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하지 마세요, <파닥파닥> 해피엔딩이라니까"
[인터뷰] 애니메이션 <파닥파닥> 이대희 감독 "살기 위한 몸부림, 전하고픈 에너지"
▲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은 횟집 수족관 안에 갇힌 고등어, 넙치, 놀래미, 도미, 아나고 등 물고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이대희스튜디오
2009년, 이대희 감독이 물고기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픽사의 <니모를 찾아서>를 떠올렸다. 그런데 주인공이 고등어란다. 모름지기 애니메이션 캐릭터로서 지녀야할 귀여움보다는 오메가3만 풍부해 보이는 등 푸른 생선 말이다.
<파닥파닥>은 바닷가 횟집 수족관으로 잡혀 들어온 고등어가 바다로의 탈출을 시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요식업에 반감을 갖고 만들지는 않았다"는 감독의 우스갯소리 같은 변이 말해주듯, '먹히기 위해 살아 있는' 수족관 속 삶은 처참하다. 실제로는 군침을 흘리며 봤을 횟감을 손질하는 모습은 호러 영화의 살해 장면 못지않게 끔찍하게 그려졌다.
깜찍한 캐릭터는 없다. 권력자로 군림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기 두려워하는 넙치, 현실주의자 아나고, 기회주의자 줄돔, 호기심이 많지만 순응하는 놀래미 등의 인간군상이 있을 뿐이다.
하다못해 봉제인형을 팔기도 어렵고, 아이들을 위한 <니모를 찾아서>를 상상할 수도 없을 법한 <파닥파닥>을 이대희 감독은 무려 6년의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었다. 전국의 바닷가와 횟집, 수산시장을 수 차례 답사했고 배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죽을 뻔한 경험도 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무모함보다는 그만큼의 확신이 느껴진다. 시종일관 음울하고 처연한 시한부적 상황 가운데서도 끝까지 '삶'을 위해 헤엄쳐 나가려는 힘이 있다. 그것이 <파닥파닥>이 하고 많은 물고기 중에 성질이 급해 횟감으로 쓰기 어렵다는 고등어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이며, 관객들이 다소 의아해 할 결말에도 이대희 감독이 '해피엔딩'이라 자신할 수 있는 이유다.
7월 26일 <파닥파닥>의 개봉을 앞두고, 이대희 감독을 만났다. 이야기는 그가 회사와 집을 왔다 갔다 하다가, 횟집 수족관에서 코가 깨져 있는 고등어를 발견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왜 하필 생선입니까?
- 출퇴근을 하는 길목에 있었던 횟집 수족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들었다.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곳에서 생선들에게 감정이입 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
"사실 생선들이 더 처연해 보이는 느낌이 있다. 개를 고기로 먹는 건 불쌍하다고들 한다. 개나 닭처럼 인간에게 먹히는 건 비슷한데, 생선은 생물보다는 식량으로 여기지 않나. 만화 <기생수>에서 '인간은 절대 다른 종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다'는 대목을 가장 좋아한다. 나도 생선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는 없고, 그런 척하며 만든 거겠지. 생선을 소재로 가져왔지만, 사실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
▲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은 지난 4월 열린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최초 상영됐다. 연출을 맡은 이대희 감독이 당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성하훈
- 수족관이 배경, 물고기가 등장인물이기 때문에 유리했던 점이나 반대로 어려웠던 점이 있나?
"사실 더 유리했던 점이 있다. 워낙 저예산인데다가 신생 스튜디오로서 경력이 거의 없는 신입들과 일했다. 애니메이터로서 뎃생력이나 캐릭터 액팅을 수련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 캐릭터였으면 더 어설펐을 테지만, 물고기라서 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감정 전달을 위해 표정의 변화나 눈동자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췄다.
난점도 있었다. 수족관을 연극 무대처럼 설정했기 때문에 신경써야할 것들이 있었다. 조명은 일정해야 하고, 수족관 밖으로 비치는 환경은 시간에 따라 소품을 다르게 배치해야 했다. 저녁때는 뜰채 통이 밖으로 나와 있어야 하고, 가게 문을 열었을 때 손님의 신발들이 있어야 한다. 가게 문을 닫은 한밤중에는 수족관 뚜껑이 덮여 있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야 한다."
- 그 디테일을 모두 신경 쓴 건가? 영화를 보면서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모든 것을 창조해야 하는 애니메이션에서 갖출 것을 다 갖추면 티가 안 난다. 모르고 자연스럽게 넘어갔다면 잘 갖췄다고 보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애니메이션은 역시 어설프다'는 말을 듣게 된다."
- 결국 횟집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경험인 것 같다. 일을 하면서, <파닥파닥>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던 처음 생각과 달라진 부분이 있나?
"2007년 중후반부터 2008년도까지 횟집에서 일을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느 정도 이야기의 가닥을 잡았을 때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미운' 정보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그래서 회의감이 들었다. 물고기가 주인공인 <파닥파닥>에서 사람은 적대자로 등장한다. 그래서 회를 먹으러 온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이 밉게 혹은 무생물처럼 묘사가 됐다.
실제로 횟집에서 일할 때는 사람들하고 친해졌었다. 극중 횟집 직원으로 등장하는 석주의 실제 모델인 분은 저한테 칼을 배우라고 하더라. 나중에 '내 원래 직업이 만화 쪽'이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렇게 (나쁘게) 그려야 한다는 게 좀 미안하기도 했다."
▲ 이대희 감독은 "<파닥파닥>을 만들기 위해 횟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이대희스튜디오
- 여담이지만, 석주형은 '그분'을 많이 닮았더라.
"3D 모델링 총괄했던 감독님이 정치에 관심이 많으시긴 한데, 디자인 하고 보니 그런 얼굴이 되어 있더라. 의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 VIP 시사회할 때, 40대 관객들이 그 의미를 물어보더라. 심지어 죽은 물고기는 돌아가신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게 아니냐는 추론도 있는데, 정치적인 의도는 전혀 없었다.(웃음)"
- 횟감을 손질하는 장면은 애니메이션이어서 오히려 실제보다 더 끔찍하게 보였던 것 같다. 좀 더 처참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연출적 장치가 있었나?
"횟감을 손질하는 행동 자체는 섬세하고 리얼하게 묘사했다. 다만, 물고기들이 처한 상황을 더 끔찍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사운드를 넣었다. 이를테면, 창자가 뜯기고 뼈가 갈리는 소리다. 음악감독님과 협의를 했는데, 미키마우징(Mickey Mousing: 화면의 동작을 묘사하는 영화음악의 형태)은 영화의 톤과 맞지 않는 것 같아 거의 넣지 않았다. 잘 어울리는 톤을 찾다 보니 호러 영화 쪽으로 가긴 하더라."
"대사 한 마디에 힘을 냈다는 관객, 이 영화가 말하는 전부"
- 중간에 삽입된 뮤지컬은 아무래도 수족관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들이 답답해 보이기 때문에 차이를 주려고 한 건가? 아트워크에서도 차이가 분명하다.
"영화가 수족관 안에서만 진행되니까 지칠 것 같아서 공간을 자유롭게 풀어헤칠 수 있는 뮤지컬을 삽입했다. 현실은 CG로 처리하되, 판타지인 뮤지컬 부분은 2D 애니메이션으로 보다 컬러감 있게 표현해서 사실성보다는 서정성을 강조했다. 현실 세계와 대비를 줘야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 좁은 수족관 안에서 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다소 위험을 안고 가는 설정이 아니었나?
"<파닥파닥>을 완성하고 나서, '곱씹어서 기억해보기'라는 걸 쓰면서 제작자로서, 기획자로서, 연출자로서 작품을 돌아봤다. 기획자로서 체크했어야 했던 요소를 다 놓쳤더라. 반면, 연출자로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했던 것 같다.
중간에 유혹이 많았다. 작품이 너무 어두우니 밝게 톤을 바꿔서 가족용으로 방향을 틀어보라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니까. 작품 자체에 확신은 있었다. 큰 재미를 주려고 했다기보다, 작품이 갖고 있는 의미와 주제가 분명했다. 내 인생과의 접점에서도 이걸 밀어 붙여야 한다는 상황들이 있었다."
▲ <파닥파닥>의 한 장면, 고등어가 탈출을 시도해 바닷가로 향하고 있다. ⓒ 이대희스튜디오
- 연출자로서 <파닥파닥>을 해피엔딩이라고 표현했지만, 관객들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예상 밖의 결말 때문인 것 같다.
"완전한 해피엔딩은 아니겠지. 비극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의미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바다로 돌아가려는 고등어와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넙치를 같은 캐릭터로 놓고 봤다. 한 인물 속에 용기와 두려움이 함께 있는 것이다. 결국은 넙치가 고등어로 인해 용기를 얻게 되는데, 그 변화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소리가 '파닥파닥'이다.
고등어가 넙치에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방법을 알려준 것처럼,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내 인생도 의미를 시도로 만든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관객 분이 마지막에 넙치가 바다로 향할 때 '조금만 더'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포기를 잘 하는 자신에게 힘내라고 하는 말 같다고 하더라. 그게 이 영화가 전달할 수 있는 의미를 다 전달한 것 같다. 축약하자면, 단순히 '고등어를 먹지 맙시다'라는 영화가 아니라는 말이다.(웃음)"
- 다음에 만들 때는 딸과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딸이 네 살인데 12세 관람가인 <파닥파닥>은 아직 못 본다.(웃음) 지금 내 휴대폰에 <파닥파닥>에 삽입된 '악몽' 뮤직비디오 영상이 들어 있는데, 물고기를 죽이는 장면에서 딸이 '익!'하고 소리를 내더라. 만들 때 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어린이들이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못했다. <파닥파닥>은 그 나이 대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레이어(층)를 분리하지 못했다.
다만, 앞으로 내가 만들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들이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분명하다. 물론 <파닥파닥>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나쁜 놈은 굉장히 잔인하게 죽어도 되는 세계관이 있다. 나치즘 하고도 빗대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6년 만에 첫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
"애니메이션 작업은 벌이도 힘들어서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파닥파닥>을 하면서 확신을 갖게 됐다. 뒤돌아 봤을 때 작업하는 과정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과정인데도, 다시 그 길을 오르고 싶다. 작년 <마당을 나온 암탉>도 그렇고, 선배 감독들이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보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나 역시 최전선에서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데 일조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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