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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가슴 문질렀더니... 세상에, 살아났습니다

[엄을순의 아줌마 이야기 ⑭] '더불어 숲'에서 더불어 사는 재미

등록|2012.07.03 21:45 수정|2012.07.03 21:45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려고 물을 트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난다. 목욕탕 바닥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것도 같고 환기창에서 나는 것도 같고. 일단 스위치를 돌려 물 나오는 걸 멈췄다. 멀리서 가늘게 '찌익찌익'한다. 쥐새끼 같기도 하고, 새새끼 같기도 하고. 어쨌든 홀딱 벗은 채로 쥐새끼든 새새끼든 대면하기는 좀 뭐해서 다시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갔다.

식탁 의자를 목욕탕으로 가져다가 천장에 있는 환기창 팬을 분해해 뜯었다. 마지막에 팬 튜브를 끌어 잡아당기니 작은 새 한 마리가 뚝 떨어진다. 휴우~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 부화한 지 며칠되지 않은 새인가 보다. 서둘러 수건으로 감싸 안고 밖으로 나왔다. 머리엔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가만히 쳐다보니 눈을 슬며시 감아버리는 폼이 영 수상하다. 오래 살 것 같지 않다. 몸도 자꾸 까부라지고 눈도 뜨려하지 않고.

집 환기창에서 떨어진 '새끼새'... 엄마 아빠새는 하늘에서 빙빙

▲ 우리 집 천장 환기창 팬에서 떨어진 새끼 새 한 마리. ⓒ 엄을순


그래서 말을 걸었다. 내 입술을 가능한 만큼 뒤집으며 '째액째액' 했다. (엄마새들이 아기새 먹이줄 때 그러지 않더냐.) 그 소리에 눈을 뜨더니 대답을 한다. '째액' 마지못해 따라한다. 또 했다. '째액째액'. 또 따라한다. '째액째액'. 여러 번을 반복하니 계속 따라한다. 2~3분쯤 계속 시키니 정신이 돌아오는지 똘똘하게 부리를 벌려 대답한다.

'째액째액'.

'아차! 배고프고 목마르겠다.' 걔를 수건으로 감싸 안고 한 손으로는 파리채를 들고 파리를 잡아서 새끼 앞에 놓아줬다. 안 먹는다. 물도 떠다 먹이니 안 먹는다. 할 수 없이 걔와 나, 우리 둘은 이해하지도 못하는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내가 먼저 '째액째액' 걔도 '째액째액'. 잠시 후 머리 위로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울면서 날아갔다. 새끼새가 대화를 멈추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영락없이 '엄마인가'하는 묘한 표정이다.

그 새가 머리 위에서 계속 왔다갔다 정신없이 날아다니기에 새끼새를 손에 쥐고 날아가는 새의 뒤를 쫓았다. 아뿔사… 목욕탕과 연결된 환기창 뒤쪽 환기구멍에 그 새가 멈춰 서서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얘 엄마다.'

그 옆에 크기는 조금 큰 듯하고 꼬리 깃털 빛이 약간 다른 새 한 마리도 이쪽을 쳐다보고 울고 있다. 부부가 합창을 하며 '우리 새끼 내놓으세요'한다. 수건으로 감싼 새끼 새를 살며시 그들 앞에 놓아주고는 얼른 집으로 들어왔다.

몸을 숨기고는 방 창문을 통해 그 광경을 바라봤다. 아직 날 줄 모르는 새끼새는 조금씩 점프를 해가며 엄마 아빠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그 엄마 아빠는 하늘에서 좌우로 날아다니며 방향을 유도하고. 잠시 후. 온 식구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새끼새는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리라. 앞으로 엄마 아빠는 먹을 것이며 새 집 장만이며 무척이나 바쁘겠다. '잘 살아라, 이것들아.' 집 지으며 환풍기 밖 구멍을 막지 않은 게 탈이었다. 새들이 집지을 곳을 찾다가 아늑하다 싶어 그곳을 선택했나 보다. 언제 날을 잡아서 양파망을 찢어 끈으로 묶어 막아야겠다. 또 새가 그 곳에 집을 짓고 알을 까면 매번 이 짓을 또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지, 이 참에 환기통을 아예 산후조리원으로 써버릴까 보다. 그래, 목욕탕 환기구는 사용 말자. 창문이 있으니 창문 열고 살자.'

'더불어 숲'에서 동물들과 함께 사는 삶

▲ 숲 속에 있는 우리 집. ⓒ 엄을순


난, 새와 인연이 깊다. 지난 가을, 새벽에 커피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꽤 통통한 성인(?)까치 한 마리가 뽕나무 가지 위를 날아다니기에 한참을 보다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아이고, 너 살 좀 빼야겠다. 그만 먹어라.' 이 말을 하고는 뒤를 돌아 집안으로 들어가는데 등 뒤에서 '퍼억'하는 소리가 나서 뒤돌아 봤다. 아니 글쎄. 아까 그 새가 바닥으로 떨어진 거다. 부리나케 달려갔다. 몸은 뒤집어지고 눈은 감겼고 부리에서는 침이 줄줄 흐른다.

뭔 응급처치는 해야겠는데 뭘 하나. 심장마비인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매 한가지겠지, 뭐. 마사지나 하자 싶어 손을 대어 보려다가 조류독감이 생각나 주위의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돌로 그 녀석의 앞가슴을 세게 문질렀다. 너무 세게 긁어서 털이 뭉텅뭉텅 긁혀 나온다. 그런데 잠시 후~ 세상에 이런 일이. 널브러져 있던 새가 파닥파닥 몸을 움직이더니 몸을 뒤집어 다리를 딛는 게 아닌가. 처음엔 절룩거리다가 조금씩 제대로 천천히 걷더니 물가 바위 위에 올라가 나를 쳐다본다. 난 갈라지는 홍해라도 본 마냥 입을 쩌억! 벌리고 멍하니 쳐다봤다.

새는 멀리멀리 날아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아무리 남에게 얘기해 줘도 믿지 않을 거다. 아니 믿지 못할 거다. 에이… 핸드폰으로 찍어둘 걸. 다음 날 예상대로 이 사람 저 사람 얘기를 해줘도 다 믿기 힘들단다. 믿거나 말거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난 비슷한 새만 보면 혹시 박씨나 물어오지 않나싶어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기다리건만 아직까지 소식도 없다. 그로부터 8개월 후 어제. 또 내가 새 한 마리를 살린 거다. 이번엔 핸드폰으로 확실한 증거도 남겼다.

이름에 새을(乙)자가 들어있는 나와 새는 운명적인 관계인걸까. 무엇이든 생명 살리는 일은 좋은 거다. 박씨는 안 줘도 좋으니 아픈 놈들 다 내게로 오너라. 돌로 문질러 살리든, 노래를 해서 부모를 찾아주든 다 도와주리라.

그나저나. 내가 먹으려고 정성껏 키운 채소를 며칠 동안 고라니가 죄다 뜯어 먹었다. 걔들도 먹어야 살겠지만 하필 내가 잘 키워놓은 채소에 손을 대나 모르겠다. 앞마당에 심어놓은 얼룩이강낭콩도 통통하게 여물고 있는데 나중에 그것도 걔가 죄다 먹어 치울 거다.

'철조망이라도 쳐 놓을까. 아냐, 내가 이곳에 집짓기 전 원래 여긴 걔네들 땅이었지. 그래, 같이 나눠 먹고 같이 살자. 우리의 자연도 크게 보면 나눔의 사회라 하지 않더냐. 복지논쟁?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에서 좀 베푼다는데 뭔 논쟁할 필요까지. 하지만 고라니 듣거라! 얼룩이강낭콩은 꼭 같이 나눠 먹기다. 나 그거 키우느라 고생 많이 했단 말이야.'

더불어 숲에서 난, 뒹굴뒹굴 더불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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