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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공연장에 '수영복 차림'으로 간다고?

[서평] 박종호의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

등록|2012.07.12 11:14 수정|2012.07.12 11:16
유럽 여행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죠. 프랑스에선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노트르담 사원,  스위스에선 루체른 호수와 융프라우, 이탈리아에선 밀라노 성당, 콜로세움, 바티칸 성당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선 찰스부르크와 비엔나 등이겠죠.

그곳들은 모두 나름대로 역사와 뜻을 간직한 곳들이죠. 유럽 관광객들이 대부분 필수 코스를 추천받고 그곳들을 둘러보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이탈리아를 찾는 관광객만 해도 콜로세움, 포로로마노, 베네치아 광장,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카타콤 그리고 판테온을 둘러보게 되죠.

물론 이색 여행코스를 찾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른바 유럽의 박물관 여행 같은 것 말이죠. 무려 30만 점이나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의 루브로 박물관이나, 시스틴 성당이 있는 이탈리아의 바티칸 박물관, 그리고 로마와 그리스 고대 유물들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영국의 대영박물관도 그렇겠죠.

여름철 유럽 휴양지에서 열리는 음악축제들

▲ 박종호의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 겉표지. ⓒ 시공사

그런데 유럽의 페스티벌 여행은 어떨까요? 저도 그런 여행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페스티벌 여행이란 유럽의 클래식 음악이나 오페라 같은 고급 문화계의 분위기를 맛보고 오는 것을 일컫습니다. 물론 클래식이나 오페라를 관람하는 게 만만치 않겠지만 그만큼의 위안과 재충전은 충분히 얻는다고 하죠.

오페라 공연하면 대부분 남자들은 턱시도나 검은 양복을 입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죠. 물론 여자들은 등이 훤히 파인 드레스를 입고 가고요. 그런데 뜻밖에 수영복 차림으로 오페라를 즐기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요? 놀라 자빠지겠죠. 오스트리아의 뫼르비슈 호수 페스티벌이 그런 곳이라고 해요.

"브레겐츠도 베로나도 야외 공연이지만 복장은 얌전하다. 그런데 이 페스티벌에서는 아이와 어른이 함께 수영복 차림으로 들어와서 오페라를 즐긴다. 선글라스나 모자는 물론이고 아이들은 물놀이 공에 풍선까지 들고 왔다. 성인 남자들도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이며, 손에는 아이스크림과 청량음료가 들려 있었다. 결국 재킷을 입은 나만 완전히 촌사람이 되어 버렸다." (160쪽)

클래식 전문매장 풍월당 대표인 박종호의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시공사 펴냄)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1993년 첫 유럽 여행 이후, 지금까지 수백 차례 유럽 여행을 다녀온 그는 매번 새로운 주제로 여행을 떠난다고 하죠. 페스티벌 여행은 그 중 가장 진귀하게 여기는 여행 중 하나고요.

그가 여름 휴가철에 유럽 페스티벌 여행을 계획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철에 유럽을 가면 대부분의 콘서트홀이나 오페라 하우스들이 시즌을 마감하고 문을 잠그지만, 휴양지에서만큼은 축제가 열린다고 하죠. 그게 바로 여름철 음악 축제의 묘미라고 해요. 그야말로 유럽의 고급문화를 단기간에 걸쳐 입체적으로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기회라고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유명 페스티벌은 풍광이 수려하거나 고적이 많은 유서 깊은 관광지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오랜 유적의 고도(古都)인 라벤나와 베로나 같은 곳도 그렇고,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루체른과 인스부르크도 그렇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찰스부르크는 모차르트와 관계가 깊고, 바이로이트는 바그너, 페사로는 로시니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하죠. 그곳들이 여행객들을 맞이하니 낮에는 다들 풀어놓아 휴가를 즐기게 하고, 저녁동안에 공연을 즐기도록 배려한다고 하죠.

"그러므로 마이크를 쓰지 않는 이곳에서는 어디에 앉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경험상 가장 잘 들리는 곳은 세 군데다. 당연히 제일 앞의 최고석이 소리도 최고인데, 앞에서부터 대략 10번째 줄 안에는 앉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무대 양쪽 가장 자리의 스탠드다. 마지막은 스탠드 맨 뒤의 제일 꼭대기 자리다. 여기는 무대에서 가장 멀지만, 밤이 깊어지면 놀랍게도 소리가 깨끗하게 들린다. 보통 말하는 밤 하늘의 오페라라는 것이, 이 자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378쪽)

이른바 2만 관중을 모두 하나 되게 한 이탈리아의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의 객석을 두고 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돌 무대 위의 페스티벌 말이죠. 그곳은 브레겐츠나 장크트 마르가레텐 페스티벌이 매일 똑같은 공연을 올리는데 반해 매일 다른 공연을 번갈아 가며 올린다고 하죠. 그게 가능한 건 베로나만의 거대한 예산도 없지 않겠지만, 그곳에 들어 온 관광객들을 최소한 며칠이라도 더 붙잡아 두기 위한 전략 차원이라고 하죠. 입장 인원이 1만명일 경우 하루 저녁 수입만도 10억 원을 넘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게 가능하다는 것이죠.

처음 유럽의 페스티벌 여행을 맛본 뒤, 10년 이상 구도자가 성지를 순례하듯 수많은 페스티벌을 찾아다녔다는 박종호 대표. 어떤 곳은 거의 매년 방문하여 지친 감성을 일깨웠고, 또 다른 때는 1년 내내 페스티벌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병을 앓아야 했다고 합니다. 그 뒤로는 여름철이면 무조건 짐을 싸서 그 여행길에 몸을 실었는데, 지금은 동호인들과 동행한다고 하죠.

이 책은 그가 느끼기에 가장 대표적인 유럽 페스티벌 18곳을 소개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의 발로 직접 밟고, 온 몸으로 느낀 곳만을 엄선한 것이고요. 페스티벌 여행에 이토록 그가 정열을 바치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테마 여행 문화가 자리잡기를 바라는 간절한 뜻에 있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 박종호(의사) 저, 시공사 펴냄, 2012.06.18, 2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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