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찔 걱정 없는 이 고기, 하나도 버릴게 없다
[우리동네 보양식- 제주] 말육회, 말곰탕, 말불고기... 여름철 한그릇에 '기운 번쩍'
▲ 말육회말고기는 이걸 먹은 어린아이가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영양만점이다. ⓒ 양김진웅
전국적인 보양식이 된 삼계탕과 영양탕을 따돌릴 만한 여름철 제주 보양식은 어떤 게 있을까?
전복 사촌으로 불리는 '오분자기'를 넣은 오분자기 삼계탕과 오분자기 뚝배기, 자리물회, 한치물회, 몸국(해초 '모자반'에 돼지고기와 돼지뼈를 넣고 끊인 곰국) 등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다양한 식단이 있다. 그러나 말의 본고장 제주에서 '말고기' 요리는 빼놓을 수 없는 별미로 꼽힌다.
'고기맛을 아는' 제주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말요리지만 아직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탓에 말고기를 선뜻 찾는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다. 소보다 사육하는 곳이 상대적으로 적어 유통처가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소고기나 돼지고기보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몸(?)인 탓도 크다.
예전 조상들에게 말은 군사용 '보호품'이었다. 나라에서는 식용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규까지 만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말고기 전문식당이 하나 둘씩 들어서면서 이젠 서울 한복판에서 말고기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정도가 됐다. 구중궁궐에 사는 임금님의 수랏상에 올렸던 고급음식인 말고기가 요즘은 누구나 관심 있으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음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보통 말의 평균 수명은 25년 정도. 하지만 식용으로 식단에 오르는 말은 3~5수(년) 정도 된 어린 말이 주를 이룬다. 육질이 연하기 때문이다.
하나 버릴 것 없는 다양한 쓰임새
▲ 말곰탕육질이 부드럽고 쫄깃하며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 양김진웅
말요리로는 등심이나 안심을 살짝 익혀서 구이로 먹는 말불고기를 비롯 말사시미와 말육회, 말갈비찜, 말곱창볶음, 말뼈해장국, 육회비빔밥 등 다양하다. 염통과 간, 지라까지 말 부위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이른바 '없어서 못먹는' 보양 재료다. 워낙 뛰어다니는 체질이라 소고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블링은 보이지 않지만 기름기가 적어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이 일품이다.
말 전문식당을 찾는 이들은 음식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 대부분 코스요리를 즐긴다. 말뼈 진액 한 잔으로 시작해 말사시미(회)-말육회-말불고기-말갈비찜-소금구이-말곰탕으로 이어지는 풍성한 메뉴가 나온다. 코스요리를 즐길 경우 말고기로 할 수 있는 요리는 모두 맛보는 셈이다.
몇몇 식당에서는 말샤브샤브와 말육회비빔밥을 내놓기도 한다. 제주말로 '검은지름 볶음'이라고 불리는 말곱창볶음 또한 별미다. 코스 요리는 1인당 2만5000원~3만 원이면 즐길 수 있다. 그 중 가장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말곰탕(곰국)'. 가격도 저렴해 6000원이면 말고기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말곰탕은 일반적인 곰탕과 달리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 무를 넣고 끊인 덕에 약간의 단맛도 배어난다. 물론 곰탕 특유의 걸죽한 국물맛도 느낄 수 있다. 원래 곰탕은 '고기나 생선을 푹 삶은 국'(고깃국)을 뜻하는 말로 주로 소의 다리뼈나 도가니 등의 재료를 사용해 만드는데 '푹 고아서 만든 국'이란 뜻의 '곰국'으로도 불린다.
"고음(膏飮)은 소의 다리뼈· 사태· 도가니· 홀떼기· 꼬리· 양· 곤자소니와 전복· 해삼을 큰 솥에 물을 많이 붓고 약한 불로 푹 고아야 맛이 진하고 국물이 뽀얗다." <시의전서>(조선 말기에 편찬된 조리서) 중
'고음(膏飮)'이 지금의 '곰탕'인데 고기를 조금 맑은 물에 넣고 오래 끓이면 '곰국'이 되고, 고기 대신 쌀을 조금 넣고 푹 끓여서 체에 받히면 '쌀국'인 '미음(米飮)'이 된다고 한다.
12년째 말 전문식당을 해 온 제주몰촌 오연심씨는 "말은 사람 체온과 비슷하고 열이 많아 웬만해서 병이 생길 틈이 없다"며 "말고기는 먹자마자 금방 허기를 느낄 정도로 소화도 잘되고, 술을 함께 하면 숙취도 덜하다"고 말했다.
▲ 말내장탕말내장탕은 질기지 않고 의외로 쫄깃하고 잘씹히는 특성이 있다 ⓒ 양김진웅
▲ 말에서 나온 부산물바로 전날 잡아 식탁에 올라 온 싱싱한 간, 지라, 허파 등 말부산물. 말의 간은 "눈이 번쩍 뜨인다"고 할 정도로 '없어서 못먹는' 강장식품이다. ⓒ 양김진웅
말고기의 효능?
말고기의 색은 보통 암적색을 띠며 부드럽고 특유의 향이 입맛을 자극하는 게 특징이다.
포화지방이 많은 소고기와 달리 몸에 이로운 불포화 지방산이 많은데다 몸속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니놀렌산 성분이 있어 비만을 예방하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성장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해 키 성장에 좋으며, 허리를 강화시키는 것은 물론 뼈의 밀도를 높여줘 골다공증, 성인병, 당뇨, 고혈압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아울러 지방질이 적어 소화가 잘 되는 특징이 있으며 열량이 낮아 비만인 사람에게 더 없이 좋은 보양식이다.
특히 말뼈는 관절염 치료에 효과적이라 해서 약용으로도 인기가 많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말고기는 신경통, 관절염, 빈혈에 좋고 특히 귀울림(이명)에 효험이 있으며, 허리와 척추에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관광객들이 '효도용 선물'로 말뼈 가루로 만든 말뼈환이나 말뼈 진액 등 가공 제품을 종종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말육회제주도내 한 농업법인회사의 음식 설문조사 결과 '꼭 먹어보고 싶은 제주음식이 뭐냐'는 질문에 말고기 요리를 꼽은 응답자가 28.5%로 가장 많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 양김진웅
말고기는 경제적 가치도 높다. 소에 비해 살코기는 조금 적지만 뼈와 가죽, 기름 등 부산물을 팔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는 점 때문이다. 소고기 1㎏ 생산에 곡물 7~8㎏이 들어가지만 말은 그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키울 때 들어가는 곡물도 적다. 말 부산물을 활용한 화장품을 비롯해 다양한 향장품과 건강식품도 속속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말고기는 웰빙 시대에 걸맞는 3고(고단백, 고미네랄, 고비타민) 음식이자, 3저(저칼로리, 저지방, 저콜레스테롤) 식단으로서 다이어트에도 효과 만점이다. 또 말은 광우병이나 구제역에도 안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제주산 말고기는 청정 제주의 목장에서 직접 기른 '천연 웰빙식품'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가끔 말고기 식당을 찾는다는 이태운(52)씨는 "최근 카자흐스탄 올림픽 대표팀이 런던 올림픽에 말고기 소시지를 가져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며 "돼지 10마리를 고느니 소 한 마리가 낫고, 소 10마리를 고느니 말 한 마리가 낫다는 말이 있다"고 말고기의 효능을 강조했다.
전례 없는 폭염으로 무더위가 한창인 올 여름. 제주벌판을 뛰노는 힘찬 말의 기운도 받을 겸 '말곰탕' 한 그릇으로 하루를 거뜬하게 보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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