 전화로 나눈 대화다.
매일 대소변 이뇨제를 먹고 한 달에 한 번 병원을 찾으며 투병을 하고 있지만 전화 통화 내내 웃음을 잃지 않은 친구의 모습에서 병이 호전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깨어짐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안을 수 있고 고통을 견뎌낼 때 삶의 향기를 발하는 듯하다.
고향친구들은 베이비붐시대에 태어나 배고픈 시절도 맛 봤고, 낀 세대로 자식도 키우고 부모님도 모셔야하며 노후도 준비해야하는 숨 막힌 세대지만 아련한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재포장하며 떠들고 신나게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물장구치며 놀았던 그리운 고향 냇가에서 윷놀이도 하고 직접 잡은 물고기로 찜도 해먹고 다슬기까지 넣어 끓인 어죽은 정말 맛있었다.
"올 가을 제주도 여행을 추진하겠습니다."
회장의 특별 약속에 친구들 입모양이 똑 같다.
늘 서둘러 가는 시간에 추억하나를 한 겹 덧댈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지만, 행복한 순간순간에도 자주 눈에 아른거리는 아픈 친구들 모습은 지울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투병중인 친구들과 제주도에 함께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국민(초등)학교 동창회 총무가 보낸 문자메시지다. 졸업생 43명인 촌놈들이 1년에 한 번 모인다. 이번 모임은 천렵(川獵·냇물에서 고기를 잡음)을 겸하자고 한다.
▲ 제일 앞쪽에서 손을 흔드는 친구가 항암치료 중인 친구다. ⓒ 이경모
지난 10일, 먼저 도착해서 점심식사 준비로 분주한 친구들과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하며 반가운 인사를 했다. 친구들 모두가 반가웠지만 이런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내가 먼저 찾는 친구가 둘 있다. 간암 환자로 항암치료중인 친구와 간경화로 복수를 정기적으로 빼내는 친구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친구는 기운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복수 때문에 장시간 외출이 어려운 친구는 이날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어렸을 적에 달리기도 잘하고 마을 앞 냇가에서 수영도 곧 잘하며 물고기도 잘 잡았던 친구들이다.
고향에 온 김에 예비사위와 함께 왔다는 친구, 내년에는 할머니가 된다는 친구,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걱정이라는 친구, 인플란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친구, 아들 녀석이 저 세상으로 간 지 3년이 됐지만 슬픈 그림자가 여전히 얼굴에 남아 있는 친구, 이미 고인이 되어 영영 볼 수 없는 친구도 있다. 대화중에는 세상 희로애락이 다 묻어있다.
▲ 5.18묘역에 묻혀 있는 친구의 묘다. ⓒ 이경모
식사가 끝나고 총무가 재무보고를 하면서 일순간 친구들이 울컥했다.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6년째 간경화로 투병 중인 친구에게서 받아 온 15만 원에 대한 보고를 들으면서다.
설명인즉 이랬다. 모임 이틀 전에 그 친구는 총무에게 전화를 해서는 다음날 몇 시간 운전을 부탁했다고 한다. 간암치료를 받고 있는 친구가 모임 하루 전에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친구와 5·18 묘역에 묻힌 친구도 찾아가보고 동병상련인 친구를 위로도 해주고 싶어서였단다.
그렇지만 장거리 이동과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결국 만나고 싶었던 친구와 동행을 하진 못했지만 총무는 그 친구와 함께 5·18 묘역에 들러 친구에게 술 한 잔 올리고 점심도 함께 했다.
그 친구는 점심식사 값을 계산하고는 총무에게 하얀 봉투를 내밀며 15만 원 중에 10만 원은 고마운 친구들에게 동창회 찬조금으로 내주고, 5만 원은 항암치료 중인 친구에게 맛있는 것 사먹으라며 전달해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넉넉한 형편도 아닌데다가 긴병으로 정신적 경제적으로 많이 지쳐있을 텐데 그런 마음이 어디서 생겼을까.
"경모네. 자주 찾아보지 못해서 미안해. 친구 덕분에 모임 잘 치렀고 자네 때문에 친구들 감동 먹었어."
"항암제가 독해서 많이 힘들 텐데 친구를 위로도 해주고, 고인이 된 친구를 찾아가 함께 열심히 치료하자고 다짐도 하고, 마음을 비우고 병원 치료와 식이요법을 병행하라고 말하고 싶었네. 또 늘 친구들에게 신세만 진 것 같아 적지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
"내년 모임에는 꼭 함께 가세."
동창회 모임 다음 날 친구와 전화로 나눈 대화다.
매일 대소변 이뇨제를 먹고 한 달에 한 번 병원을 찾으며 투병을 하고 있지만 전화 통화 내내 웃음을 잃지 않은 친구의 모습에서 병이 호전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깨어짐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안을 수 있고 고통을 견뎌낼 때 삶의 향기를 발하는 듯하다.
고향친구들은 베이비붐시대에 태어나 배고픈 시절도 맛 봤고, 낀 세대로 자식도 키우고 부모님도 모셔야하며 노후도 준비해야하는 숨 막힌 세대지만 아련한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재포장하며 떠들고 신나게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 윷놀이에 한창인 친구들. 한 판에 1만원 . 딴 돈은 전액 찬조금. ⓒ 이경모
물장구치며 놀았던 그리운 고향 냇가에서 윷놀이도 하고 직접 잡은 물고기로 찜도 해먹고 다슬기까지 넣어 끓인 어죽은 정말 맛있었다.
"올 가을 제주도 여행을 추진하겠습니다."
회장의 특별 약속에 친구들 입모양이 똑 같다.
늘 서둘러 가는 시간에 추억하나를 한 겹 덧댈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지만, 행복한 순간순간에도 자주 눈에 아른거리는 아픈 친구들 모습은 지울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투병중인 친구들과 제주도에 함께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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