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좋은 곳 다 놔두고 왜 하필 화장실을 찍습니까"

[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경험담] 남한 사람들의 고달픈 평양 사진찍기

등록|2012.07.25 16:55 수정|2012.07.25 16:55
지난 10여 년간, 대북지원사업과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하면서 수없이 방문해서 만났던 북한과 북한 사람들.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고, 다르면서도 같은 것 같은 남과 북의 만남에서 발생했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해 볼 지점들을 하나씩 기사로 전합니다. - 기자말

▲ 북한의 연인들을 찍고 싶었던 남쪽 사진기자는 동원된 연출을 보고 화를 냈다. ⓒ 서영준 화백


지난 2007년 가을, 평양 거리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취재할 수 없어 불만이 많던 사진기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연인들이 자연스럽게 데이트하는 장면을 찍고 싶다'는 제안을 북이 받아줘 "이게 웬 떡이냐" 기뻐하며 을밀대 공원에 갔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의 '가공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찍겠다'는 꿈이 좌절됐다고 했다.

나무 의자에 다정히 앉아있는 노부부, 손을 꼭 잡고 걷는 청춘남녀 등 몇 쌍의 연인들이 있긴 했지만 동원된 티가 역력했단다. 좋은 옷을 차려입고 사진기자를 흘끔흘끔 바라보면서 데이트 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바람에 그 사진기자는 실망했고, '동원'과 '연출'을 각색한 북에 화가 나 있었다.

사실 나도 평양시민의 삶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고 싶을 때가 잦았다. 을밀대 공원에서 주패놀이에 푹 빠진 평양시민의 생생한 표정을 찍고 싶었던 적도 있었으나, 북 안내원들의 시선을 의식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북한 사람 개개인의 자연스럽고 행복한 모습을 찍어 가면 남쪽에서 북한이 강제적이고 획일화된 사회라는 이미지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북한 분들에게 남측의 그런 시각을 이야기하기도 민망했다. 또, 남한 언론에 북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사진이 공개될 것을 예민하게 경계하는 북의 고민이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니어서 그만두고는 했다.

북이 남쪽 사람들의 개인 카메라를 통제하는 이유

▲ 데이트족을 동원하고 연출한 사건은 일상적인 표정을 담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는 관계에서 생긴 웃지 못할 에피소드이다. ⓒ 서영준 화백


북이 남쪽 사람들의 개인 카메라를 통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작위로 찍은 사진들이 남쪽 언론에 보도돼 반(反)북한용 홍보자료로 활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로 현실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북은 남쪽 방문단에 대해 언론에 보도돼도 절대로 악용되지 않을 사진 촬영만을 허용한다.

그러면 북한이 획일화된 이미지 촬영만을 허용한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또 그 이유가 자연스러움을 외면하고 '북한 당국의 정책 홍보'만을 강요하는 분위기 탓일까.

사진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생생한 장면을 찾아내 표현해야 한다'고 보는 관점에서 남북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있다. 그것은 남과 북이 사진이나 문화예술 분야에서 추구하는 내용과 방식의 차이는 '자유스러운 개성과 순수함'이냐 '정책홍보성'이냐의 차이가 아니라, 무엇이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것인가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부터 발생한다고 봐야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어느 것이 우리 식의 잣대로만 북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북한 사람들의 감성과 진정성으로부터 사물을 보는 내재적 접근일까. 

북한은 사회 현실 속에서 부대끼고 살아가는 구체적인 표현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남쪽의 개인의 개별적 감수성의 영역, 개인과 개인의 갈등을 주로 다루는 영역, 사회현상과 무관한 개성적인 표현과 주장을 선호하지 않는다.

특히 북한을 고립 압살하려는 서방의 정치적 경제적 봉쇄를 뚫고 '나라의 안보'를 지키며 '강성대국·경제강국'을 건설해야 하는 기세와 맞물려 더욱 그런 분위기가 강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사진 한 장, 그림 한 점에도 사회를 개조·건설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삶과 열정을 표현하는 것에 주력하며, 풍경화에 조차 '우리 민족, 우리 강산 제일주의'의 기치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분위기인데 남쪽에서 분단을 넘어오신 분들이 기껏 데이트하는 장면 혹은 주패놀이 하는 장면이나 찍겠다니, 너무 철이 없지 않느냐고 보는 것이 아마 북의 시각일 것이다.

또 한 가지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게 있다. 북한은 남쪽 사람들이 다듬어지지 않은 평양의 모습을 무작위로 찍는 것에 늘 민감하다. 자칫 헝클어진 북녘 사진 한 장이 남쪽 언론에 공개돼 틈만 있으면 반북 기사를 써대는 보수언론에 자료사진으로 이용될까봐 민감하게 경계한다. 남쪽 사람들이 헝클어진 사진을 찍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신나게 주패놀이를 하는 시민의 표정조차, '대낮에 공원에서 도박'하는 사진으로 보수언론에 보도될 것을 경계하는 북을 안심시킬 방도는 사실 없다.

화장실 찍다 혼쭐난 학생... 당황한 북측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웃지 못할 한 사건이 떠오른다. '아리랑 공연 참가단'으로 연일 수천 명의 남쪽 관광객이 평양에 갔던 지난 2005년 9월, 대학생 참가단이 평양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학생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대뜸 순안공항 위생실(화장실)부터 찍다가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들켜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은 학생회 대표로서 북에 온 학생 사진기자였는지 몰라도 북에 와서 자기 딴에는 자연스러운 삶의 현장 여러 곳을 찍어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긴 화장실이야말로 아무도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가장 일상적인 생활의 소재니까! 그러나 북한의 관계기관에서는 무척 흥분하며 "학생회 간부라면서 왜 좋은 곳을 다 놔두고 하필 어둡고 후미진 위생실을 찍는 이유를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며 조사를 벌였다. 조사하는 몇십 분 동안 그 비행기로 함께 왔던 수백 명은 영문도 모른 채 공항에서 대기해야 했다.

그때, 하루 1000명도 넘는 남측 관광객을 북이 초청한 이유는 아리랑 공연을 비롯해 평양의  아름답고 자랑찬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던만큼 학생회 대표로 왔다고 하는 한 학생이 대뜸 위생실 촬영부터 하는 일이 어이없을 법했다.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학생도 이해가 됐고 새파랗게 질렸던 북쪽도 이해가 됐다. 이렇듯 남북의 인식 차이가 사진촬영을 둘러싸고 늘 아주 예민하게 엇갈린다. 

북을 드나드는 남측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카메라를 순안공항이나 개성, 금강산 CIQ에서 일일이 검사하는 것을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로 여기고 화를 낸다. 그럼에도 이런 북의 시각과 고충을 이해한다면 다소 마음이 좀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남북의 대치상황을 고려하면 자신이 당한 인권침해 의식으로부터 한발 물러설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북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수준의 동질성 찾기를 넘어서야

다시 위의 사진기자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인식에 대한 차이, 문화예술에 대한 관점의 차이, 또 남이 잘 모르는 북의 내부 정서 대한 차이를 간과하고 그저 자연스러운 데이트 장면을 찍겠다는 그 기자의 요구가 북으로서는 얼마나 난감했을까.

북 안내원은 기자의 바람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 경험으로 남쪽 사람들이 들이미는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할 수 있는 평양 시민은 장난기가 철철 넘치는 개구쟁이 남자 아이들뿐이었다. 본인의 얼굴이 찍힌 사진이 어떻게 사용될지 모르면서 그저 일상적인 표정을 지을 수 있는 평양시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북 안내원은 북녘 동포들의 생생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잡지에 내고 싶어 하는 그 기자의 마음을 애틋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데이트족을 '동원'하고 '연출'하는 눈물겨운 배려를 해준 게 아닐까.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날 동원된 데이트 족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왜 자신들이 남쪽의 기자를 위해서 그렇게 포즈를 취해야 하는지, 그게 어째 통일에 유리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항의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설득하느라 북측 안내원들은 애를 먹었을 지도...

기자의 행동은 어쩌면 남한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북'이 아닌 '남쪽이 보고 싶어하는 북한의 형상'만 보게 하는 것 아닐까. 그것이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최선의 방법일까? 남북이 더 화해하고 협력하기를 바란다면 지금의 남북의 차이를 좀 더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다양한 분석의 틀을 소개하되, 그에 대한 판단을 남쪽 사람들의 입장에 맞는 다양한 해석에 맡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북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작업을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이야기로 다루던 시기는 지났다. 그리고 그것이 글재주가 미천함에도 내가 이 좌충우돌 북한경험담을 쓰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블로그(http://blog.krhana.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이경 기자는 겨레하나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