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사실 말이야..." 아내의 한마디에 '멘붕'
[초보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19] 끝이 보이지 않는 육아일기, 셋째의 등장
▲ 폭탄맞은 날. 이놈 둘째야, 네 동생이 또 있단다. ⓒ 이희동
육아일기 전편에 썼듯이 상상하지도 못한 폭탄이 터진 건 둘째 돌잔치 날이었다. 돌잔치 도중에 졸려하는 둘째를 재운 아내가 내게로 다가오더니 갑작스레 스케일 큰 질문을 던져댔다. 올해 12월에 끝나는 전세 계약 연장 여부부터 시작해서 앞으로의 인생 계획 등등. 난 갑작스런 아내의 질문에 당황했고 꿀 먹은 벙어리마냥 그녀를 바라봤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뭔데? 갑자기 왜?"
"……"
순간, 난 뭔가에 머리를 세게 맞은 듯 멍해졌고,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에게 물었다.
"설마 그거 아니지? 아니잖아. 아니지? 아닐 거야."
"맞아 그거. 나도 모르겠어. 생리가 제 날짜에 안 나오길래 혹시 해서 테스트 해봤더니 두 줄이야. 나도 당황스러워. 날짜가 전혀 맞지 않은데."
맙소사. 임신이었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아니 상상도 하지 않았던 셋째의 임신. 역시 자연피임은 믿을 바가 못 되었다.
아찔했다. 첫째에 이어 둘째를 돌까지 키워오면서 겪었던 고생을 또 해야 한다는 사실에 막막했고, 아이 셋 키우는 스트레스를 남편에 대한 바가지로 풀어낼 아내를 생각하니 두려웠으며, 아이 셋을 키우는 데 필요한 돈을 생각하니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에 한없이 어깨가 무거워졌다.
"여보 나 할 말 있는데"... 맙소사, 설마 셋째?
▲ 우리 남매는 셋이래요. 왜 표정이 짠한 게지? ⓒ 정가람
물론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야 어찌 남편이 아내를 따라가겠냐마는, 어쨌든 아내는 그동안 내게 셋째를 낳자고 계속 이야기해 왔으니 충격은 나만큼 크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셋째를 포기하는 마음으로 신생아 용품을 사촌처제에게 물려 주었다고 하지만, 최소한 그녀는 셋째를 포함해 식구 다섯을 상상이라도 해보지 않았던가.
사실, 4월 즈음 해서 아내와 나의 부부싸움이 잦은 편이었다. 돌이 가까워지면서 부쩍 는 둘째의 투정에 아내가 힘들어한 탓도 있었지만, 셋째에 대한 계획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셋째까지 낳고 싶다는 아내와 둘이면 충분하다던 나. 아내는 까꿍이에게 커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여동생을 낳아주고 싶다고 했고, 난 그 역할을 남동생도 할 수 있다고 버텼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가끔 아내에게 정관수술을 언급했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선 인위적이어서 싫고, 수술 후 남편이 밖에서 딴 짓을 해도 모른다는 것이 아내의 의견이었다. 물론 후자는 농담이라고 덧붙였지만 그것은 분명 내게 언중유골이었다. 어찌 막연한 불안함이 없겠는가. 게다가 아내는 셋째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 여기에 하나 더? 눈앞이 깜깜해진다. ⓒ 정가람
▲ 뒹굴뒹굴 이불놀이. 셋이면 더 재미있을까? ⓒ 정가람
셋째를 낳고 싶다는 오래된 생각과, 점점 세어지는 사내아이의 투정을 바라보며 셋째가 아들이면 차라리 그만 낳는 게 낫다는 생각 가운데서 갈등하던 아내. 그리고 그와 상관없이 네 식구만을 기준으로 인생계획을 그리고 있던 나. 그런데 그런 와중에 아내가 덜컥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4월 총선 이후 간신히 수습해가던 '멘붕' 상태가 훨씬 더 깊어질 수밖에.
쉽지 않은 셋째 임신 소식 알리기
▲ 할아버지의 사랑. 복댕아, 할아버지가 네 존재를 가장 기뻐하셨단다. ⓒ 이희동
우선 아내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 후(아내는 꽃이라도 사들고 정식으로 말하지 않는 이상 축하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아직도 툴툴댄다), 양가 어른들에게 전화를 드려 셋째 임신 소식을 전했다. 첫째와 둘째 때와는 전혀 다른 어른들의 반응. 장모님은 깊은 한숨과 함께 헛웃음을 지으셨고, 장인어른은 산부인과에서 임신 사실을 확인해 줄 때까지 임신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시는 듯 했으며, 어머니는 뭐가 그리 급했느냐며 며느리와 아이의 건강을, 그리고 아들의 수고스러움을 걱정하셨다.
결국 셋째 임신 소식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하는 이는 아이의 할아버지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자식은 많을수록 좋다며, 은근히 셋째 손주를 기다리시던 아버지로서는 우리들의 임신이 꽤나 기특해 보인 듯했다.
▲ 차도 사야 한다. 지금 몰고 다니는 차는 아이 셋 태우기 힘들다. ⓒ 정가람
우리보다 훨씬 전에 결혼했는데도 아직 아이를 갖지 못해 마음 고생하는 친구들. 사실, 그들과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가장 힘든 점 중의 하나는 우리가 괜스레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는다는 사실이었다. 아이 때문에 뻔히 고생하는 줄 아는데, 그렇다고 아이들을 떼어놓고 갈 수도 없고.
더 곤란한 것은 부부모임에 있어서 아이가 있는 가족과 그렇지 못한 가족이 함께하는 경우였는데, 계획적으로 아이를 가지지 않는 부부야 상관없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좌불안석이었다. 아무리 이야기의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해도, 결국 아이들이 사고나 치지 않을까 주시를 하다 보면 이야기는 자연스레 아이들로 모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아이 없는 부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우리. 특별히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셋째 임신 소식을 이야기 한다고? 무려 셋째? 물론 나의 일상 중 가장 큰 사건이기에 밝힐 수밖에 없었지만, 아직 임신을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인 친구들에게 셋째 소식을 알리는 일은 실로 난감하고 미안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어서 녀석들도 임신하여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어야 할텐데.
▲ 생일케이크도 뽀로로. 친구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 이희동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시큰둥하시고, 엄마와 아빠는 그 친구들한테조차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셋째의 존재.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문뜩 셋째에게 미안해졌다. 첫째와 둘째와 달리 태명 짓는 것조차 미적거리고 있었는데 뜨끔해진 것이다.
그렇게 지어진 태명 복댕이. 녀석아, 그래도 너무 서운해하지 마라. 너는 우리 집의 가장 귀여운 막둥이가 될 것이니. (설마 막둥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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