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 뒤에서 나를 쫓아내려는 세력 있다 카이스트 위해 산 저를 싫어한다니 놀랍다"
[단독인터뷰] '계약해지안' 상정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
▲ 서남표 총장의 거취를 놓고 카이스트가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서 총장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자신이 해임되는 사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심정을 토로했다. ⓒ 유성호
'대학개혁'을 내건 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총장은 지난 2010년 7월 연임에 성공했다. 이로써 그는 41년 카이스트 역사상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한 총장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총 5명의 학생이 자살하면서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최근 카이스트 이사회(이사장 오명)는 이러한 기류를 틈타 연임 임기 2년을 남겨둔 서 총장의 계약해지안을 상정했다. 형식은 '계약해지'지만 사실상 '해임'이다. 특히 '반서남표' 이사가 많은 이사회 구성상 오는 20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계약해지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아주 높다.
지난 17일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서남표 총장은 "카이스트 역사상 처음으로 연임하고 처음으로 쫓겨나는 총장이 될 것 같다"며 "(이것은) 역설적"이라고 말했다. "아무렇지 않다"면서도 그는 "아쉽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서 총장은 3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자신이 해임되는 사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추진한 대학개혁의 성과를 정당하게 평가받아 해임되는 게 아니라 해임 과정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 총장은 "2010년 7월 연임하기 전 교과부에서도 저를 내보려고 했다가 실패했는데 오명 이사장도 2010년 9월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2년간 저한테 나가라고 얘기하고 있다"며 "오명 이사장 뒤에서 제 사퇴를 종용하는 '어떤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서 총장은 "제가 보기에는 제 사퇴를 종용하는 세력은 오명 이사장이 아니다"라며 "서남표를 내쫓아야겠다는 어떤 그룹이 오명 이사장을 이사장으로 모시고 그것(서 총장 퇴진)을 이루려고 하지 않나 추측한다"고 말했다.
'사퇴 종용 세력'의 실체와 관련, 서 총장은 2011년 12월에 있었던 일을 언급했다. 당시 오명 이사장은 '특정 고위층'의 뜻이라며 서 총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서 총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오명 이사장에게서 특정 고위층의 이름을 직접 들었지만 제가 직접 얘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서 총장의 한 측근은 "특정 고위층은 정부와 관련된 사람으로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이어 이 측근은 "카이스트 교수 중 30% 정도가 KS(경기고-서울대) 인맥"이라며 "그분들이 카르텔을 형성해 총장직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은 "청와대 안에도 반서남표와 친서남표가 있다"며 "서 총장을 돕는 분들도 있지만 몇 년 동안 연임에 반대하며 집요하게 방해하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서 총장은 "청와대 안에서 과학기술 계통은 저를 싫어하고 교육 계통은 저를 지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서 총장을 신임하던 이명박 대통령도 힘을 못 쓰고 있다'고 지적하자 "나는 모른다"라며 "청와대에 전화해 '왜 MB가 가만 있냐'고 직접 물어보라"고 응수했다.
특히 서 총장은 "카이스트 총장을 그만두면 책을 쓰려고 한다"면서 "제 뒤에서 어떤 사람이 나를 내보내려고 했는지, 못살게 굴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책을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카이스트 위해 살았는데 저를 싫어한다니 놀랍다"
▲ 서남표 총장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자신이 추진한 대학개혁의 성과를 정당하게 평가받아 해임되는 게 아니라 해임 과정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유성호
'대학개혁의 상징'이었던 서 총장에게는 '불통과 독선의 리더십'이라는 평가가 따라다녔다. 일각에서는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닮았다"는 극단적 평가를 내놓았다. 총장으로서 갈등을 중재하고 풀기보다는 교수·학생 등과 불통하면서 갈등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 총장은 "자기하고 의견이 같지 않으면 불통이라고 하는 것 같다"며 "학과장 중심제만 없애주면 소통이 되는데 제가 그걸 못해준다고 하니까 소통이 안 된다고 얘기하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소통이 무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총장은 "돈이 무한정 있으면 누구한테나 다 줬으면 좋겠지만 한정된 재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을 더 잘 해줄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그걸 가지고 소통을 안 한다고 하면 저는 방법이 없다"고 학교 안팎의 부정적 평가에 불만을 나타냈다.
특히 서 총장은 잇따른 자살 사태에는 "슬프고 놀라웠다"고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입학처에서 자살 원인을 파악했지만 (5명이) 다 달랐다"며 "학생과 부모,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살 원인을 밖으로 이야기하지 않아 언론으로부터 수업료와 영어교육 때문에 자살이 생겼다고 몰매를 맞았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서 총장은 "(자살 원인을 밖으로 얘기하지 않아) 우리가 뒤집어쓴 거다"라면서 "카이스트에서 자살이 (연달아) 생기니까 언론에서 (수업료와 영어교육 등) 간단한 이유를 찾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인터뷰에 동석한 카이스트의 한 관계자는 "자살이 학교 시스템 때문에 생긴 게 아닌데 우리가 (자살 원인과 관련해) 제대로 말을 못했다"며 "다만 천재끼리 경쟁하다 보니 우열이 가려지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굉장히 큰데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상담센터가 부족했다"고 일부 정책적 문제를 시인했다.
끝으로 서 총장은 "저는 1주일 내내 하루 14시간 카이스트를 위해 썼고, 집사람은 손님을 치르느라 쿠키와 케이크를 몇 만 개 만들 정도로 부부가 모두 카이스트를 위해 살았다"며 "그런데도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의 한 측근은 "서 총장은 (학연, 지연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대학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고, 그런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공격을 받게 됐다"고 씁쓸한 분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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