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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용 위기 법관 근무평정 공개... 평정은 법원장 혼자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 근무평정 및 연임심사 개선안 채택해 대법원장에 건의

등록|2012.07.07 09:09 수정|2012.07.07 09:09
종전 비공개였던 법관 근무평정결과가 앞으로 연임(재임용)심사 과정에서 탈락 가능성이 많은 판사에 대해서는 근무평정결과를 공개하고, 불복하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새로운 근무평정제도로 바뀔 전망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열린 각급 법원 판사회의가 요구한 '법원장 1인이 아닌 근무평정 주체의 다원화' 문제, 또한 법관인사위원회 구성에 있어 공정성ㆍ중립성ㆍ투명성을 확보해 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대법원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는 6일 오후 대법원청사에서 제9차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근무평정 및 연임제도 개선에 관한 건의문'을 채택,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건의키로 했다. 양 대법원장은 건의문을 검토해 개선안을 최종 확정하게 된다.

현재는 각급 법원장이 소속 판사들의 품성, 업무수행 능력 등을 평가해 '상ㆍ중ㆍ하' 세 가지로 등급을 매기면, 법관인사위원회는 이를 토대로 판사 10년 임기마다 연임심사를 해 부적격자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방식이다.

하지만 근무평정결과가 법원장 혼자 함으로써 독단적이고 자의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고, 더욱이 평정결과를 해당 판사가 알 수 없어 연임심사에서 탈락해도 사유를 몰라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때문에 판사들이 평정자인 법원장에게 밉보이지 않거나, 혹은 잘 보이기 위해 '줄'을 설 수 밖에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2월 연임심사를 받던 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는 단지 '근무성적 불량'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체적인 근무평정결과 내용도 모른 채 재임용에서 탈락해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판사들 사이에서 '판사는 10년 비정규직(임시직)'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도 어떤 근무평정결과로 재임용에서 탈락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전국의 판사들이 각급 법원별로 '판사회의'를 소집해 의견을 제시하는 등 본격적으로 근무평정과 연임심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대법원은 이에 판사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존중해 법관 근무평정 및 연임제도에 관한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섰고, 이날 가시적인 성과물이 나온 것이다.

먼저 근무평정 및 연임제도의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전국 법원 판사들이 주축이 된 '근무평정ㆍ연임 연구반'(반장 강성국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이 구성돼 법관 근무평정 및 연임제도 전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 법관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연구반은 그간의 연구 성과를 정리한 연구보고서와 설문조사결과를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에 전달했고,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는 이를 바탕으로 지난 6월8일 제8차 회의를 개최해 근무평정 및 연임제도 개선 방안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으며, 이날 제9차 회의를 열어 법관 근무평정 및 연임제도의 구체적 개선 방안에 관해 논의하고 건의문을 채택했다.

위원회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재판권을 행사하는 법관이 그 직무수행에 적합한 품성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 및 근무성적에 관한 평가가 필요하고, 법관에 대한 연임심사를 통해 국민의 사법 신뢰를 확보하는 것 또한 필요하나, 근무평정 및 연임심사는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위원회가 마련한 개선안은 근무평정은 평가항목 또는 평가대상자별로 서술평가방식과 등급평가방식을 적절히 활용하고, 종합등급평정은 상대적 기준에 의한 절대평가방식으로 평가함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근무성적과 자질에 비춰 향후 연임심사에서 심층적으로 심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판사의 경우 절대평가방식으로 부여하는 새로운 평정등급을 종합등급평정에 신설할 것을 건의했다.

예를 들어 현재 법관의 근무평정은 상ㆍ중ㆍ하 등급으로 매겨지는데, 그 아래 '최하(最下)' 등급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위원회는 평정자(법원장)는 근무평정을 실시함에 있어 평정대상자가 원하는 경우 평정과 관련된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해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도록 함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특히 "근무평정결과의 공개는 그 필요성과 부작용을 함께 고려해 공개를 신청한 법관 중 향후 연임심사 절차에서 심층적 심사 대상이 될 여지가 있는 법관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즉 연임심사(재임용)에서 부적격으로 판단돼 탈락될 가능성이 많은 법관이 원할 경우에만 공개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이와 함께 공개된 근무평정결과에 대한 불복절차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불복절차를 도입할 경우 대법원장에게 이의하되 평정자가 이의에 대한 의견을 부기하는 방식을 채택함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고 건의했다.

아울러 향후 근무평정결과를 연임심사에 활용함에 있어서는 연임심사에서 심층적으로 심사할 필요가 있는 경우 부여하는 새로운 평정등급(최하)을 받은 바 있는지 여부 및 그 내용을 중점적으로 심사하되, 그 이외의 평정결과도 심사 결과에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함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또 연임심사 과정에서 연임 적격 여부가 문제되는 판사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 종전 근무평정결과의 내용을 공개할 뿐만 아니라, 연임 제외 사유 및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등으로 탈락 위기에 처한 판사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절차를 마련함이 적절하다고 건의했다.

위원회는 한발 더 나아가 법관인사위원회 심의 결과 연임부적격으로 인정된 판사에 대한 연임 제외에 대해서도 대법원장이 대법관회의에 부의해 심의하는 절차를 마련함으로써 연임심사절차를 보다 신중하게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임(재임용)심사에서 탈락될 위기에 처한 판사에 대해 '재심의' 절차를 주는 방안을 건의한 것이다.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가 이번에 마련한 개선안은 지난 2월 전국 각급 법원의 판사회의에서 나온 충분한 반론권 및 불복절차의 보장 등의 의견들이 대체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 그러나 평정자는 현행과 같이 법원장 1인으로 하고, 판사나 법원직원 등에 의한 다면평가는 도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탈락으로 전국 법원에서 잇따라 열린 판사회의 중 부산지법 판사회의 등은 '근무평정 주체의 다원화'를 요구했었다. 또한 각급 판사회의에서는 법관인사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 공정성ㆍ중립성ㆍ투명성을 확보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이번 건의문에는 담겨 있지 않았다.

이번 건의안과 관련, 대법원은 "각급 법원 법관이 주도한 근무평정ㆍ연임 연구반에서의 연구활동과 전체 법관 대상 설문조사결과를 충실히 반영한 개선 방안을 마련해 건의한 만큼, 전체 법관의 의견에 따른 법관 근무평정 및 연임제도 개선 방안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종합 평정에 연임심사에서 심층적으로 심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부여하는 새로운 평정등급(최하)을 신설함으로써, 향후 최하 등급을 받지 않는 이상 연임심사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적어 판사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한편, 근무평정에 신경쓰지 않고 업무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근무평정의 공개 및 불복절차를 신설하고, 연임심사 시 연임 적격 여부가 문제되는 판사에 대한 방어권 보장 절차를 강화함으로써 근무평정 및 연임심사절차의 객관성, 공정성 및 투명성이 제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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