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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연대와 비정규 미조직 사업의 틀, '산별노조'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③] 금속노조 경주지부의 지난 10년

등록|2012.06.25 10:41 수정|2012.07.04 13:23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금융노조·보건의료노조 등이 참여하고 있는 '산별노조연석회의'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는 '2012 노동 있는 민주주의와 노사관계개혁을 위한 연속기고 -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 연중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2012년 권력교체기, 한국 사회에서 노동 있는 민주주의 담론 확산과 산별노조운동 진전을 위한 실질적인 공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시발점으로 다시 일어난 노동운동은 98년 IMF을 거치면서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민주노총을 탄생시키면서 두 가지의 큰 기치를 내걸었다. 첫 번째는 산별노조 건설이고, 두 번째는 정치세력화이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결정으로 각 연맹마다 산별노조 건설에 온 힘을 기울여 2001년 2월 8일 역사적인 금속노조가 출범하였다. 그러나 금속연맹의 대공장들은 합류가 되지 않아 15만 조합원들 중 3만4000명으로 축소 출발하였고, 경주지부 역시 8개 사업장 1500여 명의 조합원으로 시작하였다.

경주지부는 23개 사업장 3300여 명까지 조직이 확대되는 과정도 있었고, 정권의 비호 아래 조직적 탈퇴가 이어져 1200여 명의 조합원이 이탈하는 시련의 시기도 있었다. 금속노조 경주지부가 지역의 미조직 비정규 사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연대는 어떠했는지 10년을 되돌아본다.

지역연대를 통해 이루어낸 값진 승리들

2001년 2월 8일 이후 경주지역은 기존의 민주노총 지역조직(경주시협의회) 중심의 사업형식에서 산별노조 지역지부의 새로운 체계가 만들어짐에 따라 민주노총 사업 중첩과 역할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어려운 시기였다. 왜냐면 경주시협의회 성원의 다수가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이었으며, 실천 또한 금속 사업장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산별노조 초반기(2001년 2월~2005년 9월)에는 조직체계 수립과 산별노조 교섭형식을 갖추는 데 집중하는 시기라 미조직 조직화 사업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지역의 비정규투쟁과 연대투쟁은 진행되었다. 비정규투쟁의 대표적인 것은 2004년 불법파견 진정투쟁이었다. 당시 금속노조 경주지부는 집단교섭 요구안으로 불법파견금지에 대한 내용을 요구안으로 확정하였고, 8개 사업장 모두 집단적으로 불법파견 고소고발 투쟁을 진행했다. 산별노조가 아닌 개별사업장이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조합원 1600여 명 중 450여 명이 사내하청 소속 노동자일 정도로 파급력이 높았다.

노동조합 요구로 펼쳐진 교섭에서는 낮은 수순의 합의(사내하청 확대금지 등)를 하였고, 불법파견으로 확정된 7개 사업장은 특별교섭을 진행하여 합의를 하였다. 비정규직 관련 투쟁이 쉽지 않아 교섭에서 많은 성과를 남기진 않았지만 개별사업장에선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내용을 공론화하고 낮은 수준의 합의라도 할 수 있었다.

경주지역에서 금속노조 경주지부가 주도적으로 미조직 조직화 사업을 진행하던 중 2005년 중소 영세사업장 조직화를 목표로 경북일반노조가 출범하였다. 제조업을 제외한 청소, 경비 등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해서이다. 경주지역에서 제조업은 금속노조, 비제조업은 일반노조가 조직화 하는 양날개를 펴는 시기이다. 일반노조가 산별노조와 같은 구조와 형식을 취하진 않지만 조직화 하는 목표와 과정은 기업별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경북일반노조가 조직화 하면서 투쟁이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 연대는 지역에 큰 조직인 금속노조 경주지부도 함께 하였다. 2005년 7월 골프장 노동자가 일반노조에 가입하여 해고된  투쟁이 있었는데 금속노조 경주지부는 임단투 집회를 그 사업장에서 진행했다. 4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골프장 현장위원회에게는 1500여 노동자가 집회를 열어준 것만 해도 엄청난 힘이 되었고 이어 교섭을 타결할 수 있었다.

2005년 8월 경북일반노조에 가입한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집단해고를 당했다. 여느 대학과 마찬가지로 용역업체 소속이었던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린 처지였고 천막농성을 시작으로 그해 10월 26일 경주지부가 중심이 된 지역총파업을 단행했다. 지역노동자들의 연대파업이 현실로 진행되자 동국대학교도 다시 재계약을 하는 것으로 이 투쟁 또한 마무리될 수 있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해고에 맞서 지역의 연대파업이 만들어낸 값진 성과였다.

금속노조는 단일조직으로 소속 사업장의 문제로 투쟁하는 것은 연대투쟁이라 하지 않지만 2006년 개별사업장 문제로 지부 총파업을 진행한 것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2006년 광진상공 자본은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회사 내 여성조합원들에 대한 강제사직을 단행했다. 지회의 조직력으로는 도저히 돌파하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경주지부는 4시간 총파업을 진행하였다.

사업장의 벽을 넘어 파업에 동참한 경주지부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지만 조직의 결정 그리고 당위성에 동의하고 파업에 참여했다. 광진자본도 지역의 파업이 자신들의 영업활동에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 사용자 관계등을 고려하여 강제사직한 여성조합원 중 희망자에 한해서 재입사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타결할 수 있었다.

탄탄한 조직력을 기반으로 조직화 확대

경주지부가 미조직 노동자들을  획기적으로 조직화 하게된 시기는 2007년부터이다. 지역에서 노동조합 활동으로 패배보단 승리의 기운이 확대되자 금속노조를 믿고 노동조합 가입에 대한 문의가 이어졌다. 공단 중심으로 한 사업장이 조직화 되면 근처 사업장 노동자들은 차이를 두고 조직화 되었다. 경주지부는 비정규 미조직 담당자를 두고 이 업무만 전담하는 상근인력을 배치하였고 그러한 토대로 인해 사업을 확장하게 되었다.

외동공단의 경우 대림, 디에스시, 다스, 시그오토멕이 약 2년간이란 시간 안에 모두 조직화 되었고 구어공단은 상희금속, 청우, 인지컨트롤스로 조직화로 이어졌다. 신규로 조직화 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화 대상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자본을 굴복시키는 것은 그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적어도 산별노조가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설립되는 것보다 조직화 성공률이 높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야 된다.

그것은 현장투쟁의 승패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체계적 조직화 준비과정, 조직화 이후 교섭과 투쟁전술의 배치, 그리고 조직화 안정까지가 흔들림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결국 그 지역의 노동조합 조직화의 결정은 지역의 자본과 노동의 힘 겨루기에서 누가 우위를 점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조합을 조직화 하는 과정에 실패를 맛본다면 그 주위의 노동자들은 위축될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조직확대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경주지부가 이전 경주지역 조직화와 다르게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도 노동조합을 만들면 연대차원의 지원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이므로 더 많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하기 때문이다. 교섭과 투쟁 모두를 책임져야 하는 단위로 산별노조는 그만큼 이전과 다른 조직화에 대한 접근을 할 뿐 아니라 조직의 운명까지 달려 있는 중요한 사업으로 보고 있다.

노동조합은 구조적으로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단기적이냐 장기적이냐의 차이일 뿐 더 높은 질의 노동조건과 고용안정을 목표로 삼는다. 노동조합이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방법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산별노조이다. 우리가 산별노조를 건설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조직 내에 조합원들만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담기 위해서이다.

산별노조는 기본적으로 더 많은 노동자들을 조직해야만 힘이 배가 되기 때문에 지역에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해야만 하는 절박성이 있다. 물론 기존조직들로 운영만 하면 된다는 관료적인 행태를 보이는 곳도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조직의 발전은 조직률을 높이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경주지역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아가던 시기, 자본과 정권도 마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탄압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떨어져 나가는 시기도 있었다.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산별노조가 가진 한계와 지금까지 활동에 대한 성찰을 했다. 우리나라 산별노조의 태생적 한계는 조직의 출발부터 있었다. 군부독재정권이 정한 기업별노동조합 체계에서 조직형태를 변경하여 구성된 산별노조는 기존의 관행과 새로운 제도정립을 위해 많은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

노동조합 활동의 우선순위가 아직도 해당 기업별 조합원들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고, 중앙이나 지부에 활동에 대한 반감도 여전히 존재한다. 무지한 자본들의 상식을 넘어선 도발이 항시 현장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일정 부분 그 대응을 위한 활동을 부정할 순 없지만 전체 대의와 명분을 거스르는 행동은 문제가 있다. 그나마 기업별 노동조합의 장점 중 하나인 즉각적인 현장투쟁에 대해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상부의 결정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은 현장공동화로 직결되었다.

요구를 만드는 것부터 교섭까지 중앙교섭, 지부집단교섭의 형식은 조합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해당 사업장의 임금, 보충교섭만 집중하는 형식이 되었다. 조합원들의 의식변화에 가장 앞장서야 될 간부조차도 지침이니 따라야 된다는 식의 현장활동은 조합원들의 입장에선 괴리감이 있는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산별노조에서 사업장의 간부들이 하는 업무는 결정사항을 수임만 하면되지 스스로 사업을 만들고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점차 잃어 갔다.

시스템은 산별노조로 되어 의사결정은 현장단위가 아닌 지부나 중앙에서 하고 일반활동은 기업별 노동조합의 의식을 가지고 운영되니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업장의 문제에 대해 해결하는 활동이 전부였던 조직의 간부들은 산별노조로 오면서 여러사업을 해야되고 그렇다 보면 현장의 조합원들은 현장을 떠나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오해하면서 산별노조가 애물단지가 되기도 한다.

성찰 없이 발전 없다... 산별노조에 걸맞은 실천을

이 제도를 벗어나길 바라는 자본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저 탈퇴하는 사업장들도 속출하게 되었다. 산별노조를 부정하고 싶은 자본가들은 금속노조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하는 데 단체협약은 적격이었다. 현실적으로 가장 피부에 와닿은 단체협약을 조건으로 자본이 거래를 요구 할 경우 대다수 조합원들과 간부들은 그것만 보장되면 대의를 저버리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산별노조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법 제도 개선으로 산별교섭이 보장받고 교섭에 참여하는 단위가 확대되어야 한다. 지금의 금속노조 중앙교섭처럼 한 조직에 대다수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쟁과 합의안에 대한 효력의 실효성은 날이 갈수록 떨어진다.

법 제도 개선과 함께 해당 단위의 조직원들이 왜 산별노조인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더 많은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더 큰 투쟁으로 사회를 변혁시켜야 된다는 목적의식 없이 개별자본과의 투쟁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산별노조에 몸 담고 있다면 변화발전은 허구에 불과하다.

단체협약의 조건이 우리 사업장이 아닌 지역전체,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전체에 상식으로 통한다면 해고가 살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이 공장을 나가는 순간 그간의 혜택이 모두 사라지고 비참한 노동조건이 주위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잃는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어찌 보면 노동법 개정 중 단체협약 지역 효력확장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 할 수 있겠다. 굳이 중앙교섭을 하는 이유도 효력확장으로 보호받는 노동자들이 많아지는 것이 최종목표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관계는 산별노조로 체계 바뀌면서 지역에 몇 번의 큰 투쟁을 만들긴 했지만 예전만큼의 위력은 갖지 못하게 되었다. 금속노조가 중앙의 결정과 사업을 수행하는 것 이외의 지역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 순위가 금속노조 조직직 관점을 넘지 못하고 중앙의 사업만 진행하여도 숨이 막힌다는 간부들의 피로감으로 지역은 2차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선 '금속노조가 나서야 한다'에서 '금속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중앙의결기구에서의 결정이 아니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수동적인 활동에 젖어가고 있다.

금속노조 10년이 지났다. 산별노조가 만능일 순 없다.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형식과 제도보다 우리의 활동방식이 진정한 산별노조의 뜻과 일치하고 민주노조 원칙에 입각한 활동을 하느냐에 있다. 여전히 기업별 노동조합 중심 활동으로 연합형식의 산별노조로 정체한다면 더 이상 발전하기 보다는 퇴보할 뿐이다.

새로운 조직화로 금속노조에 들어온 조직들은 기존의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게 되어 있다. 조직문화가 변화하지 않고 아무리 많은 사업장들이 새롭게 조직되어 산별노조로 출발하더라도 내용은 기업별에 편승한다.

지나온 과거에 대한 성찰 없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기업별 노동조합 중심의 활동에서 탈피하고 진정한 산별노조에 걸맞은 실천을 해야만 한다. 사업장 조합원들의 임금, 고용, 복지에서 사회의 임금, 복지, 고용을 발전시키는 투쟁을 하는 것이 결국은 우리 조합원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금속노조 경주지부 정책기획부장입니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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