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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700cc 마시고 기절... 그래도 전 '술꾼'입니다

한국에서 술 안 마시는 '술꾼'으로 산다는 것

등록|2012.08.03 17:14 수정|2012.08.03 17:14

▲ 술 ⓒ 이민선


"술잔이 역기야? 네가 장미란(역도선수)이냐고!"

술집에 가면 친구들한테 으레 듣는 핀잔이다. 그럴 만도 하다. 술잔을 비우지 않고 계속 잔만 들었다 놓았다 하기 때문이다. 술은 내 인생의 아킬레스건이다. 너무 잘 마셔서 그런 게 아니라 너무 못 마셔서 그렇다. 그렇다고 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난 술을 좋아하고 술에 관한 관심도 무척 많은 편이다. 여자 손목 한번 잡아보지 못한 숙맥 같은 남자가 걸핏하면 애인을 갈아치우는 바람둥이보다 연애에 관심이 더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난 삼겹살에 곁들여 마시는 소주를 좋아한다. 비 오는 날 파전과 함께 마시면 일품인 막걸리도 좋아하고. 그뿐인가 한 번에 쭉 들이켜야 제맛인 시원한 맥주도 좋아하고,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마셔야 제격인 칵테일도 좋아한다. 술 마시는 분위기도 좋아한다. 술을 한 잔씩 홀짝거리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소름 끼치도록 좋아한다.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상대라면 더 바랄 게 없다. 호프집에서 500cc 맥주잔을 부딪치며 "위하여, 위하여"하는 활기찬 분위기도 즐기는 편이다.

이런 내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억울한 일이다. 종교적인 신념이나 개인적인 각오가 있어 절제하는 것이었다면 난 일찌감치 '파계(破戒)'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아니다. 내가 술을 못 마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내 몸이 술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주 한 잔만 마시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얼굴뿐만 아니라 옷으로 가려져 있는 다른 신체 부위도 함께 달아오른다. 두 잔 정도 들어가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멈추지 않고 계속 마시면 숨이 차서 헉헉거리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회생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떤 모임을 가든 술을 잘 마셔야 분위기를 이끄는 중심인물이 되는데, 난 술을 못하다 보니 늘 주변 인물일 수밖에 없다. 아예 스스로 발길을 끊은 모임도 여러 곳이다.

못 마시는 술을 단련시키기 위해 토하면서 마셨다

술자리에 끼어 있는 자체가 고역인 경우가 많다. 어려운 자리면 특히 더 그렇고. 술잔이 다시 내게로 올까봐 남에게 권하지도 못한다. 맨정신이다 보니 스스럼없이 농담하며 친해지기도 어렵다.

한때, 술을 잘 마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적도 있다. 아킬레스건을 단련시켜 강건하게 만들려 한 것이다. 뭐 특별한 노력은 아니고, 술을 이기지 못해 토하면서도 자꾸 마셔대는 것이다. 토하면서도 자꾸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술이 세진다는 낭설을 철석같이 믿었던 탓이다.

그때는 술에 취해서 전철을 타고 집에 오다가 자주 곯아떨어졌다. 막차를 탔다가 잠이 든 후, 누군가 흔드는 기척을 느끼고 눈을 뜨면 종착역인 경우가 많았다. 그때의 황당함이란…. 언젠가는 전철 안에서 잠이 들었다가 손가방을 잃어버리는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이런 일을 숱하게 겪으면서도 난 악착같이 마셔댔다.

그때는 남한테, 특히 처음 만나는 상대한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술 좀 하시죠?"하면 "네, 좀 합니다"하고 호기 있게 대답했다. 다행히 외모가 받쳐주는 덕에 내 거짓말은 그럭저럭 잘 통했다. 난 피부가 검고 어깨가 넓으며 살집도 있어, 꽤 단단해 보이는 체격이다. 한 마디로 누가 봐도 술깨나 마실 것 같은 생김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 그 당시 내게 꼭 들어맞았다. 술꾼도 아닌 게 술꾼인 척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루저녁 호기 때문에 나흘씩 고생하기 일쑤였고, 때론 약의 힘을 빌려야 간신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개고생'을 하면서도 내 허풍은 계속됐다. 그 일을 겪기 전까지.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 구급차 불러 드릴까요?"

이 소리를 듣고 일어나보니 화장실 바닥이었다. 10여 년 전, 서른을 넘긴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중이었다. 볼썽사납게 소변을 보다가 그만 기절해 버린 것이다. 화장실에 가기 전에 마신 술은 고작 맥주 700cc 정도였다.

쓰러지기 전, 숨이 가쁘고 어지럽다가 사물이 점점 흐려졌다. 나를 깨워준 사람한테 물으니 소변을 보다 말고 갑자기 고꾸라졌다고 한다. 그는 "머리를 바닥에 세게 부딪쳤는데 아프지 않으냐"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맥주 700cc 마셨는데, 소변 보다가 그만 기절해 버려

▲ 술 ⓒ 이민선


이때부터 난 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곰곰이 되짚어 보니 술과는 처음 만날 때부터 그리 좋은 인연이 아니었다. 다섯 살 때 쯤 막걸리 한 대접을 마시고 경을 친 일이 있다. 그날은 '바심(타작의 사투리)' 하는 날이었다. 바심하는 날은 술과 음식이 잔칫날만큼이나 지천이다. 목이 말라서 물인 줄 알고 벌컥벌컥 마신 게 '막걸리'였다.

결과는 보나마나. 다섯 살짜리가 막걸리를 한 대접이나 마셨으니 걸음인들 제대로 걸었을까. 그만 집 앞 '도랑'에 굴러떨어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행히 가을 가뭄이 들었던 때라 '도랑'에 물이 없어 익사를 면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 친구들과 천렵을 가서 술을 마시고 초주검이 된 적이 있다. 얼마나 마신지도 모를 만큼 많이 마셨다. 취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 마셨는데, 쉽게 취하지 않아 나중에는 소주를 병째 들고 나발을 불었다.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온 다음부터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숨이 차서 헐떡거리다가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새벽에 메스꺼운 기분이 들어 깨어보니 천정이 빙빙 돌고 속이 뒤집혔다. 결국, 의사의 도움을 받고서야 뒤집힌 속을 간신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나마 술을 마신 장소에서 취해 쓰러지지 않고, 집에 와서 쓰러진 게 다행이었다.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면 친구들이 나를 업고 오느라 고생깨나 했을 게 분명하다. 미처 취할 새도 없이 굉장히 빨리 마신 덕(?)에 집까지 무사히 내 발로 걸어올 수 있었다.

술 때문에 벌어진 일은 이 밖에도 부지기수다. 대부분 죽지 않을 만큼 고생한 기억이다. 생각해보니 모두 객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술 못 마신다고 하면 될 것을 공연히 자존심 세우고 객기 부리다가 병원 문 앞까지 갔던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10여 년 전에 '허세 부리지 말고 솔직하게 살자'고 결론 내렸다. 그 후로 누가 나에게 "술 좋아하십니까?" 하고 물으면 "네 좋아하지만, 많이 마시지는 못합니다" 하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그 이후로 주변 사람들은 나를 술 못 마시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술자리 별명은 역도 선수 '장미란' 이 됐다.

술, 억지로 마시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으련다

이렇게 10년 넘게 술 못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억지로 술을 마시며 살 때보다 몸도 편하고 머리도 맑아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아쉽기도 하다. 이젠 누군가와 밤새 술 마시며 이야기하는 낭만을 누릴 수 없다. 이야기가 술술 통하는 사람과 취하도록 마시며 떠들어 대는 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소를 얻을 수 있는데, 그걸 못하니 가끔은 답답하다.

그래도 이젠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마시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으련다. 아킬레스건은 절대 단련시킬 수 없기 때문에 '아킬레스건'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노력해서 단련할 수 있으면 그건 이미 '아킬레스건'이 아니다. 아킬레스건은 그저 아킬레스건으로 인정하면 그뿐이다.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난 이미 술꾼이다. 비 오는 날 파전과 함께 마시면 일품인 막걸리를 좋아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마셔야 제격인 칵테일을 좋아하는 로맨틱한 '술꾼'이다. 난 이렇게 술 못 마시는 술꾼으로 '마흔 살(사십 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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