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들의 욕망이 드러났다"
[소셜리뷰] '페친'들과 함께 읽은 <욕망해도 괜찮아>
▲ <욕망해도 괜찮아> 표지 ⓒ 창비
영화 <은교>를 보았다. 노시인의 사랑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 잘 나타나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욕망도 있었다. 돈 벌고 싶은 욕망,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 성공하고 싶은 욕망, 죽이고 싶은 욕망. 슬펐던 부분은 가장 강렬하고 순수한 욕망이 '하찮기만 한' 다른 사회적 욕망들에게 갇히는 모습이다. 우리 사회는 욕망을 함부로 드러낼 수 없다. 노시인 이적요가 여고생 은교에 대한 마음을 공표하지 못하는 것처럼.
건강한 몸의 욕망을 계속 억누르다보면 그 욕망이 뇌로 역류되어 '멘탈붕괴'를 불러온다
- <욕망해도 괜찮아>(창비), 146쪽
무감정과 무욕망의 사회에서 빛나는 증언자
작가 김두식의 서식지가 바로 무감정과 무욕망이다. 검사, 변호사, 기업인, 정치인, 교수, 언론인 등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 층의 표정은 매우 근엄하다. 젊었을 적 연애 한 번 안 해봤을 것 같은 표정들을 하고, 감정과 욕망을 철저히 배제한 말들을 사용한다. 그래서 무척 위선적으로 느껴지고 '우습다'.
김두식은 법조인과 교수로서 이들 그룹에 포함돼 있지만 오히려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고 친숙하며 솔직하다(고 인정받으려고 노력한다). <불멸의 신성가족>에서는 사법고시 합격자들과 마담뚜의 혼사 문제 등 '이너서클'의 이면을 다뤘고, <불편해도 괜찮아>는 인권의 문제 중에서 '불편한 부분'만 콕 집어서 일상적으로 풀어냈다.
<욕망해도 괜찮아>는 자신과 가족의 속사정까지 드러내면서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된 40대 남성, 일명 '꼰대'들의 욕망 구조를 온전히 드러냈다. 김두식 작가를 볼 때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가 한 말이 생각난다.
법정의 기록은 어느 누구의 소설보다도 스릴이 풍부하다. 왜냐하면 예술이 손을 대기 꺼려하거나, 또는 겉으로밖에 손을 대지 않는 인간 영혼의 암흑면에 빛을 던져 밝혀 주는 것이 바로 그러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 도스토옙스키
법정의 일은 한 개인에게는 인생 전체가 걸린 어마어마한 일이다. 좀처럼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사회에서 가장 강렬한 욕망이 숨어 있는 곳이 바로 법의 울타리 안이다. <욕망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스캔들과 학력위조 등은 법이 보여주지 않았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우리 욕망의 모습이다.
법률가 출신인 김두식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마디로 '노다지'가 따로 없다. 그만큼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음지에 자생하는 욕망을 양지로 끌어올린 저자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정녕 무감정과 무욕망의 사회에서 빛나는 증언자다.
'아저씨 심리학'으로 선을 넓혀보자
▲ 김두식 경북대 교수 ⓒ 권우성
책에는 대개 바르고 고운 말이 적혀 있다. 책에 욕을 쓰는 경우는 없잖아. 그래서 책을 오랫동안 읽었던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위선'이 자라나게 된다(요 귀여운 녀석).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욕망해도 괜찮아>를 함께 읽은 페이스북 친구들도 힘을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김세교씨는 "때론 공감하며 때론 뜨끔하며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을 "아저씨에 대한 심리학"이라고 이름지었다.
김성훈씨는 한마디로 "도대체 내게 왜 이러세요?"라는 농담으로 독서 후의 '대략 난감함'을 표현했다. 서정호씨는 <욕망해도 괜찮아>와 같은 책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우리 사회가 근엄함을 덜어낼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소녀와 같아야 한다는 '계'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자문에는 나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독자들을 매료시킨 한 구절은 "자신의 선을 넘는 것보다 넓히라"는 책의 메시지였다. 독자들로부터 '복음'처럼 다가왔다는 간증이 이어졌다. 이것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이 훨씬 자유로워졌다고 평이다. 이 책을 통해 뉴스에 나오는 일에 대해서 통찰을 갖게 되었다는 사샤 김(Sasha Kim)씨는 "인생 즐겁게 살아야 하는데, 내가 만든 규범(계)에 갇혀 산다면 얼마나 재미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은자씨는 "내면의 색과 외면의 계가 잘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라는 말로 색과 계의 조화를 이루지 않고 쏠려 있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을 짚었다. 내면의 색은 계속 억압당하고, 외면의 계는 거짓말을 강요당한 결과다. 직장인 이민규씨는 이 책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며 이렇게 느낌을 표현했다.
"내공이 부족해 넓게 생각은 못하지만 색이라는 민감한 부분을 아주 쉽고 솔직하게 표현해준 작가의 글에 후련함을 느꼈다. 나도 선 넘어볼까? 용기를 얻어봅니다."
김두식 지지자(?)들에게는 '실망해도 괜찮아?'
주변에 김두식 마니아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 <욕망해도 괜찮아>를 읽고 난 느낌을 물었을 때는 실망스러운 반응이었다. 대개 '<불편해도 괜찮아>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다음에는 좀 약하다'는 느낌이다. 장재호씨는 자못 냉정한 평을 내놓았다.
"읽자마자 느낀 소감은 김두식 교수님의 독특함이 많이 무뎌졌다는 느낌입니다. 책 한 권 전체에 흐르던 전작들(영화를 통한 인권해석, 법조계의 비판)에 비해 이번 책은 다 읽고 나서 마땅히 떠오르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난잡(?)하다고 해야 할까요."
작가 김두식이 저변을 넓히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성장통일 수도 있다. 이제는 대중의 김두식이 되었으니 지지자들도 슬슬 마음의 정리를 할 때가 되었을까. 이민규씨는 이 책을 중간까지 읽었을 때 "솔직히 뚜껑이 열릴 뻔했다"는 느낌을 전했다.
<욕망해도 괜찮아>는 욕망을 다룬 책이다 보니 저자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다. 김두식은 자신을 '중간쯤 가는 가정'이라고 표현했는데, 독자들이 볼 때 모두 '잘나가는 사람들'이라는 게 이민규씨의 생각이다. 그는 "돈이 없어 대학도 못 가고 사회에서도 별 볼일 없는 일반 사람으로서는 이 내용이 그냥 자랑으로만 들렸다"라고 말했다. 구유리씨는 저자가 다루는 주제에 비해서 저자의 태생적 한계가 보인다는 점을 지적했다.
"어쩔 수 없는 '계' 안의 사람의 눈높이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사례와 경험담(어찌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뭐 한 권의 책이 모든 이를 만족시켜줄 수는 없는 거니까. 이렇게 얘기해볼 수는 있겠다. 잘사는 집안이고, 제도권이라 말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도 분명히 있는데 김두식은 왜 썼을까? 이야기는 맨 앞으로 다시 돌아간다. 우리 사회가 위선과 거짓말이 너무 만연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의 제도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위선적인 모습은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나는 저자가 이 부분에서 위기의식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이 책은 '윗물'의 이야기이지, '아랫물'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윗물'을 각성시키고, '아랫물'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역할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을 몸소 표현하려고 저자는 '감행'을 하지 않았을까? 저자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오랫동안 저자를 읽어 온 '지지자'들을 잘 챙겨주기 바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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