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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집까지 온 '그놈'... 널 만난 건 실수였다

지금까지도 나를 짓누르는 담배... 헤어지기 참 잘했다

등록|2012.07.22 21:23 수정|2012.07.23 18:23

▲ 이런 젠장! 어제 또 꿈을 꾸고 말았다. 헤어진 지 10년이 넘었는데... 또다시 꿈에 나타났다. 나를 짓눌렀다. 숨이 막혔다. ⓒ wikimedia commons


이런 젠장! 어제 또 꿈을 꾸고 말았다. 헤어진 지 10년이 넘었는데... 또다시 꿈에 나타났다. 나를 짓눌렀다. 숨이 막혔다. '그럴 리 없는데,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눈을 떴다.

꿈에서 깬 후 '어째서, 어째서 그놈을 만났을까'라고 또다시 후회했다. 그땐 너무 어렸다. 그놈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이게 내가 그놈을 거절하지 못한 '핑계'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그놈을 처음 만났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질기고 독한 인연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입학식 날 밤, '절친' 주영(가명)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따라가 보니 기숙사 뒤편 담장이었다.

"담배 피우지?"
"아니."
"그래? 난 피우는 줄 알았는데!"

주영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얀 담배 연기가 어둠을 뚫고 하늘로 올랐다. 꼬물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다가 흩어지는 담배 연기가 한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그 연기를 따라 하늘로 올라가면 숨이 탁 트일 것 같았다.

"한 대 피워볼래?"

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주영이가 좀 놀랍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한 개비 꺼내서 내게 건넸다. 입술에 닿는 필터의 부드러운 느낌이 좋았다. 내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가 꼬물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다가 흩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아주 잠시 내가 기숙사에 갇혀 있다는 숨 막히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다. 이것이 나와 그놈, '담배'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다.

나는 아버지 권유로, 아니 그보다는 강요로 사립학교 기숙사에서 꿈 많은 고등학교 시절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주영이를 만났다. 주영이와 난 단 하루 만에 '절친'이 됐다.

'그놈' 때문에 우정에 금이 갈 뻔도 했지

말이 기숙사지 그 곳은 군대와 다름없는 곳이었다. 첫날, 그러니까 입학식 전 날 밤, 선배들은 '전통'이라며 신입생들을 운동장에 집합시키고는 다짜고짜 '한 따까리'를 쳤다. 눈 쌓인 운동장을 구르며 난 벌써부터 바깥세상을 그리워했다. 주영이는 참 듬직했다. 덩치도 컸고 덩치만큼이나 마음도 담대했다.

주눅이 들어 축 처져 있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야, 괜찮아... 기선 제압하느라 그러는 거야"라고 위로했다. 신기하기도 하지!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몸 어디선가 힘이 솟구쳐 올랐고 덩달아 마음도 편안해졌다.

주영이와 난 그 후로 틈만 나면 기숙사 뒤 담장이나 학교 화장실에서 그놈을 만났다. 담배 연기를 허공에 뿜으며 두런두런 얘기하는 시간이 그렇게도 편하고 좋았다.

담배와 함께 만났지만 담배 때문에 우정에 금이 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학생과에서 '흡연자 색출령'을 내렸다. 담배 피우다 걸리면 학생과에 끌려가서 그동안 함께 담배 피운 친구 이름을 10명이나 적고 나와야 했다. 순순히 불면 10대 정도 맞지만 의리 있는 척하느라 불지 않고 버티면 일단 100대 정도 맞은 다음 불어야 했다.

주영이와 나, 우리는 학생과에 끌려가서 두들겨 맞고 나왔다. 다행히 우린 한꺼번에 불려 갔다. 누군가 우리 둘을 한꺼번에 불어 버린 것이다. 함께 불려 가지 않고 따로따로 불려 갔다면 서로 오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흡연자 색출작전'은 아이들이 담배를 못 피우게 하려고 벌인 일이지만, 효과는 거의 없고 반감만 커졌다. 아이들은 일본 순사도 아닌 선생님이 어떻게 친구를 팔아먹으라고 강요할 수 있느냐며 원망했다.

'흡연자 색출작전'에 투입된 선생님들 대부분이 흡연자라는 사실도 아이들의 반감을 샀다. 그중에는 아이들이 보건 말건 학교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다니는 선생님도 있었다. 골초가 하는 금연운동이 잘될 턱이 없었다. 잘 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선생님들이 벌인 무지막지한 금연운동은 이런저런 이유로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담배 피우는 아이들이 줄기는커녕 학년이 올라 갈수록 되려 늘었다는 사실이 '작전실패'를 증명해 줬다. 졸업할 때쯤에는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이 안 피우는 아이들보다 훨씬 많았다.

아내의 '국지성 집중 핀잔'... 난 그놈을 지켰다

▲ 판매대의 담배들.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가끔 있다. ⓒ 이민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0년 넘는 세월을 난 그놈과 함께했다. 아니 그보다는 함께 살았다고 해야 좀 더 정확한 표현이다.

한시도 떨어져 있지 못했다. 군대 훈련병 시절에 하나님, 부처님보다 더 높은 대대장님이 '금연 특별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몰래 담배 피우다 걸리면 치도곤을 당할 게 분명한 살벌한 시기였다. 그때도 난 그놈을 만나기 위해 깊은 밤 목숨 걸고 으슥한 곳을 찾았다.

난 그놈을 신혼집에도 끌어들였다. 담배에 불을 붙이자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얼마나 사납게 노려보는지 방 안 공기까지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주눅이 들어 잠시 움찔했지만 못 본 체하고 계속 담배 연기를 뿜어 댔다. 그 눈빛에 밀리면 평생 집 밖에서 덜덜 떨며 담배를 피워야 할 것 같았다.

잠시 후, 소나기 같은 핀잔이 쏟아졌다.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버텼다. 결국 손을 든 쪽은 아내다. 살벌한 아내 눈빛도 소나기 같은 핀잔도 그놈을 신혼 집 밖으로 몰아 내지 못했다.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 무엇인가 큰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며 금연을 결심했다. 이를테면 내 의지를 시험해 보기 위한,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치르는 전초전 같은 일이 바로 '금연'이었다.

IMF의 파도를 넘으면서 몸과 마음이 지치다 못해 피폐해져 있었고, 밑천이라고는 아직은 젊은 몸뚱이뿐인데 그나마도 극심한 스트레스 탓인지 시도 때도 없이 아팠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답답한 일투성이었다.

인생이 꼬였다는 비애감에 심성마저 배배 꼬여 사소한 일에 벌컥 벌컥 화를 내기 일쑤였고 그게 원인이 되어 주변 사람들과 다투는 일도 잦았다. 어느 날,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반성하면서 변화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놈과 헤어진 후 얻은 건... '자신감'

▲ 안양시 금연버스정류장 홍보 포스터 ⓒ 안양시


결심하고 2년여 만에 담배를 끊었다.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나와 한 약속을 깨고 싶지 않아 발버둥쳤을 뿐이다. 자신감이라는 게 참 신기한 힘을 발휘했다. 이겼다는 자신감, 담배와의 혈투에서 승리했다는 자신감이 많은 변화를 안겨줬다. 물론 기분 좋은 변화다.

금연 이후 변화가 있느냐고? 너그러워졌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누군가 건드리기만 하면 찌를 것처럼 날카로웠던 성격이 둥글둥글해졌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일로는 싸우지 않게 되고, 그런 세월이 쌓이다 보니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부드러워졌다.

금연에 성공한 이후, 삼십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직업도 바꿨다. '할 수밖에 없는 일'을 과감하게 접고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다. 이것 역시 금연에 성공했다는 자신감이 준 선물이었다.

간간이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을 만난다. 참 반갑다. 동질감이 느껴져서 금세 친해진다. 자연스럽게 화제도 '금연 무용담'으로 이어진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 가지 나와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 담배의 지독한 해악을 뼛속 깊이 느낀 후 금연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나는 좀 다르다. 사실, 난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는 담배가 얼마나 '나쁜 친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리 좋은 친구는 아니구나 하는 정도였다. 오히려 담배를 끊은 지 10년이 넘은 요즘 들어 담배가 정말 지독한 친구였구나 하며 소스라친다.

그 지독하다는 군대 생활 기억도, 열병처럼 몸 구석구석을 쑤시게 했던 첫사랑의 아픈 기억도 나를 10년 이상 괴롭히지 못했다. 기껏해야 3년이었다. 그런데, 담배란 놈은 정말 독하다. 절교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가끔씩 꿈에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정말 독한 놈이다.

삶은 만남으로 이뤄진 강이다.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만나느냐에 따라 숱한 것이 변한다. 강물이 폭포를 만나면 곤두박질치고, 저수지를 만나면 한 곳에 눌러 앉듯이.

그래서 '만남'이란 것이 인생에서 참 중요하다. 좋은 친구를 만나면 웃을 일만 생기고, 나쁜 친구를 만나면 찡그릴 일만 생긴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만난 담배라는 친구는 정말 '나쁜 친구'였다. 그놈을 좋은 친구라 믿고 산 것은 내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담배 피우는 꿈을 꾸다 소스라치게 놀란 날 아침에 담배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긴다. 그때 그 어린 시절 담배 연기와 함께 내가 하늘로 올려보낸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그땐 자유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다.

그때 담배 연기와 함께 하늘로 올라간 것은 비겁함이었다. 난 현실과 당당히 맞서지 못하고 비겁하게도 담배 연기 뒤로 숨으려 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25년여가 지난 지금에서야 깨닫다니...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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