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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의원, 안철수 원장 훈계할 자격있나

[주장] 5년 전 대선후보 시절 내세운 친재벌 공약 반성부터 해야

등록|2012.08.03 10:27 수정|2012.08.03 10:27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재벌개혁 의지에 대한 검증이 주목받고 있다.  9년 전인 2003년, 안 원장이 당시 벤처기업가와 대기업 최고경영자로 구성된 브이소사이어티의 같은 멤버로서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되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 석방 탄원서에 서명한 것이 재벌 감싸기라고 지적된 것이다. 이어 11년 전인 2001년, 결국 좌절되고 말았던 인터넷은행 설립 시도 과정에 브이소사이어티 멤버로서 참여했던 것을 두고 금산분리를 훼손했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안철수 향한 박근혜의 훈계 

▲ 31일 오전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처리를 논의하는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하는 박근혜 의원(사진 왼쪽)이 '최태원 SK회장 구명운동'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사진 오른쪽)이 참여했던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 권우성/남소연


"한국 사회에 살면서 친구가 법정에 갔는데 탄원서 써달라고 하면 나도 안 써줄 수 있을까" 라는 정운찬 전 총리의 언급처럼 기업 경영자들이 일반적으로 겪을 수 있는 사건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안 원장이 기업가가 아니라 책임이 무거운 대선 후보로 거명되는 만큼 이 문제는 확인하고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유력한 대선 후보이자 안철수 원장과 지지율 경합을 벌이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거들고 나섰다. 안철수 원장이 재벌 총수의 범죄행위를 감싸는 탄원서에 서명한 사실을 비판하면서 "그런 것을 우리가 고치려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라고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박근혜 의원이 안철수 원장에 대해 경제 민주화의 원칙을 들이대며 직접 반격했다고 언론들도 일제히 보도했다. 벤처기업가 출신 교수 안철수 원장에게 박근혜 의원이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에 대해 훈계를 둔 셈이다.

이명박과 동일하게 재벌 우호적이었던 박근혜

"재벌개혁과 관련하여 참여정부에서 재벌개혁 정책이 대폭 후퇴한 것에 대한 평가도 없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전면적 폐지, 금산분리의 점진적 완화를 주장하고 있어 이명박 후보와 마찬가지로 재벌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음. 재벌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됨."  <경향신문> 2007년 7월 3일자 보도

위의 인용문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7년 여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당내 경선에 나와서 발표한 경제 공약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연합에서 총괄 평가한 내용이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한나라당 경선 후보들 가운데 경제 공약 면에서는 이명박 후보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의 친재벌 시장지상주의 경향을 보였다. 특히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해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유독 즉각 폐지를 주장, 금산분리에 대해서도 이명박·박근혜 후보만이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했으며 법인세에 대해서는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즉시 인하를 주장하여 두 후보의 경제 공약에 차이가 없었다고 당시 언론들이 공통적으로 보도했다.

"우리 경제, 어떻게 살릴 것인가?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살 수 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권부터 바꿔야 한다. 크기만 하고 무능한 정부, 불법파업과 집단이기주의, 기업은 규제로 묶이고 국민의 마음은 갈라져 있는 것이 우리 경제의 큰 병이다. 이 병을 고치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 ...  '줄.푸.세 정책'으로 우리 경제를 확실히 살려 놓겠다. 세금과 정부 규모는 줄이고 불합리한 규제는 과감히 풀고 법질서와 원칙은 바로 세우겠다."       <동아일보> 2007년 5월 30일자 보도

위 인용문은 한나라당이 2007년 5월 29일 광주에서 진행한 대선 후보 경제 정책 토론회 당시 그 자리에서 박근혜 후보가 한 발언의 일부이다. 이 발언은 '줄.푸.세 정책'을 정점으로 한 경제자유화와 친재벌정책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5년 전 박근혜 후보의 경제 공약 어디에도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들어갈 틈 자체가 없었다. 박근혜 후보에게 경제 민주화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재벌개혁 놓고 홍준표과 원희룡과도 대립도

"국민 여러분에게 서민경제론을 주창한다. 성장 동력 회복을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이다. 재벌 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될 때까지 '출자총액제한제'와 금산법은 유지되어야 하고, 재벌의 상속세 탈세를 막아 불법적인 부의 대물림을 없애겠다."

위 인용문은 당시 박근혜 후보와 함께 경선에 나선 홍준표 후보가 자신의 경제 공약을 설명한 내용이다. 한나라당에서 다소라도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 의지를 가진 후보가 있었다면 홍준표 후보정도였다. 그런데 이에 대해 박근혜 후보가 "홍준표 후보는 출자총액제한제를 유지한다고 했다. 경제가 살기 위해서는 투자가 살아나야 하는데, (재벌에 대한) 역차별 아닌가"라고 반박하면서 홍준표 후보의 재벌개혁을 비판하고 재벌 옹호를 했다.

오죽하면 또다른 대선후보였던 원희룡 의원이 "(박근혜의) 줄.푸.세가 혹시 복지는 줄이고 재벌규제와 난개발, 투기를 풀어서 생기는 시장의 실패, 약자의 저항을 공권력으로 군기 세우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을 할 정도였다. 원희룡 의원의 줄.푸.세 해석이 정확했음은 이 정책을 현실화시킨 이명박 정부 5년이 증명해주었다.

바로 5년 전에 자기 당 동료의 최저 수준의 재벌개혁 방안조차 비판했던 박근혜 후보가 이제 '경제 민주화의 전도사'로 나서서 누군가를 비판하는 엄청난 비약이 일어난 것이다. 이비약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말이다.

어쨌든 안철수 원장은 9년 전 기업가 커뮤니티 회원의 일원으로 최태원 SK 회장 구명 탄원서에 서명했던 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의원 역시 5년 전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수없이 반복한 친재벌 정책 공약에 대해 국민 앞에 무릎 꿇고 반성을 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를 말할 수 있다. 지금 다른 사람을 훈계할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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