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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길거리서 '성기 노출' 강제추행 처벌 못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 주지만 피해 여성에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없어"

등록|2012.07.26 17:39 수정|2012.07.26 17:39
공개된 장소에서 바지를 벗어 성기를 노출한 행위는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유발할 뿐, 피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려워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범죄사실에 따르면 A(48)씨는 2010년 10월11일 오후 7시50분께 부산 동래구 온천1동 식당 앞 길거리에서 평소 감정이 좋지 않던 B(여ㆍ48)씨에게 욕설을 하며 위협하면서 자신의 바지를 벗어 성기를 보여줘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됐다. 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인 부산지법 형사16단독 송오섭 판사는 2011년 2월 강제추행,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협박과 공무집행방해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400만 원을 선고했다.

강제추행과 관련, 송오섭 판사는 "피고인의 성기 노출 행위가 이뤄진 장소는 밀폐된 장소가 아니라 개방된 장소인 점, 피해자가 피고인의 실력적 지배하에 있었던 것은 아닌 점, 어떠한 신체 접촉도 없었던 점, 피해자의 나이(48)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부산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이정일 부장판사)는 2011년 6월 A씨가 바지를 벗어 성기를 노출한 혐의(강제추행)도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형량은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성기를 피해자에게 보여준 행위는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을 일으키는 한편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추행에 해당되므로, 결국, 피고인의 행위는 강제추행죄를 구성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26일 길거리에서 여성에게 성기를 노출한 혐의(강제추행ㆍ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기소된 A(48)씨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강제추행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사건을 부산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형법의 강제추행죄는 개인의 성적 자유라는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죄로서, '추행'이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행위의 상대방인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건전한 성풍속이라는 일반적인 사회적 법익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가진 형법 제245조의 공연음란죄에서 정하는 '음란한 행위'가 특정한 사람을 상대로 행해졌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에 대해 '추행'이 된다고 말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문제의 행위가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 피고인은 자신의 성기를 꺼내 일정한 거리를 두고 피해자에게 보였을 뿐 피해자에게 어떠한 신체적 접촉도 하지 않은 점, 행위장소가 사람 및 차량의 왕래가 빈번한 공개된 곳이었고, 피해자로서는 곧바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피고인의 행위를 쉽게 외면할 수 있었으며, 필요하다면 주위의 도움을 청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단순히 피고인이 바지를 벗어 자신의 성기를 피해자에게 보여준 것만으로는 그것이 비록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피고인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추행'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그럼에도 원심이 강제추행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강제추행죄의 추행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는 만큼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케 하기 위해 원심법원으로 환송한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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