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가락처럼 휘어진 압록강단교... "옛 고구려땅과 단절"
상생재단 대학생 40명과 함께 '고구려-백두산을 찾아서' ①
충남 당진에 있는 '지속가능 상생재단’이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고구려 유적지 및 백두산 답사길에 나섰다. 상생재단은 비영리법인으로 당진에 입주한 현대제철에서 발생하는 수재 슬래그(금속 산화물 등이 쇳물 위에 뜨거나 찌꺼기로 남는 것의 총칭)가 당진 지역 내에서 처리되지 못하게 된 문제를 지역공동체와 협의를 통해 해결하다가 설립됐다. 상생재단의 이번 고구려 유적지 및 백두산 답사는 당진에 적을 둔 지역 대학생들 역사연수를 위해 기획됐다. [편집자말]
▲ 인천항에서 단동으로 가는 단동훼리. 800명 정원에 매회 600 여명의 관광객이 고구려를 찾아 떠나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 역사왜곡으로 고구려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이 급증한 때문이다. ⓒ 심규상
고구려를 향해 출항했다. 관광객은 예상보다 많았다. 인천항에서 중국 단동간 여객선은 밤을 새워 꼬박 15시간을 달린다.
9일 오후 5시 30분경 인천항을 출발한 동방명주호에는 800명 정원에 약 650명이 탑승했다. 대부분은 고구려 유적지와 백두산을 향해 가는 관광객들이다. 일주일에 3번 운항하는데 평균 600명이 넘는단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작업으로 고구려 유적지를 찾는 발길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중에는 '지속가능 상생재단 (이하 상생재단)' 소속 42명이 포함돼 있다.
상생재단은 충남 당진에 있는 비영리법인으로 당진에 입주한 현대제철에서 발생하는 수재 슬래그(금속 산화물 등이 쇳물 위에 뜨거나 찌꺼기로 남는 것의 총칭)가 당진 지역 내에서 처리되지 못하게 된 문제를 지역공동체와 협의를 통해 해결하다가 설립됐다. 일종의 기업과 지역 공동체간 상생의 산물이다.
이후 상생재단은 기부자를 찾아 기금을 모으는 일과 모금된 기금을 공익활동에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고구려 유적지로 향하는 이들은 당진에 적을 둔 대학생들로 다소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고구려 역사연수 티켓을 거머쥐었다.
뱃길 15시간에도 650명... 고구려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 크게 늘어
▲ 단동훼리 구내식당 식사모습. ⓒ 심규상
예상보다 30여 분 늦게 출항했다. 첫 일정은 기다리던 저녁 식사였다. 훼리호 1층 식당에는 한꺼번에 100여 명이 이용할 수 있다. 저녁은 밥과 된장국에 김치와 깍두기, 돼지고기 볶음, 포장 김 등 5찬이다.
배는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였던 팔미도를 지나 가월도 부근을 지나고 있다. 누구는 멀리 보이는 풍경이 가월도가 아닌 덕적도란다. 연평도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승무원에게 물었지만, 잘 알지 못한다.
밥을 먹던 일행 중 한 명이 "김치 맛이 중국산 같다"고 한 마디한다. 옆에 있던 학생이 '돼지 고기볶음'도 중국산 같단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일행들이 원산지 확인에 나섰다. 하지만 어디에도 원산지표시가 없다.
정부는 수입개방으로 값싼 외국산 농산물이 무분별하게 수입되고, 이들 농산물이 국산으로 둔갑 판매되는 등 부정유통사례가 늘어나자 농민과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1991년 농산물 원산지표시 제도를 도입했다. 모든 식당으로 원산지표시가 확대된 것은 2008년이다.
조리 책임자와 여객담당 직원에게 우선 저녁 재료의 원산지부터 물었다.
▲ 상생재단 일행들의 호기심이 관행을 바꿨다. 일행들의 지적에 단동훼리 구내식당에 처음으로 원산지표시가 시행됐다. ⓒ 심규상
"......"
"왜,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았죠?"
"안 그래도 해야 한다는 내부 지적이 있어 조만간 시행하려고 생각했어요"
"원산지표시가 의무화된 지 수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하려고 한다고요? 관계기관에서 점검도 있었을 텐데..."
"아직 한 번도 점검을 안 받았어요. 하지만 원산지표시를 하라는 공문은 받았습니다. 다~ 저희들 불찰입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언제부터 하실 생각인지요"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훼리호 구내식당 원산지표시, 일행의 호기심이 관행을 바꾸다
다음 날(10일) 아침 식사는 오전 6시부터 시작됐다. 식당 앞에 어제까지 없던 원산지표시가 붙어 있다. '김치, 오징어 중국산- 쌀 국내산'. 상생재단 팀원들의 궁금증이 수년간의 관행을 바꾼 것이다. 여행의 목적은 많이 보는 게 아니라 다르게 보는 것이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배는 북한 황해도 장산곶을 지나 세계 4대 갯벌 중 하나라는 북한의 신도를 지났다. 하지만 깜깜한 바다 너머 풍경이 어느 곳인지 아는 이 없었다. 배 안에서라도 북한 땅을 보려 했던 일행들의 기대는 까막눈으로 미수에 그쳤다. 갑판에 앉아 술잔을 벗 삼아 밤 풍경을 응시하다 쪽잠을 자기를 되풀이하는 사이 10일 중국 시간으로 오전 9시 경(한국 시간보다 1시간이 늦다), 목적지인 단동항에 도착했다.
단동은 중국 요령성 남부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신의주와 마주 보고 있다. 56만이 거주하는 중국 최대의 변경도시인 이곳은 고대로부터 한반도와 만주, 중국을 잇는 길목이다.
▲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압록강 단교. ⓒ 심규상
일행들이 먼저 달려간 곳은 국경선처럼 느껴지는 압록강이다. 고구려인들이 당나라 군대의 남진을 막기 위해 압록강(염난수)을 배수진 삼아 활을 쏘던 곳. 고구려 평양성을 향하던 발해와 당의 사절단이 오가던 강. 일제강점기 당시 삶의 터전을 잃은 한국인들이 눈물을 떨구며 건넌 강.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나라 잃은 설움에도 해방세상을 꿈꾸며 넘나들던 강. 그 곳에 압록강 단교가 자리 잡고 있다.
단동과 신의주를 잇는 압록강 다리는 일본의 대륙진출을 위한 통로였다. 처음에는 중국 동북지역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실어 나르기 위해 건립했다. 이후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 군대와 무기를 실어 날랐다. 3년 동안 연인원 5만 명을 동원하여 1911년 10월에 준공했다. 중앙에 철도를 부설하고 좌우 양쪽에 인도를 만들어 사람들의 통행이 가능하게 했다. 일제강점기 말엽에는 한해 보도통행자만 300만 명에 육박했다고 하니 북한과 중국을 잇는 육로의 길목이다.
압록강단교에서 본 신의주...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 끊어진 압록강 철교. 다리 기둥 나머러 보이는 곳이 북한 신의주 땅이다. 어린이 놀이시설이 서 있지만 경제난으로 수년 째 운영되지 않고 있다. ⓒ 심규상
하지만 이 다리는 6·25 한국전쟁 때 중공군의 남하를 막기 위한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돼 중국 단동과 연결된 절반만 남아 있다. 압록강단교(鴨綠江斷橋)라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행들은 단교 위를 한걸음 한걸음 걸었다. 어느 순간 엿가락처럼 휘어진 모습이 보이더니 더 이상 갈 수 없다. 북한 땅이 손에 닿을 듯 지척이다. 강 너머로 바라 볼 수밖에 없는 분단의 현실에 가슴이 저며 오고, 옛 고구려 땅과 단절된 상징인 듯하여 착잡함이 더했다.
철교 끄트머리에 중국어로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동행한 상생재단의 한 임원은 "이 다리가 다시 이어져 통일된 남북의 역동적 기운이 중국 동북 3성으로 뻗어 나가는 날이 올 것"이라며 "이 자리에 있는 학생들이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단교 바로 위에 북한을 오가는 복선형 철교인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가 있지만, 왕래가 거의 없다. 30여 분을 지켜보는 동안 신의주 방향에서 오는 2대의 트럭이 전부였다.
▲ 끊어진 철교, 하지만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 심규상
차창 밖으로 위화도가 보인다. 정확히 단동과 신의주 사이다.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위해 회군했던 곳. 혁명은 성공했지만 이후 요동정벌은 요원한 일이 됐다. 당시 이성계는 회군의 이유로 4대 불가론을 내세운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고,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부적당하고, 남쪽에서 왜구가 침범할 우려가 있으며, 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로 쓸 수 없고 병사들도 전염병에 걸릴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최영은 중원의 혼란기로 요동은 주인이 없는 빈 땅이나 마찬가지라며 고구려의 옛 땅인 요동을 수복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역사에 '만약'이 있을 수 없지만, 당시 이성계가 회군하지 않고 요동정벌에 나섰다면?
일행들이 탄 버스는 고구려시대 유적이 가장 풍부하게 남아 있는 집안을 향해 달렸다. 집안은 2대 유리왕부터 20대 장수왕까지 모두 420여 년간 고구려의 도읍지였다. 단동에서 버스로 약 5시간 거리. 고구려의 전성기로 향하는 일행들의 가슴은 뛰었다.
▲ 고구려 유적지와 백두산을 향해 떠난 '지속가능 상생재단' 팀원들. 뒤로 보이는 곳이 압록강 너머 신의주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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