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돌아간 탈북자, 다 이유가 있었다?
[탈북자정착지원의 문제점①] 통일 논하기 전에 신뢰부터 심어줘야
▲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이 탈북 대학생과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에게 욕설과 함께 "변절자"라고 발언해 파문에 휩싸인 가운데, 지난 6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탈북자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임 의원의 탈북자 비하 발언을 규탄하며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탈북자문제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연초부터 중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하려던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됐다는 뉴스가 전해져 우리를 안타깝게 하더니 통합민주당 임수경 의원이 사석에서 '탈북자들은 배신자'라는 뉘앙스의 실언을 해 체면을 구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6월에 들어서는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자 박인숙씨가 북한으로 돌아가 우리를 놀라게 했고, 그로부터 바로 며칠 뒤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입국해 생활하던 20대 탈북 여성이 자살했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져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그러면 남한사회에서 자주 발생하는 탈북자와 관련된 문제를 논하기 앞서 남한사회에서 탈북자들은 어떤 존재들이며, 정부의 탈북자 지원정책은 어떤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도와주는 것이 좋을지 여러 회에 나눠 논하고자 한다.
선진국의 난민지원과 한국의 탈북자 지원 비교
영국은 세계 각국에서 온 난민들을 2001년부터 2010년까지, 해마다 평균 약 3만8천 명 정도를 수용하고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벨기에,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도 영국보다는 적지만 어려운 경제사정에서도 꾸준히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다.
▲ 한국의 탈북자수용규모와 영국의 난민수용규모 2001~2010년도 영국의 난민수용규모와 한국의 탈북자수용규모 비교 ⓒ 최승철
유럽국가들은 난민의 역사가 오래돼 난민들에 대한 지원이 비교적 잘 이뤄지고 있다. 한국처럼 정착지원금 같은 것은 없지만 난민신청자들에게는 실제적으로 주거·취업지원을 비롯해 한국의 탈북자들보다는 정착 지원이 훨씬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또한 영국에서 난민 신청자가 난민 허가를 받기 전에 고향으로 귀향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비행기 티켓과 귀향정착지원금 명목으로 1인당 1000파운드의 교육 및 창업지원금을 지급하기도 한다(Hometown Return Program).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난민들을 수용하는 것을 제3세계 국가에 대한 해외원조 개념으로 생각한다. 지난해 영국 정부는 재정적자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도 국민총생산액에서 해외원조의 비중을 대폭 늘렸다(총 15조 원 규모, 국민총생산액 중 0.7%).
그러나 대부분의 영국 국민들은 정부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영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중의 하나고 국제개발을 위한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2011년 11월, <더 선> 조사)
▲ 영국 국제개발부(DFID·Departmen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 DFID 누리집 갈무리
그에 비하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연간 영국의 평균 난민수용 인원의 19분의 1도 안 되는 2000명 정도를 수용한다. 그것도 자기동포인 탈북자를 수용하면서 마치 그들에게 무슨 큰 은혜라도 베풀어 주는 듯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정서는 정부는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국제난민조약에 가입된 회원국이며 탈북자는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난민이다. '동족' '민족' 등 요란한 수식어를 다 빼고 생각해봐도 한국 정부가 난민인 탈북자들을 수용하는 것은 그들에게 '배려'나 '은혜'를 베푸는 일이 아니라 국제기구에 가입된 책임 있는 일개 회원국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탈북자들은 국제사회와 국제법이 규정한 난민으로서 주거 및 기초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탈북자 역시 한국 정부의 지원에 대해 너무 뻔뻔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미안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귀향 탈북자 박인숙씨는 아들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일부 언론에서는 박인숙씨가 북한으로 귀향한 것은 늘어나는 북한주민들의 탈북을 차단하고,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의 입장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북한 보위부에서 아들을 볼모로 협박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필자의 견해로는 이 같은 주장은 별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분명한 것은 이 사건에 박씨의 남한 가족들과 우리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만일 남한에 있는 박씨의 가족들이나 우리 사회가 좀 더 세심한 관심과 배려를 돌렸더라면 그가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남한의 가족들이나 우리 사회의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북한으로 돌아간 박씨의 책임으로만 돌려버릴 뿐이다.
박씨의 귀향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박씨가 자신의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간 것에 대해 '원래부터 남한에 올 의사가 없었고 그냥 아버지한테서 돈만 뜯어가지고 가려는 목적'이였다며 '은혜도 모르는 탈북자들'이라느니, '탈북자들은 배은망덕하다'느니 심지어 '탈북자들을 받아주지 말아야 한다'며 박씨를 비난하고 있다.
북한에서 아버지 없이 월남자 가족으로 60년 인생을 깡그리 희생했던 그가 인생 말년에 아버지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 자기의 자식에게 좀 보상해주고 싶었던 생각이 그렇게도 비난을 받을 일일까.
박씨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의 도움은 고사하고 형제들과 한국사회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다리를 절룩거리며 돈을 벌러 다니며 구차하게 살면서 북한에 있는 아들의 장래를 가로막고 평생 그리워하면서 사는 것보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배가 고파도 자식의 짐을 덜어주고 자식과 함께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박씨를 비난하는 이유는 탈북자를 인간으로서, 동포애로 바라본 게 아니라 오직 남한사회의 우월성을 선전해야 하는 도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탈북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 문제 있다
▲ NK지식인연대(http://www.nkis.kr/)에 실린 게시물. 지난 6일에 올라온 글로 박인숙씨가 남한 가족들로부터 외면받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 NKIS 누리집 갈무리
물론 북한으로 돌아간 박씨가 남한을 비난하면서 "괴뢰들의 납치공작에 걸려 남조선으로 끌려갔다"며 북한당국의 선전에 이용되는 모습은 그동안 성심성의로 탈북자들을 지원해준 남한국민들이 보기에 참으로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행동은 그의 본심에 의한 것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북한당국의 강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NK 지식인 연대'(탈북자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탈북자의 말에 따르면, 박씨의 이복동생인 한나라당 소속 박아무개 전 의원과 모 무역회사 대표는 친누이인 박씨의 집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박씨가 전화를 걸어 좀 만나고 싶다고 하면 외면하면서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박씨가 남한에서 작성했던 수기를 직접 입수한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탈북자 출신)는 자신의 기사(탈북→강제북송→재탈북→탈남… 박인숙 씨의 기막힌 인생행로)에 '남한의 이복형제들이 박인숙씨를 외면했다'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보면, 박씨가 북한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북한에 있는 아들의 걱정과 함께 주변의 외면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인다.
박씨는 해방 전에 일본에서 이미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북한에서 청진의학대학 병원장으로 일하다가 전쟁 이후 남한에 내려와 오랫동안 한국의 유명 대학병원에서 원장으로 일했던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 전혀 없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고 아버지가 유산을 남겼다면 자식인 자신에게도 당연히 재산이 배분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 유산반환소송을 하려고 시도했다.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앞서 언급한 기사에서 박씨가 "이복형제를 대상으로 부친 소유의 재산분할 소송도 생각해봤지만, 국회의원인 이복독생이 피해를 볼까봐 행동에는 옮기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에서도 형제들 간에 재산 때문에 법적인 싸움을 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박씨를 포함한 북한주민들은 아직도 돈보다는 형제 간의 의리나 정을 더 귀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박씨는 북한에 돌아가서 기자회견을 할 때 가족에 대한 비난은 하지 않았다.
북한으로 귀향한 박씨의 소식을 접한 탈북자 홍아무개씨(영국 거주)는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 박씨 할머니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며 "나도 한국에 입국하기까지만 해도 남한에 가면 외가 쪽으로 친척들이 많이 있어 그들의 도움으로 그렇게 어렵지 않게 살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정작 한국에 가보니 친 이모가 조카인 내게 집에 와서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소리도 하지 않더라"며 "남한사람들은 혈육도 형제도 모르고 오직 돈밖에 모르며,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만 결정하는 것이 너무 싫어 외국에 나와 살기로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남북통일은 북한주민들의 마음을 얻을 때 가능
필자가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 문제가 단순히 박씨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실향민이나 지금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을 포함해 남한에 연고가 있는 수십수백만의 북한주민들이 박씨처럼 남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왔다가 실망을 안고 다시 북으로 돌아가는 비참한 현실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가 발생한 직접적인 책임은 북한 정부에 있다. 탈북자들은 우리 민족의 불행한 역사가 남긴 분단의 희생자들이다. 남과 북은 더 이상 탈북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북통일과정은 남과 북이 60년 넘게 끊어진 민족성을 회복하고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합쳐 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북한주민들에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용할 것을 설득하고, 통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그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줘야 한다.
통일은 저절로, 그리고 공짜로 되는 게 아니다.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은 제도와 이념을 초월해 서로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필자가 운영하는 '통일경제포럼'(http://komts.com)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자기가 직접 쓴 기사에 한하여 중복기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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