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붕' 부른 '삼찍요리'의 재료가...
중국 속 작은 유럽, 칭다오(청도)... 소소한 재미가 있네
▲ 신호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도 시가지독일점령 당시 교주만을 오가는 선박들을 지휘하기 위해 설치한 망대와 신호발포대가 있던 곳이다. ⓒ 김혜원
중국 동부의 해안도시인 칭다오(청도)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때문에 일찍부터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했으며 차이나드림이 불붙기 시작한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값싼 현지 노동력의 이점 때문에 악세사리, 의류 등 중소기업 하청업체들의 진출이 봇물을 이루었던 곳이기도 하다.
인구 800만으로 추산되는 칭다오에는 11만 명의 한국인과 18만여 명의 중국동포(조선족)가 살고 있다고 한다. 가히 '대한민국 청도시'라고 불리는 데 손색이 없을 만하다.
그러나 막상 칭다오의 곳곳을 찾아다니다보니 곳곳에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적지 않았다. 그곳이 어디든 그들만의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으며 삶이 있기에 이방인들의 눈의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잔교청도 최초로 지어진 선착장이며 이곳을 통해 독일군이 청도에 들어왔다. ⓒ 김혜원
삼면이 바다인 산둥(산동)반도에 위치한 칭다오는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서구문화에 일찌감치 그 문호를 개방한 곳이다. 특히 칭다오 십경(十景) 중 하나로 꼽히는 잔교는 1891년에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일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897년 독일군의 칭다오 점령의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된다.
잔교를 통해 침입한 독일군은 칭다오를 조차지(租借地)로 선언하고 바다가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해변가 언덕에 집무실(영빈관)을 건립했으며 그 주변에 가족들이 거처할 주택을 건축하면서 유럽식 주택가(팔대관)를 형성했다. 당시 지어진 유럽식 건축물들은 현대에 와서 칭다오에 '중국의 작은 독일' 혹은 '중국의 나폴리'라는 별명을 붙여주게 된다.
▲ 청도 영빈관1803년에 지어진 독일 총독 집무실 ⓒ 김혜원
그 중에 압권은 단연 1903년에 지어진 독일총독관저 영빈관과 1820부터 1830년 사이에 지어진 유럽식 주택가 빠따관(팔대관) 지역이다. 중국의 유명한 거리 이름 여덟 개를 따와 도로 이름을 붙였다는 빠따관에는 24개 국가의 대표적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300여 채의 최고급 별장들이 들어서 있어서 중국은 물론 외국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하다.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칭다오 제1해수욕장은 전망만 좋은 것이 아니다.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풍수지리까지 고려했다는 후문 이다. 길이 580미터로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으로 꼽히기도 했다는 제1해수욕장은 독일군 점령당시에는 빠따관에 거주하고 있는 부호들을 위한 개인 해변이었겠지만 지금은 사시사철 칭다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휴식처이며 놀이터가 되고 있다.
▲ 5.4광장의 상징조형물. 5월의 바람1919년 5월4일 북경대학생들이 천안문광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던 항일시민운동을 상징하는 기념물 ⓒ 김혜원
지난 베이징올림픽 당시 세계인들에게 요트 경기장과 함께 칭다오의 랜드마크처럼 소개되었던 븕은 회오리 조형물이 있다. 칭다오 시청 앞 5.4광장을 지키고 있는 붉은 횃불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 '오월의 바람'이다.
오월의 바람은 1919년 5월4일 북경대학생들이 톈안먼(천안문)광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던 항일시민운동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당시 횃불을 들고 항일운동 선봉에 서서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라고 외치던 루쉰의 기상을 담고 있다고 한다.
▲ 올림픽 요트 경기장베이징올림픽 요트 경기가 열렸던 청도 요트경기장 ⓒ 김혜원
5.4광장을 지나면 바야흐로 올림픽 요트경기장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과는 달리 단오가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는 중국. 단오절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해변은 연휴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축제분위기였다(중국의 단오는 초나라 회왕 당시 충신인 굴원을 기리는 날로 한국의 단오문화와는 전혀 다르다).
▲ 해변에서 연을 날리는 중국 소녀단오절 연휴를 맞아 인파로 즐기는 청도 요트 경기장 ⓒ 김혜원
바닷가를 벗어나 시내로 들어오니 칭다오에서 가장 큰 종합공원인 중산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독일 침략 당시 독일군이 사들여 삼림연구를 위해 각종 식물을 심었다는 이곳은 이후 일본군의 손에 넘어갔다가 종전 후 중국에 돌아갔으며 1929년 중국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쑨원의 호를 따 중산공원으로 개명했다.
연면적이 80만 제곱미터에 이른다는 중산공원을 다 돌아보려면 하루도 부족하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초입을 도는데 비가 쏟아진다. 하늘을 덮은 울창한 숲은 더위를 식혀줄 뿐 아니라 거센 빗줄기마저 가려주었다.
도시 구석구석에 독일의 잔재들이 남아 있는 칭다오. 그래서인지 칭다오에서 생산되는 칭다오 맥주는 독일 맥주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100여 년 전 중국에 발을 디딘 독일인들이 가장 그리워했던 것이 바로 고향에서 마시던 맥주였을 것이다. 배로 실어 나르는 맥주로는 그 수요를 따르지 못했고 그래서 만들어지게 된 것이 칭다오 맥주다.
▲ 청도맥주박물관박물관에서는 입장객에게 최종 정재과정을 거치지 않은 맥주를 한잔씩 시음하게 해준다 ⓒ 김혜원
당시 칭다오 인근 명산인 라오샨(노산)의 광천수를 사용해 만들기 시작한 칭다오 맥주는 독일 맥주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물속에 녹아 있는 미네랄 성분으로 인해 깔끔하고 개운한 맛이 특성이다.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한 20년 전부터 광천수 대신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지만 청도 맥주의 특성은 그대로 살리고 있다는 평이다.
맥주 박물관에 왔으니 맥주통에서 바로 나온 신선한 맥주를 시음하지 않을 수 없다. 박물관에서는 입장객에게 최종 정제과정을 거치지 않은 맥주를 한 잔씩 시음하게 해준다. 약간의 침전물이 섞여 있다는 맥주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맥주와는 달리 순하고 구수하며 달큰한 맛까지 살아 있다.
맥주 한잔을 시음하고 나오니 박물관 주변으로 형성된 맥주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카페테리아 형식의 맥주거리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이면 사람들로 넘쳐난다. 요즘 같이 무더운 여름밤이라면 맥주거리에 앉아 시원한 칭다오 맥주를 즐기는 것도 낭만이 아닐 수 없다.
▲ 청도 피차이위엔피차이위엔은 독일식 건물이 즐비한 거리 사이에 작은 골목으로 형성된 중국전통음식 거리이다 ⓒ 김혜원
아무리 칭다오가 중국의 작은 독일이라고는 하나 역시 중국은 중국이다. 피차이위엔은 독일식 건물이 즐비한 거리 사이에 작은 골목으로 형성된 중국전통음식 거리다. 100여 년 전 독일군의 점령을 피해 작은 골목으로 모여들었던 전통 음식점들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피맛골이나 일본의 아사쿠사, 대만의 지우펀, 홍콩 소호거리를 떠올리게 되는 칭다오의 피차이위엔. 중국 전통 거리음식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단지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 어느 중국거리에서보다 강한 중국전통 향신료 냄새 때문에 숨을 쉬지 못할 정도였을 뿐 아니라 고객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각종 곤충과 벌레들의 꿈틀거림이 가히 엽기적이어서 차마 무엇도 입에 넣을 수 없었던 것이다.
▲ 피차이위엔의 먹거리고객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각종 곤충과 벌레들의 꿈틀거림이 가히 엽기적이어서 차마 무엇도 입에 넣을 수 없었다. ⓒ 김혜원
가이드가 장난 삼아 음식을 권한다. 전갈은 고단백이라 스테미너에 좋고 장수하늘소 애벌래는 여성의 피부미용에 최고란다. 해마 또한 귀한 음식으로 튀기면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며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겁을 하는 일행에게 마치 엄청난 정보라도 주는 듯 중국의 몇 가지 엽기요리를 소개해준다. 모기 눈알 요리와 원숭이 골 요리 그리고 삼찍요리.
모기 눈알 요리는 모기를 잡아먹은 박쥐의 위를 열어 아직 소화가 덜 된 상태의 모기눈알만을 모아 만든 요리이며 원숭이 골 요리는 살아있는 원숭이의 두개골을 열어 뇌를 먹는 요리인데 워낙 유명해서 방송에 소개된 적도 있단다. 하긴 사실로 믿어지진 않았지만 들은 적은 있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 소개한 가이드가 마지막 요리는 엽기 최강인데 그래도 들어보겠냐며 은근히 궁금증을 유발한다. 모기 눈알과 원숭이 골이 나왔는데 그보다 더한 뭐가 있을까 싶어 침을 꼴깍 삼키며 숨을 죽였다.
▲ 청도 피차이위엔 음식거리꼬치에 끼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끼워 판다 ⓒ 김혜원
중국엔 쥐 요리도 유명한데 죽순만 먹고 자라는 토끼처럼 생긴 쥐로 만드는 요리가 유명하단다. 삼찍요리 역시 쥐가 재료인데 큰 쥐가 아닌 갖 태어난 새끼쥐를 날로 먹는 것이란다. 새끼쥐가 젓가락에 잡힐 때 '찍' 소리를 내고, 소스에 찍을 때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에 들어가 씹힐 때까지 세번 '찍'소리를 낸다고 해서 삼찍요리라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우리들은 '멘붕'에 빠져 정신을 잃었다.
아름다운 유럽식 건물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 10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 전통 거리음식점들을 보면서 강한 중국인들의 민족성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이나 일본이 땅은 빼앗을 수 있었을지언정 그들의 삶과 문화는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물론 각종 소형항공사들이 칭다오에 취항하면서 칭다오 가는 하늘 길은 더욱 많아졌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관광 페리를 이용하는 것도 낭만적일 것이다. 2박 3일의 짧은 기간 안에 비교적 저렴하고 편안하게 이국문물을 접하고 싶다면 칭다오를 추천하고 싶다.
가이드 말로는 한여름이면 칭다오 해변이 아름다운 비키니족들로 넘쳐난단다. 경포대나 해운대에 식상했다면 칭다오로 날아가 유럽식 건물들 사이에서 중국음식을 먹으며 중국 바다에 몸을 던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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