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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

영화 <미시마>를 보고

등록|2012.07.06 21:06 수정|2012.07.06 21:06
홍상수 감독이 진출한 올해 칸영화제에서 특이한 한 편의 영화가 눈길을 끌었다. 비경쟁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출품된 와카마쓰 고지 감독의 <11월 25일 미시마가 자기의 운명을 선택한 날>이 바로 그것이다. <금각사> 등으로 일본 문학 최고 자리에 오르고, 1970년 할복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극우파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 영화로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에 앞서 이미 1985년에 폴 슈레이더 감독이 만든 <미시마-그의 인생>도 미시마 유키오를 다룬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다. 연극적인 무대세트, 장중한 음악, 세련된 편집이 영화의 핵심이며, 마시마의 이 같은 일생과 대표 작품 세 편을 나란히 병치하며 작가와 작품의 공유 지점을 보여준다. 지난 6월 30일 부산영화의 전당에서는 이 영화의 상영 및 미학자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진행하는 '미시마의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강연이 있었다.

일본의 대표적 탐미주의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는 뛰어난 작품성 못지않게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사고방식과 삶의 궤적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로코코 시대 학대받는 인간 군상을 그린 성화를 통해서 아름다움에 눈 뜬 사춘기 시절을 시작으로 매소키스트적인 성향과 동성애 취향, 자신의 극우파적 정치성향을 지지하는 개인 부대를 이끌고 있었다는 점, 작가로서의 명성 못지않게 영화배우로도 활동한 점, 1970년대 일본 사회에 충격을 안겨준 사무라이식 할복 자살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진중권 교수는 "미시마는 자기 마케팅을 잘 한 전략가"라고 평했다. 동경대 대학생 1000여 명을 앞에 두고 일본 정신의 고취를 외치면서도 어떤 제스쳐를 취해야만 카메라나 대중의 눈에 강하게 인식될 지를 잘 알고 있었던 점이 그 증거란 것이다. 이후의 할복을 위한 리허설은 그의 사진집이나 감독한 영화 등에서 이미 예견됐다고 언급했다.

그리스 여행 중 조각상의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 되면서 아름다운 시절에 죽음을 맞을 것을 결심하게 되고, 게이바를 드나들던 중 왜소한 자신의 신체에 불만족을 느껴 남성성에 집착, 결국은 사무라이식으로 죽음을 맞을 때 더욱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근육 가꾸기에 몰입했다는 것 역시 미시마가 영화배우, 사진 모델로도 활동하게 된 간접 계기가 됐다.

남성성에 입각해서 미의 가치에 탐닉한 미시마의 정신세계는 결국 천황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최고로 여기던 과거 일본 정치사상에의 탐닉으로도 연결됐다. 그런 한편 1970년대 초반 물질주의와 기계적, 합리적 인간관이 팽배하던 일본사회의 산문적 사회질서는 개인적이고 은유적인 미시마의 운문적 사상이 세상과 부합하지 못하는 이유가 돼 준비된 죽음을 구체적으로 이끌어냈다. 1970년 11월 25일 일본 육상자위대 건물에 침입해서 총감을 인질로 잡고 일본 정신을 되살릴 것을 연설, 이윽고 자신의 뜻이 대중에게 무관심하자 미시마는 할복자살을 하기에 이르렀다.

작가라는 직업 외에도 영화감독, 배우로도 활동한 미시마의 이력은 남달랐다. 그런 한편으로 현실과 허상 세계에 대한 구분이 모호했던 사람이라고도 평가받았고, 1970년대 당시에도 세인의 놀라움은 있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한 개인의 죽음으로 그에 대한 평가는 갈무리 됐었다. 이제 40여 년이 흘러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인생과 정신세계는 새로이 연구되는 중이다. 한편 진중권 교수의 이날 강연 내용은 영화잡지 <씨네21> 7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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