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그들이 빗자루 놓은 이유... "최저임금? 이제는 생활임금!"

[올리자! 햄버거시급 ③] 생활임금운동 국내에서 싹 터... 미국 130개 주는 이미 조례 제정

등록|2012.07.02 13:49 수정|2012.07.02 15:45

▲ 고려대학교 본관 앞에서 열린 '미화노동자 생활임금쟁취! 고대·연대·이대 파업투쟁 승리 결의대회’에 참가한 공공노조 서경지부 고려대분회 조합원이 손피켓을 들고 서 있다. ⓒ 노동과세계 이명익


"최저임금 웬 말이냐, '생활임금' 보장하라!"

2011년 3월. 청소노동자들이 낯선 구호를 외쳤다. 연세대·이대 등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한창 파업 농성을 벌일 때 일이다. 이회여대에서는 청소노동자와 학생들이 함께 '1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청소노동자에게 시간당 최저임금(당시 4320원)이 아닌 생활임금(4800원)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이었다.

이후 생활임금이란 용어가 싹 트기 시작했다. 같은 해 10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만나 '생활임금 조례 제정'을 제안했다. 참여연대는 2012년이 되자마자 '생활임금운동'을 핵심과제 중 하나로 내놨다. 현재 생활임금 캠페인을 기획하며 적정한 생활임금 기준을 모색하고 있다.

부천에는 올해 안에 생활임금조례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자발적 협의체인 부천지역 노사민정협의회가 '생활임금조례안'을 논의했다. 7월부터는 전담기획팀이 생활임금 실태조사를 벌인다. 이후 부천시의회에 조례를 발의해 올해 안에 제정·시행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고현주 부천지역 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은 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여야 상관없이 부천시의회 소속 의원들이 조례안 발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노사민정협의회 회의에 참석한 부천시 관계자도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전담기획팀에서 조례안의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면 부천시의회와 부천시 차원에서도 올해 안에 제정·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활임금? 집세 내고 여가 즐기는 급여

이들이 공통으로 요구하는 건 '생활임금'이다. 생활임금이란 근로자가 평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시간당 임금이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영국·스웨덴 등은 생활임금을 '주 40시간의 노동만으로 양질의 주거·음식·교통·건강보험·통신·여가비용을 충분하게 지불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이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하면 최저임금보다 더 많은 시급을 주는 것을 뜻한다.

생활임금이 떠오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최저임금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다. 최저임금은 국가가 노동자의 생활안정 등을 위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는 제도다. 하지만 정작 노동자의 생활안정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수준과 국민 평균 생계비와의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2012년도 최저임금 기준 월 급여는 97만6320원이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1/4분기 1인 가구 월평균 가계지출 비용인 131만6314원보다 약 49만 원 적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는 무려 190만 명이나 된다. 고용노동부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2011년 최저임금 미만율(전체 노동자 중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근로자 비율)은 임금노동자 1751만 명의 10.8%다. 노동자 9명 중 1명은 생계유지에 부족한 급여를 받고 있다. 이런 문제를 메워줄 대안으로 '생활임금운동'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중앙연구원이 2008년에 내놓은 <생활임금운동과 노동조합>에 따르면, 생활임금(living wage)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은 미국이다. 1990년대 전후로 미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3인 가족 빈곤선의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근로빈곤층이 계속 늘어나자 NGO·시민사회단체에서 생계유지가 가능한 임금수준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후 최저임금의 한계를 메울 추가적 전략으로 생활임금운동이 시작됐다.

▲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생활임금 계산 홈페이지.(http://livingwage.mit.edu) ⓒ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홈페이지 캡쳐


1994년 12월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에서는 미국 최초로 '생활임금조례'가 제정됐다. 조례는 "지방정부와 거래관계이거나 재정지원을 받는 민간업체는 1999년까지 연방 최저임금보다 50%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후 볼티모어 시의 영향으로 미국 전역에서 생활임금운동이 전개되었다. 현재는 워싱턴 주를 포함한 140여 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양한 형태의 생활임금조례가 제정됐다.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도 비슷한 운동이 진행 중이다.

미국의 생활임금 책정 기준은 지역마다 다양하다. 볼티모어 시의 경우 현재 연방 빈곤선(육체적 능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생활수준)을 고려해 시간당 최저임금($7.25)보다 높은 $10.59를 제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의 생활임금은 $13.84로 최저임금($8.00)보다 약 4달러 많다.

생활임금의 특징은 지역별 운동이라는 점이다. 각 지자체는 지역 사업 계약을 맺거나 재정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기업에게 생계비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한다. 실제로 미국 미니애폴리스 주는 "10만 달러 이상 융자지원을 받는 기업은 일정 근로자를 생활임금으로 고용하라"는 기준을 두고 있다. 로스엔젤레스 카운티는 지역 부지를 이용하는 사업체에 생활임금 지급을 의무화한다.

"생활임금, 경제민주화 실현방법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생활임금운동을 추진하는 단체들은 미국의 사례를 국내 실정에 맞게 적용하려고 애쓰고 있다. 고현주 사무국장 "미국은 시민사회계에서 생활임금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지역사회에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우선 생활임금 개념이 공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생활임금 기준과 개념을 정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생활임금 논의가 지속될 수 있도록 협의기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부천시 생활임금조례 제정을 추진 중인 박덕수 한국노총 부천 지부 기획부장은 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최저임금의 150%를 지급하거나, 매년 생활임금협의회를 열어 결정하도록 조례가 마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우선 시에서 고용하는 근로자 중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근로자부터 적용할 생각"이라며 "이후 민간위탁 사업장으로 조심스럽게 확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은미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팀장은 "생활임금이란 개념을 국내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 내부에서 논의 중이다"라며 "조례 제정을 넘어 시민들이 생활임금운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선자 한국노총 연구위원은 생활임금운동이 최저임금의 한계를 메워줄 것이라 내다봤다. 그는 "생활임금운동은 최저임금 결정 시기에만 저임금 문제에 집중하는 한계를 벗어나 일상적으로 빈곤, 양극화 문제에 주목할 수 있는 대안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요즘 사회 이슈로 떠오른 경제민주화의 실현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황 연구위원은 "기업이 지역 주민의 세금으로 혜택을 받는 만큼 지역에 이익을 환원하라는 것이 생활임금운동의 핵심"이라며 "지자체 차원에서 생활임금조례를 통해 저임금·빈곤해소, 노동조건 등을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