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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이 되면 죽어요... 몸 속 '그것' 때문에"

철창 속의 반달가슴곰 이야기... 사육곰 약 1100여마리

등록|2012.07.21 11:49 수정|2012.07.21 11:49
지난 14일과 15일 경기도 용인 곰 사육장에서 반달가슴곰 두 마리가 탈출했다가 사살됐습니다. 이 사건 후 동물학대 논란과 함께 사육곰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한국에는 전국 56개 농가에 1062마리의 사육곰이 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 종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현재 반달가슴곰 27마리가 야생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반달곰을 의인화해 곰 사육의 문제를 짚어본 글입니다.   <기자주>  

▲ 나는 반달가슴곰입니다. ⓒ 전경옥

나는 곰이에요. 가슴에 반달처럼 생긴 무늬 보이시죠? 사람들이 우리 가슴에 있는 무늬 때문에 반달가슴곰이라고 불렀데요. 엄마에게 들었는데, 우리 선조들은 산속 깊은 곳이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보다 훨씬 북쪽의 깊은 숲에서 살았대요. 아마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 그리고 그 전에는 우리 선조들에게 계속 그렇게 들었겠죠.
옛날 우리 선조들은 숲속에서 도토리나 나무 열매를 따먹거나 강으로 내려와 작은 물고기도 잡으며 살았데요. 하늘에서 작은 얼음덩어리가 내려올 때쯤 되면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무굴이나 동굴로 들어가 겨울 내내 잠만 잤다고 해요.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발톱으로 나무를 긁어서 달콤한 수액도 빨아먹고요.

그런데, 이건 다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예요. 나는 나무 위에 올라가본 적도, 도토리를 따먹은 적도 없어요. 우리 엄마는 나를 위해 물고기를 잡아준 적도 없어요. 사실, 물고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요. 물에 사는 작은 동물이라는데…. 우리와 달리 다리도 없고 가죽도 비늘로 되어 있다고 해요.

우리 엄마는 하루 종일 벽만 쳐다보고 고개만 왔다갔다 하면서 보내요. 내가 앉아 있는 방은 딱딱하고 차가운 재질로 되어 있고, 나는 녹이 슬어 있는 딱딱한 철창 안에 갇혀 있어요. 흙을 밟아본 적도 없고.

가끔 철창 위를 쳐다보면 하늘이 보이죠. 하늘이 우는지 물이 막 내려오거나 얼음이 내려오면 딱딱한 방에 들어가 하루 종일 보내게 되죠. 밖의 날씨가 더울 때는 물이 많이 내려요. 그럴 때면 더 우울해지고 슬퍼져요. 나중에 나도 엄마처럼 될까봐 겁이 나요.

내가 사는 방 옆으로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가 살고 있어요. 나는 왜 내가 이런 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몰라요. 우리 모두 그 이유를 모르죠. 옆방 언니 말로는 우리 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있대요. '그것'을 먹으려고 우릴 죽인대요. "그거 안 먹으면 사람들이 죽냐"고 물어봤더니, 그건 아니래요. 사람들은 참 욕심이 많은 거 같아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데, 왜 먹으려고 누군가를 죽이죠?

우리 누구도 이곳에 살겠다고 부탁한 적이 없어요

며칠 전에는 분위기가 좀 심각했어요. 옆 옆 방에 살던 언니 둘이 탈출을 했다나 뭐라나. 사람들이 많이 와서 좀 시끄러웠는데, 누군가 밥 주는 아저씨에게 화도 냈어요. 그 언니 몸에 이상한 거 꽂아서 즙을 뽑은 거 아니냐고. 아저씨는 아니라고 말했는데, 그렇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건 처음 봤어요.

몸에 호스를 꽂아서 즙을 뽑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우리나라에서 그건 불법인데. 때로 사람들은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 가서 그런 걸 먹고 온대요. 끔찍하죠. 그곳의 곰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얼마나 아플까요. 혹시 나도 조금 더 자라면 내 몸에 호스가 꽂힐까요?

▲ 자전거를 타고 있는 반달가슴곰 ⓒ 동물자유연대


우리 곰들은 귀도 밝고 냄새도 잘 맡아요. 어느 날 나는 그 언니의 피 냄새를 맡았어요. 그건 다른 곰들도 비슷할 거예요. 그리고 그날 밤. 그 언니의 엄마가 우는 소리가 밤새워 들렸죠. 언니들이 이곳을 탈출했다면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우리 누구도 이곳에 살겠다고 아저씨에게 부탁한 적이 없어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죠. 우리는 겁도 많고, 무엇보다 사람들을 무서워해요. 함부로 사람들을 공격하지도 않아요.

가끔 밤에 자려고 누우면 저 멀리 다른 방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기도 해요. 나도 다른 친구들도 사는 게 힘들어요. 불안하고. 눈을 감고 가끔 생각하죠.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살던 곳. 향긋한 풀냄새가 나고 부드러운 흙도 밟으면서 엄마가 따주는 나무 열매도 먹고. 그렇게 즐겁게 살고 싶어요. 

사람들은 우리가 가만히 방에만 앉아 있다고 미련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우리는 장난도 잘 치고 새로운 것을 매번 접하지 않으면 쉽게 우울해지고 절망감을 느끼죠.

누가 그러더라구요. 모든 곰이 우리 같지는 않데요. 남쪽에 있는 어떤 산에서는 곰이 없다고 비싼 돈을 주고 키워서 산에 풀어준다고 하더라구요. 우리를 멸종위기종이라고 한다던데. 무슨 소린지 도통 이해가 안 돼요. 이렇게 우리 안에 곰이 많은데요.

사람들이 산을 너무 많이 깎고 도로도 많이 만들어버리니까 우리 곰들이 살 공간이 없어졌겠죠. 곰을 많이 키워서 풀어주면 뭐하나요. 우리가 살아갈 곳이 없는데. 그 남쪽에 있는 산은 앞으로도 안전할까요?

열 살이 되면 우리는 죽어요... 우리 몸 속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밥을 주는 아저씨는 곰을 키운 지 20년이 넘었대요. 예전에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윗분들이 권유해서 이 나라에 곰을 들여왔는데, 우리 같은 멸종위기종을 보호하자고 나라마다 약속을 했다고 해요. 그래서 이제 곰을 팔 수 없게 된 거죠. 곰을 되팔아야 돈이 되는데, 돈이 안 되는 거죠. 우리는 그야말로 애물단지가 된 거예요.

▲ 일본 홋카이도 노보리베츠의 불곰 사육장. 홋카이도 시레토코 국립공원에는 불곰 50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 김당


우리는 하늘에서 얼음이 내리는 계절이 적어도 25번은 지날 때까지 살 수 있어요. 예전에는 그때가 되면 아저씨는 우리 몸에 있는 '그것'을 팔기 위해 죽였는데, 이제는 법으로 우리를 죽일 수 있는 기한을 단축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하늘에서 얼음이 내리는 계절을 10번만 지나면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거죠.

사람들은 우리를 참 좋아하는 거 같아요. 죽여서 몸에 있는 그것도 빼먹고, 살아 있을 때 호스를 꽂아 즙도 빼먹고,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공을 타는 훈련도 시킨대요. 우리 곰은 공을 타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훈련사 아저씨들이 무서워서, 밥 얻어 먹으려고 억지로 하는 거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무, 숲, 흙, 향기로운 풀냄새예요.

내 방 창살로 저 멀리 아저씨가 키우는 개가 보여요. 아저씨는 개에게 이름도 만들어줬는데, 그 개도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목줄은 짧고, 밥그릇에는 늘 파리가 꼬여 있죠. 언제 그 개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냐고.

그건 아니래요. 자기들은 야생에 사는 다리가 날렵하고 귀가 쫑긋 서 있는 늑대라는 동물의 후손인데, 그 늑대에서 개가 된 지는 아주 오래되었대요. 그래도 자기 피에 늑대의 성격이 남아 있대요. 오래전부터 사람들과 살아서 성격이 변했어도 야생의 피가 남아 있는데, 우린 어떻겠어요? 우리에게 이 차가운 바닥과 좁고 나무도 볼 수 없는 삭막한 곳을 견디라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단 하루라도 흙 냄새를 맡으며 살아보고 싶어요

▲ 약 1100마리의 사육곰이 있는 이 나라에서, 멸종위기종이라고 엄청난 돈을 들여 복원사업을 하다니, 이것은 모순이 아닌가요? ⓒ 전경옥


누군가 이 모든 혼란을 끝내고 모든 것을 되돌려주었으면 하고 늘 기도하죠. 언젠가 어떤 사람들이 몰래 우리 방 앞에 왔는데, 찰칵찰칵 소리가 나는 작은 물체를 손에 들고 한참을 있다가 울더라구요. 그때 느꼈죠.

'이 언니들이 우리를 구해줄 수도 있겠다.'

언니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어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무심한 것만은 아니다 생각했죠. 언니는 사람이고, 나는 곰이지만 우리는 서로 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슬픔도 기쁨도 고통도 우리 모두 느끼니까요. 우리는 모두 살아있으니까요.

우리 조상들은 꼭 필요한 도토리만 먹고, 나무 열매가 다 떨어져 흙 속의 영양분이 되고 다시 새로운 싹이 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았어요. 강에 내려가 물고기를 잡을 때도 고통 없이 한 번에 죽이고, 그리고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먹었어요. 먹지도 않을 물고기를 욕심내서 잡지 않았죠.

우리가 욕심을 내지 않아야 우리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숲이 오랫동안 남을 거고, 그래야 아름다운 광경을 죽을 때까지 계속 볼 수 있으니까요. 세상에 아름다운 나무가, 꽃이, 벌레가, 새가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흙 냄새를 맡으며 누워서 푸른 하늘에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나는 아직도 사람들을 믿어요. 누군가 반드시 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요. 용감하고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들. 하늘에서 얼음이 떨어지는 시기가 열 번이 오기 전에 이곳을 나가고 싶어요. 숲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숲에서 적응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단 하루라도 곰답게, 단 하루라도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어요.

▲ 반달가슴곰 ⓒ 국립공원지리산관리사무소


곰, 이땅에서 살기 참 어렵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1100마리의 곰이 사육되고 있다. 이 곰들은 1981년 정부가 농가소득증대를 위한 재수출용으로 권유함으로써 사육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1973년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종 보호를 위해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를 규제하기 위해 CITES를 체결하였고, 한국이 1993년 7월 9일, 협약에 가입함으로써 모든 곰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상업적인 국제거래 규제 대상이 되었다.

즉 CITES 해당 야생동식물을 허가받지 않고 수출, 반출, 수입 또는 반입하거나 매매, 판매의 알선, 소유 또는 진열하는 자 역시 처벌받게 되었다. 상업적 거래가 중지되자 곰사육을 하는 농가들은 매년 누적되는 적자에 대한 해결책을 계속 정부에 요구해왔다. 정부에서는 이에 따라 1999년 2월부터 일정 연령기준에 도달한 곰에 한해 전통약재 등 가공품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용도변경을 허용해 주었다. 당시 곰의 종류에 따라 24년에서 40년으로 연한을 정했는데. 이는 곰이 자연사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라는 주장에 따라 2005년 10년으로 연한을 다시 조정하였다. 2004년부터 사육곰의 실태를 조사해온 녹색연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육되고 있는 곰들은 이상행동을 보이는 등 복지적 측면에서 심각한 상황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1100마리의 사육곰이 있는 반면 현재 우리나라는 2004년부터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83년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지리산, 설악산 등지에 약 56개체가 살고 있었으나, 2001년도에 이르러 21개체로 줄어들었다. 야생동물은 일반적으로 100년간 생존율이 95%를 넘어야 자체적 생존능력을 가진 개체군으로 보는데,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생존율이 3%에 불과해 멸종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판단된 것이다. (<곰사육정책에 대한 정책토론회자료집, 2006년 녹색연합> 참조) 그러나 2004년 2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시작한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은 이런저런 논란에 휩싸이며 당초 계획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2010년 이찬열 의원이 18일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반달가슴곰 복원사업 현황'자료에 따르면,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당초 계획 66.6%보다 낮은 50%밖에 되지 않아 복원 목표가 2012년에서 2017년으로 5년 연장됐다고 한다. 현재 지리산에는 북한산 11마리, 러시아산 18마리, 자체증식 1마리 등 30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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