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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먼저 잘게" 하는 남편, 화가 치민다

[엄마의 육아딜레마] 두 아이 키우며 24시간 근무 중

등록|2012.07.26 14:44 수정|2012.07.26 16:27
남편이 '아빠의 육아딜레마'를 주제로 기사를 쓴 후, 지난 월요일(16일) 내게도 '엄마의 딜레마' 기사를 써 달라는 전화가 왔다. 마무리 해야 하는 대본 수정원고 때문에 고민하다 일상에 치여 대화다운 대화를 못 나누고 사는 우리 부부에게 이런 기사가 소통의 한 통로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응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한 금요일(20일) 오후 지금 나는 대본수정도, 기사 한 줄도 못쓴 채 큰 아이가 입원한 소아병동 1인실에서 두 아이를 돌보며 앉아 있다. 14개월 작은 아이가 잠들고, 32개월 큰 애가 EBS에 넋을 팔고 있는 사이 잠시 짬을 내어 노트북을 펼쳤다(그러나 한 페이지 달랑 쓰고 노트북을 덮어야 했다. 아이가 퇴원 후 밀린 마감을 치른 후, 일주일이나 늦게 겨우 기사를 마저 쓸 수 있었다.) <기자말> 

남편이 쓴 기사 <퇴근이 두려운 남자들의 속사정>을 먼저 읽어봤다. 남편은 대한민국 남자들의 현주소가 눈물겹지 않냐 했지만, 미안하게도 짜증이 확 밀려왔다.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내 바가지에 응답하는 항변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물론 새벽같이 일어나 밥도 못 먹고 출근해 하루 종일 일하다 밤늦게 들어와도 편히 쉬지 못하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남편의 피로를 이해하지만, 그래도 늘 남편에게 하소연한다.

"그래도 당신은 출퇴근길에 혼자라도 있고, 밥이라도 편하게 먹잖아."

그러면 남편은 답한다.

"당신 힘든 거 이해하지만, 출퇴근이 더 힘들어. 나 먼저 잘게."


집에서 일하는 엄마

남편의 기사에 실린 사진하지만 내 눈엔 두 아이의 엄마가 먼저 보인다. ⓒ 정가람


시부모님께 아이들을 맡겨두고 학교에 나가셨던 친정엄마. 30여 년 전엔 출산휴가도 한 달이 끝이라 출산 후 회복이 덜 된 몸으로 출근해 학생들을 가르치시고, 퇴근해선 하루 종일 아이들을 보느라 피곤하신 시어머님 눈치를 보며 아이를 받아 업고 저녁을 짓고 집안일을 하셨던 엄마.

학생들에겐 미안하지만 졸면서 수업을 한 날도 참 많으셨단다. 친정엄마는 내가 아이를 출산 후 가끔 말씀하셨다. 학교일, 집안일, 육아 모두 짊어졌던 시절이지만, 시어머님 눈엔 편하게 애들 맡겨두고 학교에 놀러 나가는 며느리로만 비추어져 참 힘든 날들이었다고. 그러면서 덧붙이신다.

"그래도 넌 다행이다. 집에서 일하면서 네 손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있어서."

안다, 나도 안다. 출산 후 집에서 내 일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친구는 백일도 안 된 아이를 맡길 데를 찾지 못해 결국 차로 4시간 떨어진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마다 서울과 친정을 오가는 생활을 2년째 하고 있다. 그나마 이 친구는 친정에라도 아이를 맡겼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는 매일 미안함과 불안함 속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있다. 그 친구들 모두 나를 무척 부러워하지만, 그래도 차라리 출근이 낫다고 입을 모은다. 남편은 출근이 더 힘들다 하지만.

책상 앞에서 잠든 아이아이도 엄마도 고생 ⓒ 정가람

출산 후에도 계속 집에서 대본 쓰는 일을 하고 있지만, 출산 전에 비하면 일하는 양과 속도가 곱에 곱절로 느려졌다. 아이들이 깨어있는 낮엔 거의 일을 할 수 없다. 둘째까지 생긴 후론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아주 급할 때 몇 번 DVD를 틀어주고 간식을 쥐여주며 일을 해 봤지만, 5분이 멀다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이들이 자는 시간. 어쩌다 한 번씩 두 아이가 함께 잠드는 낮잠 시간도 있지만, 길지도 않을뿐더러 집안일을 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결국 아이들이 밤잠에 들고 대충 집을 치운 밤 11시에야 온전한 내 시간이 생긴다. 그러나 밤 11시, 난 이미 곤죽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밤 시간도 나만의 작업시간이 되지 않는다. 둘째는 무척이나 예민해 돌때까지 밤에 열 번 넘게 깨 엄마를 찾았다. 어린 둘째를 업고 새벽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작업을 했던 숱한 밤들, 아이 젖을 물린 채 키보드 자판을 두들겨야 했던 고된 날들…….

울기 직전의 얼굴로 아이를 업고 책상 앞에 앉아 졸고 있는데 남편이 "수고해. 나 먼저 잘게"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면 '집으로 출근, 회사로 퇴근'한다며 울상인 남편이 한없이 얄미워진다. 난 왜 출근도 퇴근도 없이 24시간 근무 중이란 말인가!

결국 수유복 입고 결혼식에 갔다

4년 동안 두 아이를 임신, 출산하다 보니 거의 천일째 수유 중이다(둘째 임신 중에도 큰애 수유를 계속 했다. 큰애는 지금도 아주 가끔 젖을 먹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늘 나는 편한 신발에 임부복, 아니면 수유복 신세다. 둘째 출산 후 두 달이 지난 즈음, 남편 친구 결혼식에 함께 갈 일이 있었는데 출산 후 살이 다 빠지지 않아 맞는 옷은 수유복 밖에 없었다.

결국 수유티에 바지를 입고 갔더니, 창피하다며 주차장에 있으라는 농담을 던졌던 남편. 둘째 백일 겸 옷을 사기 위해 오랜만에 백화점을 찾았지만, 늘씬하게 차려입은 여자들 속에 주눅 든 난, 남편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나도 저런 엄마가 되고 싶다하지만 내 남편은 장동건이 아니다. ⓒ SBS


4년을 하루 같이 질끈 묶은 머리에 머리띠, 수유티에 고무바지 신세. 이런 내가 처량해 큰맘 먹고 예쁜 옷을 장만해보지만, 두 녀석 옷 입혀 외출하는 데만도 한 시간이 걸리니 세수라도 하고 나가는 게 용한 바쁜 나날들이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아줌마 파마가 이해되는 지금, 난 여자에서 아줌마로 돼 가고 있다. 아직도 마음은 '아가씨', 염치 불고하고 더 나아가 '학생'인데 말이다.

온갖 앓는 소리를 해댔지만 가사, 육아 그리고 내 일까지 할 수 있는 데는 분명 남편의 도움이 크다. 출근 때문에 밤에 아이들이 우는 소리는 의식적으로 안 듣고, 못 듣는 남편이지만, 집에 있는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육아와 가사를 도와주려 애를 쓴다.

처음엔 기저귀 가는 것도 서툴더니 이젠 국도 변에 차를 세우고 똥기저귀를 갈고 생수 반병으로 엉덩이까지 깔끔하게 씻기는 경지에 올랐다. 본인도 하루 종일 밖에서 고단할 텐데 현관에서부터 달려드는 아이들과 온몸으로 신나게 놀아주는 자상한 아빠다. 하루 종일 잔소리만 퍼붓는 엄마보다 아이들과 온몸으로 놀아주는 아빠와 노는 게 더 즐거워보인다.

아빠와 노는 게 좋아요 하지만 아빠는 힘들어요! ⓒ 정가람


그러나 문제는 남편의 육아가 '도와준다'에 그친다는 것이다. 육아를 '함께'하는 것과 '도와준다'는 것은 차이가 크다. '도와주는 육아'는 딱 그만큼의 책임만 진다. 한밤중, 아이의 "물" 하는 모기만 한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건 아빠가 아닌 엄마다.

새벽까지 보채는 아이를 달래는 건 아빠가 아닌 엄마. 물론 이는 생계를 책임지는 아빠의 몫과 육아를 책임지는 엄마의 몫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또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하는 엄마가 육아에 더 능숙한 것도 한 이유가 되겠다. 그러나 맞벌이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육아의 전반적인 책임은 엄마에게 있다.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모성애는 본능이다'에 반기를 들어 '만들어진 모성애'라는 얘기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다. 나를 포함해 많은 엄마들이 경험했을 것이다. 산고 끝에 출산한 갓난쟁이가 처음부터마냥 사랑스럽기만 한 건 아니었던 경험들, 하루에도 몇 번씩 울어 재끼는 아이를 두고 도망가고 싶었던 날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아이를 키우며 그야말로 내 바닥을 몇 번이나 보면서 비로소 나도 엄마로 자라고 있는 참 긴긴 하루하루. 엄마가 되는 일이란 도를 닦는 일에 버금가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 남편이 아이 업고 술 마시는 동안 나는 술상을 차렸다. ⓒ 정가람


핵가족이 큰 원인이겠지만, 요즘 사회는 육아를 전적으로 엄마의 몫으로 단정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최소 세 돌까진 엄마가 전적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게 좋다는 주장 앞에 많은 직장여성들이 갈등하며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아이의 생애 첫 3년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바닥부터 시작하는 고된 '엄마 되기'에 자신의 일까지 3년씩이나 희생하라니. 과연 그 3년을 사회는 기다려줄 것인가. 남자의 자기발전은 중요하고, 여자의 자기발전은 육아에 바쳐야 한단 말인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며 아이에게만 매달리지 말고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말라 충고들을 하지만, 두 아이를 출산·양육하는 지난 3년 동안 난 겨우 세 번 영화관 나들이를 했다. 그도 한 번은 아이를 업고. 그러나 남편은 개봉영화를 거의 다 봤고, 꾸준히 영화평을 쓰며 생각을 키우고 있다.

둘째도 돌이 지났으니 주말엔 애들 맡기고 영화라도 보고 오라 큰소리치지만, 토요일 오전 겨우 40분 집 앞 치과에 다녀왔더니 아이들은 오렌지를 뒤집어쓴 채 놀고 있고, 남편은 TV를 보고 있었다. 꼭 가야 하는 회의가 있었던 몇 번은 시부모님과 남편 모두 총출동시켜 아이를 맡겨야 했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자의 반, 타의 반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육아 딜레마 속에 남편에게,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기지 못하고 사서 고생하는 나부터 딜레마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 사회가 다 그래'라는 방패보다 '도와주는 육아'에서 '함께하는 육아'의 창을 남편이 들어주면 좋겠다.

모성애를 강요하며 '아무리 그래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라는 말로 더 이상 엄마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또 여자들이 출산, 양육 휴가를 당당히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길, 꼭!


먼저 나부터 '함께하는 육아'를 받아들여 남편, 시부모님께 부담 없이 아이를 맡기고 영화도 보고 치장도 하고 카페에서 대본도 쓰고 그래봐야겠다. 육아와 가사, 내 일에 지친 나는 결코 행복한 엄마, 행복한 내가 될 수 없으니까. 아차차, 깜빡했다.

육아 딜레마에 빠져 사라져버린 행복한 아내의 자리 찾기. 남편도 사랑스런 아내가 있는 집이라면 아무리 육아가 고된 집이라도 출근하는 집은 되지 않겠지. 이런저런 작심 기념으로 옷 두어 벌 쇼핑했음을 남편에게 글로 알리며 하소연 같은 글을 맺는다.

올해로 수유복 졸업하나 했는데, 아직도 최소 2년은 더 입어야 하는 수유복과 임부복(현재 셋째를 임신 중이다). 아이가 늘수록 엄마는 도를 닦아 수도자의 얼굴이 된다 하던데, 세 아이의 엄마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라있는 엄마, 아내, 내가 되길 마음 깊이 나를 응원한다.

그래도 사랑스런 내 새끼들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나중에 맛있는 거 사주면 더 좋고.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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