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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설거지 내가 할게"

초복에 삼계탕을 먹은 후, 손자의 설거지

등록|2012.07.21 11:19 수정|2012.07.21 11:19

▲ 초복 날 먹은 삼계탕 ⓒ 정현순


"할머니, 내가 설거지 할게."
"괜찮아. 할머니가 할게. 그냥 놔둬."

손자와 나의 이야기를 들은 딸아이가 한마디 거든다.

"아니야, 엄마. 남자아이들도 어렸을 때부터 부엌 일을 해봐야 해. 우진아, 엄마 하고 하자."

그러더니 딸은 제 아들과 싱크대에 나란히 서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대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우리 우진이(초등학교 4학년)가 어느새 이렇게 많이 커서 할머니 힘들까 봐 설거지를 다 해주고..."

난 녀석의 엉덩이를 도닥거려주었다.

지난 18일 초복날이었다. 복날 외식을 하게 되면 유명한 음식점은 줄을 서서 적어도 30분이상은 기다려야 하니  집에서 먹자고 미리 약속을 했다. 지난해 복날에도 30분 이상 기다려서 나온 음식은 시장기가 지나서인가 그다지 맛있게 먹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또 가든에서 먹은 탓에 모기에 물린 일도 생각났다. 7명이 먹으면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여 이래저래  집에서 먹자고 제안하게 되었다. 딸아이는 "집에서 먹으면 엄마가 힘들잖아"했지만 그것이 다 사람 사는 재미이지 싶다.

마침 올 초복날은 태풍이 온 탓에 무덥고 비도 와서  집에서 먹기로 한 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날이 되면 닭값이 은근 슬쩍 올라 일 주일 전부터 미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평소 시장에서는 삼계탕으로 알맞은 닭 한 마리의 값이 2500원이었다. 하지만 일 주일 전에도 어느새 3000원으로 500원이 올라 있었다. 우선 5마리를 사가지고 냉동실에 보관 해두었다. 더 이상은 안오르겠지 하곤.

하지만 초복 하루 전날 두마리를 더 사려고 시장에 갔더니 3500원으로 500원이 더 올라있었다. 세상에나 닭 한 마리가 며칠 사이에 1000원이나 오르다니. 참 할말을 잊었다. 그래도 우리 식구 모두 모이면 일곱 명이니 사가지고 왔다. 전복도 미리 사두었다.

손질한 닭속에 찹쌀을 넣고 전복과 마늘도 뜸뿍 넣어 삼계탕을 끓였다. 약속한 시간에 식구들이 모이고 잘 익은 삼계탕과 전복은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무조건 한 마리씩 배당이 갔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한가로움이 좋았다.

어른들은 물론 어느새 훌쩍 커버린 두 손자들도 아주 맛나게 잘 먹는다. 작은 녀석은 한 마리가 너무 많았는지 제 아빠, 엄마에게 덜어 주기도 했다. 삼계탕 국물에 물에 불린 찹쌀을 넣고 닭죽을 끓여 조금씩 더 먹기도 했다. 그러니 설거지거리가 많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그것을 보더니 큰손자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손자가 설거지를 해주겠다고 나서게 된 것은 지난해 겨울방학 때 우리집에 와서 하던 말 때문은 아니었을까? 식탁에 앉아서 거실쪽을 한참이나 보더니 "할머니, 청소도 할머니 혼자 다해?" "그럼, 청소뿐이야, 빨래, 밥, 설거지 등 할머니가 다하지" "할아버지가 안 도와줘?" "아주 조금 도와줘" 했다.

그 말을 들은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 "할머니 힘들지?" "그럼 집안일 하는 것도 힘들지"그랬더니 "할머니 그렇게 힘든데 인생이 재미있어?"하며 묻는다. 난 기가 막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녀석이 과연 '인생'이란 말의 뜻을 알고나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손자는 제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설거지를 끝내고 뒷정리까지도 말끔하게 끝냈다.

녀석이 뒷정리까지 다 해놓은 것을 보고는 녀석도 제 나이만큼의 인생은 알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다음에 우리 우진이 색시는 누가 될지 정말 좋겠다"하니 녀석이 "할머니~~ "하며 얼굴이 밝그스레 해지며 수줍은 웃음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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