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난 고리1호기 공개한 한수원... 대책위 "아직 못 믿어"
고리원전 1호기 직접 들어가보니... 재가동 승인에 반발 여론 높아
▲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원전 제1발전소. 고리원전 1호기는 지난 2월 9일 비상상황에서 비상발전기가 구동되지 않고 그마저도 은폐한 것이 드러나 현재까지 가동이 중단되고 있다. ⓒ 정민규
정전사고 은폐로 가동을 중지했던 부산 기장군 소재의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안전위)는 지난 3월 12일 고리1호기 운영을 강제로 중단시켰다. 그로부터 4개월 가까이 흐른 4일 재가동이 승인됐지만 반발은 여전히 높은 상태다.
지난 2월 9일 고리원자력발전소1호기에 위치한 비상발전기는 비상상황에서 12분 동안이나 전력을 공급하지 못했다. 이 사고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였다. 당시 발전소장과 실장 등은 이 사건을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조직적 은폐가 이루어진 셈이다. 자칫 묻힐 뻔 했던 일은 우연한 기회로 세상으로 흘러나왔다. 고리원전에서 일하던 노무자들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누던 이야기를 한 시의원이 우연히 듣게되면서 부터였다. 부산시의회 김수근 의원은 본격적으로 이 사안을 파고들었다. 마침내 34년차 노후원전인 고리1호기의 부실 운영이 세상에 드러났다.
지역주민 공개에 하루 앞서 9일 기자들과 시민단체를 포함한 대책위 50명이 참석한 한수원의 고리원전1호기 공개 행사도 비난 여론을 의식한 조치였다.
고리원자력발전소로 들어가는 절차는 까다로웠다. 사전에 방문 목적을 알리고 도착해서 신분증을 임시출입증으로 교환하는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발전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발전동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런 절차를 한번 더 거쳐야 했다. 마치 공항에서 출국 수속이라도 밟듯 금속탐지기를 통과하고 짐은 엑스레이 검사를 받았다.
노트북과 카메라는 반입을 하지 못하거나 보안스티커를 붙어야했지만 언론 공개 행사를 위한 자리라 이같은 절차는 생략이 됐다. 번거롭다면 번거롭다고도 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절차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발전소 출입이 허가됐다. 출구를 나서자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거대한 고리원전의 발전동이 시야를 채웠다.
한경수 제1발전소장은 전문가들과 취재진을 비상디젤발전기로 안내했다. 참석자들이 살펴본 것은 지난번 사고를 일으킨 비상발전기 옆에 위치한 제2 비상 발전기였다. 한 소장은 "지난번과 같은 사고는 다시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 9일 고리원전을 찾은 부산시 원자력대책위원회 관계자들에게 한경수 고리원전 제1발전소장이 비상디젤발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정민규
즉석에서 비상디젤발전기를 가동해보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굳이 작동을 해볼 필요가 없다며 참석자들의 요구를 거절하던 한 소장은 비상 발전기 가동을 지시했다. 기술진이 5분여동안 발전기를 점검한 뒤 발전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소음이 발생했다. 사전에 나눠준 귀마개를 착용했지만 몸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이 발전기 하나만으로 시간당 2730 kWh의 전력이 생산가능하다. 가정집이 한 달에 300kWh의 전력을 사용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웬만한 마을 하나에 이 발전기로 전력을 공급할 수도 있다.
한수원 "쓰나미가 와도 전력 수급 가능"
이어 참석자들이 안내되 곳은 방파제였다. 대형 쓰나미에 맞서 기존의 7.5m에 불과하던 방파제를 10m로 쌓아올리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한 소장은 고리원전을 내려다보는 야트막한 산을 가리키며 "일본의 경우 철탑이 평지에 있어 쓰나미에 쓸려갔지만 내년 3월이 되면 (고리원전의) 변전소를 산으로 올려 쓰나미가 와도 전력 수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소장 뿐 아니라 다른 원전 관계자들도 "지난번 사고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말 속에는 고리 원전을 재가동하겠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부 참석자들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 문제였던 사고였다"며 여전히 원전 안전에 의문을 나타냈다.
9일 현장 방문에 앞서 열린 공개토론회에서는 날선 공방이 오갔다. 안전위과 한수원 측 관계자는 고리원전의 안정성을 거듭 자신했다. 반면 부산시 원자력대책위원회(대책위) 측은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맞섰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비상 디젤발전기에 솔레노이드 밸브가 재사용된 것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고리원전의 부실한 운영이 도마에 올랐다. 솔레노이드 밸브는 비상 디젤발전기를 가동시키기 위해 공기를 공급하는 밸브다. 이 밸브는 안전위 측의 자료만으로도 올 들어 3차례 정상 가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한번 쓰였던 솔레노이드 밸브가 재사용된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데 있었다. 안전기술원 박현신 박사는 "(사용되던 솔레노이드 밸브가) 들어간 것은 확인이 되나 그 이유는 모른다"고 밝혔다. 즉 한차례 사용을 한 솔레노이드 밸브를 재사용하면서 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말이다. 결국 이런 허술한 절차로 사용된 솔레노이드 밸브가 비상발전기의 구동을 막는 초유의 사태를 야기했다는 설명이다. 대책위 "기계고장만 안 나면 괜찮다는 거냐" 이어 대책위 측은 주먹구구식 원전 운영을 질타했고 안전위와 한수원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오재호 부경대학교 교수는 "이미 사회적 불안과 공포는 발생된 것인데 기계고장만 나지 않으면 괜찮다는 거냐"고 따져물었다. 이수용 동남권원자력의학원장도 "은폐사고를 줄일수 있도록 한수원 직원들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해동 안전기술원 단장은 "모든 안전변수들을 파악할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며 "상시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조직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참석한 주민대표들 사이에 미묘한 입장차가 감지되기도 했다. 한 주민대표는 "제품 결함이 있어도 몇 년전부터 소리가 나거나 이상이 있는데 그런 것을 발견못하고 짜맞추기식으로 하면 (주민들이) 이해를 하겠느냐"며 "짜맞추기를 하지 말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반면 다른 주민은 "반핵 단체가 떠들고 있어 불안감이 가중된다"며 "반핵단체들은 주민들을 선동해서 지역경제를 파탄내는 행동을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주민들 사이의 입장차는 10일로 예정된 주민 설명회와 향후 고리원전 1호기 재가동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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