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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후보들의 출마선언을 더욱 빛내는 방법

등록|2012.07.03 10:47 수정|2012.07.03 10:47
여야 대권주자들의 출마선언이 이어지면서 그들의 출마선언 장소가 화제다. 예전에는 후보들이 국회나 당사 등 비교적 무난한 곳에서 출마선언을 했던 것에 반해, 이번에는 광화문 광장을 택했던 손학규 후보를 필두로 문재인, 정세균 후보가 잇달아 서대문독립공원, 종로광장시장에서 출마선언을 하면서 그 공간의 상징성에 대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두관 경남지사는 해남 땅끝마을에서 출마를 선언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유력한 대선주자 박근혜 의원 역시 출마 장소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후보가 어디서 출마선언을 하든 뭐가 그리 대수냐라는 의견도 있을 테지만, 대권주자의 출마선언 장소는 의외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대선출마의 변이야 빤한 터라 특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서야 쉽사리 잊히지만, 출마선언의 장소는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맥락과 함께 대선후보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보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훨씬 오래된 미국에서는 대선후보들이 출마선언 장소 그 자체를 하나의 메시지로 이용하곤 한다. 예컨대 지난 대선 당시 오바마는 예전 링컨 대통령이 출마 선언했던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 주청사에서 출사표를 던짐으로써 자신의 당선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주장한 바 있으며, 공화당의 존 헌츠먼 전 중국 주재 미국대사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출마선언 장소였던 자유의 여신상 앞 뉴저지 리버티 공원에서 출마선언을 하면서 레이건의 이미지를 차용하려 노력한 바 있다. 출마선언 장소가 자신의 정책이며 정체성을 들어내는 효과적인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이 출마선언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현실이 미국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의미 있는 장소를 고르고 그곳에서 출사표를 던지는 과정이야 다를 바 없겠지만, 미국과 비교하여 민주주의의 역사 자체가 비교되지 않는 터라 한국에서는 미국처럼 그만큼 의미 있는 공간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별한 출마선언 장소 고른 대선주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출마선언 장소를 고른 대선주자들. 과연 그들은 그 공간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선 손학규 후보가 고른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앞을 보자. 그곳은 문재인 후보 역시 탐냈던 공간으로서, 후보가 국민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다. 자신이 세종대왕처럼 정치를 하겠다는 아주 간단명료한 논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야말로 백성의 삶을 챙기는데서 국정을 시작하고, 만백성을 하나로 통합하는데서 국정을 마무리한 성군이었다"며 세종대왕의 정신을 이어받는 대통령이 되겠다던 손학규.

다만 아쉬운 점은 세종대왕을 롤모델로 삼을 수밖에 없었느냐 하는 점이다. 비록 전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지만, 어쨌든 세종은 중세 조선시대의 군주다. 21세기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가 600년 전의 왕을 하나의 롤모델로 삼겠다는 아이러니. 그것은 결국 우리 근현대사에 그만큼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게 아닐까?

반면 문재인 후보가 고른 서대문 독립공원을 보자. 문재인 후보 측은 그곳이 서대문 형무소가 위치했던 장소로서, 후보가 70년대 4개월간 수감되어 민주화 운동가로서 재탄생한 장소라고 강조하지만 그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지는 역시 미지수다. 그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직관보다는 굳이 후보 측의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현재 독립공원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맥락과 관련이 있다. 사실 많은 국민들은 독립공원을 군사시대의 형무소 보다는 우리의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곳으로 생각한다. 이름부터가 독립공원이며, 실제로 독립공원에 가서 보더라도 군사독재 때의 흔적보다는 일제 강점기 때의 역사가 주로 전시되어 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정세균 후보가 선택한 종로광장시장을 보자. 이곳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처럼 상징성이 뚜렷하거나, 독립문처럼 역사성이 분명하지 않지만, 대신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서 현재성을 담보하고 있는 바, 그 지향성의 면에서 큰 이점을 지닌다. 일반 재래시장에서 대선출마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서민의 편에서 정치를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시장이란 공간을 택함으로써 후보 자신에 대한 선전 기능이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빚 없는 사회'란 표어와 시장이란 공간이 맞아 떨어짐으로써 '서민'은 성공적으로 강조했지만, 정작 그 주체는 국민들에게 어필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출마선언을 더욱 빛내려면

비록 공간적 배경까지 신경 썼지만 미천한 민주주의 역사로 인해 아직까지 2% 부족한 느낌의 출마선언들. 그렇다면 이외에 출마선언을 더욱 빛내게 하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정세균 후보의 대선 출마선언 당시의 현장 사진, 특히 그의 옆에 서 있는 문재인 후보의 모습이다. 바로 며칠 전, 자신도 대선 출마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경쟁자의 출마선언 장소에서 박수를 치는 문재인 후보.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선 후보를 둘러싼 경쟁이 단순히 상호 물어뜯기가 아니라 비전 대 비전이라는 선의의 경쟁을 도출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것도 그런 신사적인 대결 아니었던가.

결국 이 사진은 향후 민주통합당의 경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보여준다. 민주통합당은 대선후보를 위한 경선을 후보자들 간의 비방전으로 몰고 갈 것이 아니라 하나의 축제로 만들어 내야 한다. 후보 서로가 상호 비방 대신 하나의 정책과 비전을 가지고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출마를 사심없이 축하해줄만큼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이다.

당내 경선이 하나의 축제가 된다면 아마도 민주통합당의 지지도는 엄청 올라갈 것이며, 동시에 박근혜 대세론은 또다시 위기를 맞을 것이다. 현재 새누리당의 아킬레스건은 박근혜 1인 통치를 둘러싸고 나머지 세력들이 전혀 견제도 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하게 비난만 하고 있다는 점인데, 민주통합당이 이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 자체로도 국민들은 또다시 정치에 관심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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