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지?'에 답해 줄 심리치료 동화 3권
[서평] <죽어야 사는 나무> <몽당 연필의 여행> <깜장 우산>
▲ <몽당 연필의 여행> ⓒ 나한기획
오죽 힘들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했을까.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혼자 견뎠을 아픔에 동정이 가는 한편, 스스로에 대한 존재감이 조금만이라도 있었다면, 마음을 열고 고민을 함께 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란 안타까움도 든다.
OECD 국가 중 1위로 우리나라 자살률이 높고, 최근 몇 년 청소년과 노년층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9년에 자살한 사람은 1만5413명, 하루 평균 42명이 자살했다. 삶의 만족도인 동시에 자살률을 줄여줄 행복지수는 OECD 회원국 30개국 중 26위로 국민의 70%가 삶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느낀다. 안타깝고 아쉽게도 자살이 줄어들 가능성은 그만큼 적다.
<몽당 연필의 여행>과 <깜장 우산>은 삶이 힘들거나 스스로의 존재가 고민스러운 사람들 곁에 놓아주고 싶은 심리치료 동화들이다. 심리치료사들이 쓴 동화책들로 "내가 이곳에 당당한 나로 있어야 하고, 당연히 살아가야 하는" 존재감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변을 돌아보게 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 알려주는 동화이기 때문이다.
먼저 <몽당 연필의 여행>을 소개하면. 나 몽당 연필은, 영빈이 아버지가 외국으로 출장 갔다 오며 영빈이 선물로 사온 외제 필이다. 영빈이는 나를 무척 자랑스러워했고 영빈이 친구들은 날 갖고 싶어했다. 때문에 영빈이 필통 안 지우개와 자, 칼에게 나는 종종 으스대며 때론 그들을 무시하기도 했다. 언제까지고 영빈이가 날 사랑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지우개 등의 말대로 몽당연필이 됐고, 새것과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영빈이가 더 이상 찾지 않게 된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필통 속에 갇혀 지내다가 "이렇게 작고 볼품없는 것이 왜 내 필통 속에 있는 거야?"라는 타박과 함께 버려져 아이들 발에 채이며 교실바닥을 굴러다니게 된다. 날 갖고 싶어 했던 영빈이 친구들도 하찮고 쓸모없는 물건 취급한다.
'요일이가 나 같은 몽당 연필을 좋아하겠어? 키가 큰 연필, 멋진 샤프도 많을 텐데…….분명 요일이도 영빈이처럼 나를 버릴 거야. 나는 쓸모가 없어. 나 같은 게 왜 태어난 걸까?'
이제 난 두렵기만 하다. 세상을 살아갈 자신도 없다. 요일이 역시 결국 나를 버릴 거란 생각에. 애초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쓸모없는 존재란 생각에. 어쩌면 차라리 나와 세상을 위해 사라져 버리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몽당 연필은 "연필도 꼭 너처럼 작고 볼품없는 것을 좋아하는구나!"와 같은 놀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주워 소중하게 여기는 요일이도 결국 나를 버릴 것이라 단정하며 절망하는데…….
동화 속 몽당 연필을 사람으로 바꿔 생각하면, 한 인간의 쓸쓸하고 허무한 절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가족들의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다고 하소연하던 어떤 가장의 쓸쓸한 넋두리도, 한때는 잘 나가는 존재였으나 명예퇴직으로 밀려난 이후 집안에 틀어박혀 죽을 날만 기다린다는 어떤 사람의 절망도 떠올랐다.
동시에 자기 혼자 잘난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주변을 전혀 돌아보지 않는 안하무인의 사람들도, 새것과 새로운 것에만 끌려 자신에게 유용하게 쓰이던 물건이었건만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습게 버리고 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몽당 연필이 영빈이나 영빈이 친구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정말 좋은 연필이라기보다 외제였고 새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영빈이 필통 속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낡고 볼품없어진 자와 지우개, 칼이 있었기 때문에 돋보였고 잘난 존재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의 가치와 상관없이 누군가 만들어준 나의 가치이고, 나보다 못난 누군가가 있어 내가 잘나 보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몽당 연필은 스스로 잘난 존재인줄 알고, 때문에 언제까지고 영빈이의 사랑이 계속되리라 착각한 나머지 필통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그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도 거리낌 없이 하는가 하면 무시하고 거들먹거리다 버림받자 살아갈 이유까지 잃고 만 것이다.
몽당 연필의 모습과 몽당연필이 처한 상황은 우리들 혹은 우리들 주변 누군가들과 너무나 많이 닮았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과 흡사하다. 심리치료사인 작가는 이 동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이 세상엔 밝음과 어둠, 검은 것과 흰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예쁜 것과 못생긴 것 등으로 모든 것이 양분화 되어 있고, 세상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려 하지도, 통합하려 하지도 않은 채 모두 자기 색깔만 고집하며 살아가고 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다르고, 좋은 것과 나쁜 것, 예쁜 것과 못생긴 것의 차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깜장우산>은 남보다 못생기고 볼품없어 사람들에게 선택받지 못해 절망하고 좌절하는 깜장 우산의 자화상을 통해 결국은 이 세상 가장 낮은 모습 속에서 만물이 재창조되는 심리적 근원을 잘 묘사했다." - <깜장 우산> 추천사 중에서
▲ <깜장 우산> ⓒ 나한기획
비가 그친 후 어김없이 무지개가 뜨는 마을에 무지개색 우산을 만들어 파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비가 오자 다양한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우산 가게에 들러 빨강, 주황…….보라색 등 저마다 좋아하는 우산들을 사간다. 깜장 우산도 그 우산들 틈에서 나를 선택해 줄, 그리하여 멋진 세상 구경할 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아무도 깜장 우산을 사가지 않아 깜장 우산만 댕그라니 남고 만다.
그렇게 며칠, 그럼에도 끝내 선택받지 못하는 깜장 우산은 친구들의 말-숯검정 같다, 더럽다-이 맞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거라며 절망한다. 절망하던 깜장 우산은 무지개색 물감들을 펼쳐놓고 우산을 만들던 할아버지가 깜박 조는 사이 무지개색 물감들을 모두 감춰버리고 만다. 자신보다 곱고 예쁜 색들이 모두 사라지면 자신이 곱고 예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깜장 우산>을 읽으며 모든 색의 근원임에도 그 사실을 몰라 좌절하는 깜장 우산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몰라 세상에 나갈 자신감 없이 웅크린 아이처럼 여겨져 안타까운 동시에 한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하는 집단 따돌림 현장이 떠올라 씁쓸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선택받을 때를 기다리는 깜장 우산을 다른 우산들이 곱고 화려한 자신들과 달리 까맣다는 이유만으로 '더러우니 함께 놀면 안 되는 존재'라며 따돌림으로써 깜장 우산의 고민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깜장 우산>도 <몽당 연필의 여행>처럼 심리치료를 전공한 작가가 썼는지라 상처 받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존재감을 찾게 하는 요소들이 다분하다. 이런지라 어떤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또한 눈에 드러난 조건만으로 한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 <죽어야 사는 나무> ⓒ 나한기획
작가들은 '문학으로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료하자'는 취지의 통합문학치료연구소 회원들. 회원 모두 대학에서 문학치료과정을 공부한 사람들로, 지난해 11월부터 출간된 6권 모두 신경정신과 전문의, 예술치료학과, 심리학과, 철학과, 초등교육과, 미술대학 교수들의 감수, 추천을 받았다. 이 동화들은 심리치료 현장에서 교재로 쓰이기도 한다고 한다.
함께 출간된 <죽어야 사는 나무>는 나무 한그루의 생명과 죽음 과정을 통해 우리 삶의 이치와 생명의 순환을 보여주는 잔잔하고 묵묵한 동화로 <몽당연필의 여행>이나 <깜장우산>처럼 누가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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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 연필의 여행>ㅣ글:김수련ㅣ그림:윤세열ㅣ출판사:나한기획ㅣ2012-6-20ㅣ값:18000
<깜장 우산>ㅣ글:김영희ㅣ그림:이영경ㅣ출판사:나한기획ㅣ2012-6-20ㅣ값:18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