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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묘미와 감동으로 벅찬 달빛산행

야간산행, 금정산 북문에서 동문까지

등록|2012.07.06 14:00 수정|2012.07.06 14:00

금정산 야간산행4망루에 올라앉아...찬양하는 시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이명화


금정산 야간산행산성마을에 도착...출발전, 인증샷을 날리고... ⓒ 이명화


장마철이라 날씨를 예상하기 힘든 요즘이다. 보름 하루 전 날인 오늘(7.3) 야간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비가 온다는 소식에 야간산행을 못 할 수도 있겠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고 고맙게도 날씨가 좋았다. 아침엔 구름이 조금 있었지만 점점 하늘이 가벼워지는 걸 보면서 오늘 야간산행은 그야말로 달빛산행다운 산행이 되겠다 싶었다. 기대에 찬 마음으로 약속장소로 향했다.

저녁 7시 30분이 임박해서야 모두들 모여들었다. 15인승 승합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금성동 산성마을에 도착했고 자기 산성마을에서 두 사람이 합류해 모두 15명이었다. 한데 모인 우리는 8시 15분경에 산 들머리로 접어들었다. 지난번과 똑같은 코스였다. 넓은 시멘트 길로 된 임도 길을 따라 걸었다. 날은 더운데다 습도도 높아 금방 몸은 땀으로 젖었다.

어둠이 먹물처럼 사위를 덮고 있었다. 천주교목장을 경유해 금정산 북문으로 향하는 길. 희끄무레한 어둠 속을 열다섯 명의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다. 산성마을에서 북문까지 가는 길도 꽤 멀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북문에 도착한 것은 밤 9시 10분. 북문광장 앞에서 10분 정도 휴식을 취했다. 휴식하며 땀을 식힌 후 가파른 돌계단 길을 조금 힘들어하며 올랐다.

돌계단 길 끝에서 만난 조망바위 위에 올라서서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밤바람에 땀을 식혔다. 어느새 달은 휘영청 떠올라 있었다. 보름 하루 전날이라지만 달은 꽉 찬 듯 만월이었다. 지난 6월 야간산행에선 구름 속에 가려진 달빛과 숨바꼭질 했다면 오늘은 달빛 마주보며 걷는 그야말로 달빛산행이었다.

금정산 야간산행...음력 보름 하루 전날이다... 북문에 당도해 둥싯 떠오른 달을 보며... ⓒ 이명화


달빛 마주하며 걷노라니 마음은 한없이 고요해지고 평화롭고 운치 있었다. 어두운 하늘 위에 둥싯 높이 떠오른 달빛은 산성 길 걷는 내내 우리와 동행해 주었다.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걸음도 빨리 걸어 저만치 멀어져간 일행들 뒤에 떨어져서 호젓이 걸었다. 사위는 한없이 고요했고 어둠 속을 헤드랜턴 불빛 밝혀 앞을 가늠하면서 걷는 능선 길과 밤공기는 감미로웠다.

야간산행을 꼭 한번 하고 싶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한 번도 야간산행을 실천해 본 적이 없었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리산 장터목 대피소에서 하룻밤 머물다 이른 신새벽에 깨어 일어나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새벽어둠 속을 헤치고 천왕봉으로 갔던 적은 있다.

그때, 새벽 어둠 속에서 검은 산길에 점점이 빛나던 불빛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어둠 속을 헤드랜턴 비추며 이어지던 사람들의 발걸음…. 보이는 것은 불빛들뿐이었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불빛 행렬은 계속 이어져(과연 장관이었다) 멋진 천왕봉까지 닿았던 헤드랜턴 불빛 파노라마. 천왕봉의 일출, 그 감격의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새벽이었지만 어둠을 벗 삼고 걷는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금정산 야간산행북문 광장에 도착...휴식 중... ⓒ 이명화


지난 6월 2일 '2012년 금정산 생명문화축전' 달빛 걷기 행사'가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금정산 북문 광장에서 동문까지 산성길 따라 걷는 달빛 걷기에 참가했었다.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얼마 전에 등산선교회가 한 달에 한 번 야간산행을 하기로 결정했고 어느새 두 번째 야간산행이 되었다. 매월 음력 보름날을 기해 야간산행을 하기로 했으니 맑은 날엔 보름달빛을 볼 수 있어 더욱 운치 있다.

야간산행은 보통 산행 때와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어둠을 벗 삼아 걷는 산행 길. 사위는 온통 어둠에 묻혀 있고 가깝고 먼 도시의 사람 사는 마을과 도시의 불빛이 명멸했다. 밤하늘의 별들이 내려와 내려와 지상의 사람 사는 마을에 수놓은 것처럼 아련하게 빛나는 것을 보노라면 세상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밀려오는 감동과 함께 만끽할 수 있다.

금정산 야간산행북문 앞 광장에 도착하고... ⓒ 이명화


밝은 날, 산행 길에선 시선과 마음이 밖으로 향해 있기 마련이다. 볼 게 많고 눈길 끌고 마음 끄는 게 많다. 야간산행은 어둠 벗 삼아 달빛 벗 삼아 걷는다. 밖으로 치닫던 시선과 마음이 안으로 모인다. 안으로 집중된다. 내면여행이 시작된다. 마음의 모든 소요가 가라앉고 고요하고 차분해진다. 너와나 우리가 함께 걸으면서 섬처럼 스스로 고립된다.

한편으로는 어두운 산길에서 만난 밤하늘의 달빛은 임을 만난 듯 반갑고 그리운 이의 연서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애잔해지고 여울진다. 모두가 시인이 되고 명상가가 된다. 달의 숨소리 그 긴 호흡이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가슴 가슴마다 시가 꽃피고 마음이 그 무엇으로 차오른다. 밝고 순한 달빛 보노라면 마음이 너그러워질 것 같다. 어두운 밤하늘에 떠오른 달빛과 멀리 아련한 사람 사는 마을의 불빛들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평온을 보지 못하는 자는 눈이 멀었다고 했던가. 능선 길은 명상의 길이 된다.

야간산행원효봉에 올라서서... 멀리 도시의 불빛과 머리 위 달빛 보며... ⓒ 이명화


금정산야간산행원효봉에서 바라본 부산 야경... ⓒ 이명화


어둠 벗 삼고 달빛 벗 삼아 적당한 거리를 두로 삼삼오오, 혹은 둘이, 혹은 혼자 걷는 호젓한 달빛 산행 길. 깊은 먹물 풀어 그린 수묵화 풍경 속을 걷는 것 같다. 땀은 온 몸에서 끈적거렸지만 비탈진 오르막길 지나 능선 길에서는 산보하듯 한가롭고 여유로웠다. 달 보며 멀리 사람 사는 불빛, 보석을 흩뿌려놓은 듯한 도시의 밤을 바라보면서. 마주 다가오는 어둠 속 산길을 보면서.

드디어 4망루에 도착했다. 망루에 올라앉으면 사방에서 바람이 들려든다. 조금만 앉아 있어도 땀은 금방 식어버리고 소름이 돋았다. 모두 망루에 올라앉아 각자 가져온 간식들을 꺼내 가운데 놓았다. 언제나 넘치는 여러 가지 종류의 다양한 먹거리다. 안개가 바람에 실려 왔다. 바람 속에 품은 안개가 살갗에 닿아 어둠 속에서도 안개를 느낄 수 있었다.

야간산행4망루에 올라앉아...찬양이 울려퍼지고... ⓒ 이명화


망루에 모여앉아 기도하고 찬양했다. 어둠 속에서 바람에 실려 우리들의 찬양소리가 퍼져나갔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행복이 '산 너머 저쪽'에 있다고 생각하고 질주한다. 카를 부세의 시 '산 너머 저쪽'에서 그랬듯이, '산 너머 고개 너머 먼 하늘에 행복은 있다고' 남 따라 갔다가 실망한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이 꽃자리인 것을. 루이스 보르헤스는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체온계, 보온병, 레인코트,
그리고 우산 없이는
아무 데도 갈 수가 없던 사람.

그러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춤추는 곳에도 많이 가고
회전목마도 더 많이 타리라.
그리고 데이지꽃도 더 많이 꺾으리라.

밤안개 몰려들고 바람은 상쾌하다 못해 차가워서 옷을 껴입었다. 찬양소리 어두운 밤하늘과 산마루에 울려 퍼졌다. 오래 앉아 있고 싶어도 추워 떠는 사람도 있어 일어서야 했다. 지난 번 야간산행 때는 산성버스를 타고 올라와 버스 막차시간에 맞추느라 서둘러 뛰어서 하산했지만 이번엔 마음의 여유를 갖고 걸을 수 있어 좋았다. 흐뭇한 밤, 즐거움이 만월처럼 꽉 찬 멋진 달빛산행이었다.

야간산행소나무 가지위에 쉬어가는 달... ⓒ 이명화

덧붙이는 글 산행수첩
1. 일시: 2012년 7월 3일(화) 밤
2. 산행: 포도원등산선교회 야간산행. 15명
3. 산행기점: 산성마을(금성동 새마을금고)
4. 산행시간: 2시간 55분
5. 진행: 금성동새마을금고(8:15)-국청사(8:20)-북문(9:00)-원효봉(9:40)-
4망루(9:55)-휴식 후 출발(10:20)- 동문(10:55)-금성동새마을금고 앞(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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