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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땐 그랬지... 가난함 속 '희망' 담은 그의 사진들

다큐멘터리 1세대 사진가 최민식의 사진전 '소년시대'

등록|2012.06.27 18:57 수정|2012.06.27 18:57

▲ 소년들의 발랄한 표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 최민식

"나에게 있어 사진창작은 민중의 삶의 문제를 의식하는 것, 민중의 참상을 기록하여 사람들에게 인권의 존엄성을 호소하고 권력의 부정을 고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현실이 가진 구조적 모순을 알리기 위해서는 가난한 서민들에 대한 사랑이 먼저 사진 속에 녹아 들어야 한다."

그의 사진을 보고 왜 가난한 사람들의 사진만 찍느냐는 어떤 이의 질문에 답한 최민식 사진가의 말이다. 내가 그를 그의 사진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풍경 사진, 예술 사진만이 제일인줄 알던 내게 사진이 지닌 호소력과 또 다른 매력을 알게 해준 사진가 최민식의 사진전 '소년시대'가 롯데 갤러리에서 7월 8일까지 열리고 있다. 

최민식 작가의 작품 중 미공개 작품이었던 '소년'사진 150점을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전시회다. 사진작품의 촬영연대는 1957년부터 1990년대까지이며, 부산의 자갈치시장, 광안리 해변, 영도 골목, 부산역 등등에서 최민식 작가의 카메라에 담긴 각계각층의 어린이들의 사진들이 선보인다.

전시장은 두 개 층으로 5가지 섹션 (1부/소년, 표정을 짓다, 2부/소년, 가족을 만나다, 3부/소년, 등에서 크다, 4부/소년, 친구를 찾다, 5부/소년, 순간에 머물다)으로 나누어 각 테마별로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다. 

여러 감정들 솟아나게 하는 '한국의 브레송' 최민식

▲ 가난함 속에서도 휴머니즘과 미소를 짓게 해주는 그의 사진들. ⓒ 최민식


가난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품은 아이들 사진, 그 중에서도 이번에 처음으로 발표되는 130여 점의 사진들에서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존중하고 약자를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그의 흑백 사진들처럼 진하게 와 닿는다. 궁핍함 속에서도 느껴지는 휴머니즘은 그가 추구하는 바이며 그만이 지닌 매력이기도 하다. 사진들을 보다 보면 최민식 작가의 휴머니즘이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그건 바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측은지심, 도와 주고픈 마음, 나누고 싶은 배려. 

국수를 먹고 있는 아이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엄마와 할머니의 시선에서, 뒷골목을 주름잡으며 짓는 골목대장들의 익살, 우는 동생의 눈물을 닦아주는 어린 누이의 손길에서, 집 없는 가장의 옆에 망연히 서있는 아이의 눈빛까지... 미소를 짓기도 하고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다가 어떤 사진 앞에서 멍하니 성찰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는 단지 "내가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찍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속에서 피어 오르는 인간애와 희망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몇 년간 취미로나마 사진을 찍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언뜻 쉬워보이는 이런 사진들이 얼마나 포착하기 힘든 지, 카메라에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촬영하기는 더욱 어렵다. 아마 부산 바닥을 안방 드나들듯이 다녔으리라. 사람들은 '결정적 사진'으로 유명한 사진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에 비교해 그를 '한국의 브레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진솔한 작품을 보노라면 브레송의 '결정적이고 미학적인 사진'에선 느낄 수 없는 무게감과 여러 감정들이 울컥 솟아나게 한다.

"밀레처럼 농민을 그려라" 말따라 소외된 사람들 담아

▲ 궁핍함 속에서도 희망을 느끼게 해주는 '결정적 순간' ⓒ 최민식


1928년 생으로 올해 여든이 훌쩍 넘은 그는 어린시절 황해도 연백에서 소작농으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지독한 가난을 겪으며 자랐다. 카톨릭 신자인 아버지는 카톨릭 성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고 초등학교 때 그림을 그리곤 하던 그에게 "밀레처럼 농민을 그려라" 돈 벌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라고 하셨단다. 아마 이런 좋은 말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일본으로 밀항하여 동경중앙미술학원에 들어가 2년 동안 미술을 공부했다. 그러다 동네 헌 책방에서 우연히 접한 에드워드 스타이켄 (Edward Steichen)의 '인간가족 (The Family of Man)' 사진책에 매료되었고 이때부터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하며 사람들을 소재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는 시각적으로 예쁘기만 한 '살롱사진'을 멀리하고 주로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의 남루한 일상을 찍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거지나 가난에 찌든 사진만 찍어 외국에 전시하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당시 박정희 정부 당국의 사찰 대상이 되기도 하고 후일 하마터면 삼청 교육대에도 들어갈 뻔했다고 한다. 

그런 시절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는 우리나라 사진계에서 제대로 된 평가나 대접을 못 받는다고 한다. 이유는 그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고, 가난이라는 '끝나버린 주제'에 매달리며, 수도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내내 활동하는 작가라서 란다. 이런 세상을 향해 85세의 베테랑 사진가는 이렇게 일갈한다.

"사진이, 사진가가 사회비판을 하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추구한다는 말인가?"
덧붙이는 글 * 롯데 갤러리 : 수도권 2호선 전철 을지로 입구역 롯데 백화점 12층 (02-726-4428~9), 입장료 무료, 백화점 휴점시 휴관. 관람시간 10:3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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