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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천이 있어 풍요롭고 여유로운 땅

[추풍령에서 도담삼봉까지, 충북을 걷다 ⑦] 청산면

등록|2012.07.12 10:51 수정|2012.07.12 10:51
보청천 이야기

▲ 보청천 ⓒ 이상기


판수리 마을을 지나는 하천은 자연스럽게 보청천으로 합류한다. 우리는 보청천 제방을 따라 청산교 쪽으로 내려간다. 보청천은 보은군 내북면 하궁리에서 발원해 청산 넓은 들을 지나 동이면 고당리에서 금강에 합류된다. 보청천이라는 이름도 보은과 청산에서 한자씩 따 만들어졌다. 보청천은 청산면소재지 남쪽을 동서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청산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입지를 하고 있다.

더욱이 보청천은 청산을 지날 때 강폭이 가장 넓다. 그것은 보청천이 산골짜기를 빠져 나와 비교적 넓은 평야지대를 지나기 때문이다. 하천 가운데로 물이 흐르고, 제외지에 수초가 많아 생태하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 때문인지 이곳 보청천에는 어종이 풍부하다. 붕어, 잉어, 쏘가리, 배스는 물론이고 피라미, 참매자 등도 볼 수 있다. 보청천은 길이가 69.3㎞이고 유역면적이 553.38㎢다.

청산예찬

▲ 청산예찬석 ⓒ 이상기


19번 국도를 따라 청산교를 건너자 오른쪽으로 공원과 정자가 나타난다.  공원 입구에는 글샘 이상성이 지은 시 '청산예찬'이 큰 돌에 새겨져 있다. 예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청산의 산수와 자연을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역사를 노래하고 있다.

우뚝 솟은 도덕봉에
산새소리 즐겁고
보청천 맑은 물에
고기들이 노는 곳.
칠보단장 이름 난
살맛나는 고장
청산의 명성을
이어가리다.

[…]

동학횃불 밝히고
독립만세 외쳤던
정의로운 인물이
자자손손 이어진 민족혼이 깃든 곳.
서로 믿고 도우며
한 마음 한 뜻으로
청산에 살리라. 

▲ 청산정 ⓒ 이상기


시가 평이해서 잘 이해가 가는데, 칠보단장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튄다. 여기서 칠보는 보청천에 있는 일곱 개의 보로, 예실보, 범딩이보, 용잉이보, 장사래보, 새들보, 산성보, 안임이보를 말한다. 그리고 단장은 2일과 7일 청산면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단 하나의 5일장을 말한다. 청산예찬석을 지나 공원으로 들어가면 물가 쪽으로 청산정이 위치한다. 우리는 이곳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한다.

청산정 옆으로는 여러 종류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이 관찰사와 현감 선정비다. 16개쯤 세워져 있다. 그 중 고종 때 관찰사를 지낸 민치상의 영세불망비도 보인다. 민치상의 선정비는 이곳 청산 말고도 충청도 곳곳에서 보인다. 그리고 동학혁명군 재기포 기념비도 보인다. 그 옆에는 반공투사 위령비와 월남참전기념비도 보인다. 그리고 애국지사 박재호 선생 공적비도 있다.

▲ 색동회 창립회원 모임 ⓒ 이상기


이제 우리는 청산삼거리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교평삼거리까지 간다. 그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왼쪽 길은 19번 국도로 청성면, 보은읍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오른쪽 길을 택해 청산면 소재지로 들어간다. 청산면은 옛날 현이 있던 곳이어서 그런지 면소재지가 크고 번창하다. 길가로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간판이 하나같이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간판에는 상호와는 관계없는 캐릭터와 시, 악보와 사진이 붙어 있다.

간판에 악보라니? 음악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작곡가 정순철과 관계있는 내용이다. 그럼 정순철은 누구인가? 그가 '짝짜꿍' 노래와 '졸업식 노래' 작곡가라는 사실을 나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더욱이 그는 1923년 5월 1일 방정환, 윤극영 등과 색동회를 창립한 사람이다. 바로 그 정순철이 1901년 이곳 청산면 교평리 310-10번지에서 태어났다. 정순철의 삶과 음악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상세히 다룰 것이다.  

청산향교

▲ 청산면사무소 ⓒ 이상기


청산면 소재지는 교평리, 지전리, 백운리의 3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교평리와 지전리를 지나 백운리까지 갈 것이다. 우리가 오늘 묵을 곳이 백운리 마을회관이기 때문이다. 현재 청산면의 상업지역은 교평리와 지전리에 형성되어 있다. 교평리라는 이름은 향교가 있는 평지라는 뜻에서 나왔다. 우리는 교평리에 있는 청산향교와 정순철 생가를 찾아 나선다.

지도를 보니 향교가 먼저 있고, 정순철 생가가 나중에 있다. 우리가 교평노인정 앞에 이르니 향교가 보인다. 우리는 노인들에게 정순철 생가를 묻는다. 그렇지만 명쾌하게 설명을 못해 준다. 우리는 물어물어 정순철 생가를 찾아간다. 그런데 그 집에 아무도 없다. 이 집이 정순철 생가라는 것을 확인해줄 사람이 없다. 소위 심증은 가지만, 그것을 확인해 줄 사람이 없어 안타깝다. 정순철 생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라도 하나 붙여놓으면 좋으련만.

▲ 청산향교의 명륜당 ⓒ 이상기


아쉬움을 뒤로 하고 향교로 간다. 청산향교는 1981년 충북 유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되었다. 향교 앞에 홍살문이 있고, 그 안으로 외삼문이 있다. 그런데 이 문이 닫혀 있어 옆의 향교 사무소를 통해 들어간다. 청산향교는 앞에 명륜당이 있고, 뒤에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 형식이다. 우리는 먼저 명륜당을 살펴본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축대나 주초석, 기둥에서 고졸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건물에 문이 적어 폐쇄적인 느낌이 든다. 명륜당을 지나면 내삼문이 있고, 그 안에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측면 한 칸을 주랑으로 만들었다. 여늬 향교와 마찬가지로 공자와 사성(안자, 증자, 자사, 맹자), 송나라 6현, 우리나라 18현을 모셨다. 대성전 건물은 1979년에 중수한 것이나, 기단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향교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절터가 있는데, 그곳에서 계단석과 주초석을 가져왔다고 한다.

▲ 대성전 ⓒ 이상기


청산향교는 1398년(태조 7년) 처음 지어졌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2년(선조 35년) 백운동에 다시 세웠다. 1654년(효종 5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진 향교는 정조와 헌종 때 중수를 거듭하였다. 명륜당은 이때 지어진 건물이고, 대성전은 현대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향교는 현재 민가 사이에 있어 조금은 답답한 느낌이 든다.  

백운리 마을회관 정자에서의 뒷담화

▲ 백운리 마을회관 ⓒ 이상기


향교를 본 다음 우리는 청산초등학교 옆으로 해서 백운리 마을회관으로 간다. 아침 일찍 출발한 덕에 오후 4시가 안 되어 백운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 여유가 있어 모두 정자에 모여 지난 이틀간의 탐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또 이번 탐사를 통해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어 자기소개도 한다. 이번 탐사가 의미있다, 좋았다 하는 일반적인 이야기도 있었지만, 좀 더 전문적이고 철학적인 내용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내가 나를 모른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볼 때 고정관념이 지배를 한다. 그러므로 나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비쳐진다. 그러므로 나라는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관점의 종합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 대화를 경청하는 CBitv 한상두 PD ⓒ 이상기


또 다른 의견은, 답사 중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그리고 체험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황간에서는 노근리 평화공원과 정구도 이사장을 통해 노근리 사건의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황간에서 청산으로 넘어오면서는 말투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순철 작곡가의 고향이 청산이라는 사실은 정말 새로운 이슈다. 연구를 통해 재조명해야겠다.

다른 회원은 앞으로 새로운 이슈를 계속 발굴하고 기록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담화를 끝내고 짐을 푼 우리는 몸을 씻고 저녁때까지 휴식을 취한다. 저녁은 청산에서 가장 유명한 생선국수집에서 황규철 도의원이 내기로 했다. 이처럼 저녁에 현지인들과 만나는 것은 그동안 답사한 내용을 설명하고, 상호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에게 현지 상황에 대한 보충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선광집에서 먹은 어죽국수와 도리뱅뱅이

▲ 청산 천주교회 ⓒ 이상기


저녁이 되기까지 조금 시간이 남아 우리는 청산초등학교와 청산 천주교회를 잠시 들러본다. 초등학생들은 모두 집으로 갔지만, 이웃하고 있는 청산중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지나간다. 학교 한쪽으로는 향토사료관이 있다. 그리고 향토사료관 동쪽 언덕에 천주교회가 있다. 붉은색 벽돌에 기와를 얹은 한옥형식으로 1959년에 지어졌다. 파티마의 모후 교회답게 '항상 즉시 기쁘게', '모든 일을 사랑으로' 같은 성경 말씀이 적혀 있다.

교회를 나와 청산의 시장통을 지나 선광집으로 간다. 선광집은 1962년에 문을 연 향토음식 전문점이다. 이곳에서 가장 잘 하는 음식은 생선국수, 생선튀김, 도리뱅뱅이다. 이 집이 말 그대로 청산 생선국수의 원조다. 생선국수를 일명 어죽국수라고 부른다. 그것은 생선을 갈아 죽처럼 만든 다음 그것에 국수를 넣어 만들기 때문이다.

▲ 생선국수 전문점 선광집 ⓒ 이상기


방에 들어 자리를 잡으니 먼저 도리뱅뱅이 나온다. 생선에 달착지근한 양념을 해서 살짝 구운 듯 한데, 그 맛이 오묘하다. 술안주로는 최고다. 도리뱅뱅이 금방 동이 난다. 한 접시씩 더 시켜서 먹는다. 조금 있다 어죽국수가 나온다. 추어탕처럼 텁텁하게 만든 국물에 국수가 들어 있다. 어떻게 양념을 했는지, 어죽국수에 단맛이 돈다. 맛이 좋다. 식사량이 많은 사람들은 어죽국수도 더 먹는다.

10시간을 걸어 소진된 양분이 다 보충될 것 같다. 선광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는 청산면 소재지를 남북으로 가르는 지전1길을 따라 백운리로 올라간다. 길 왼쪽에는 청산면의 주요관청인 면사무소, 치안센터, 우체국이 있다. 그리고 집과 담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전통적인 삶을 보여주는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작곡가 정순철의 노래와 관련된 그림이다. 이들 벽화를 통한 정순철의 부활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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