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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 천원, '어쩌다 열리는 카페' 아세요?

[현장르포]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옆에 생긴 카페

등록|2012.08.08 18:21 수정|2012.08.09 10:44
[기사 수정 : 8일 오후 6시 40분]

▲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 옆에 '어쩌다 열리는 카페'가 열렸다. 지난 7일 카페를 연 동국대 학생들을 만났다. ⓒ 김혜란


"오늘 해도 내일 또 보고 싶고, 모레 또 보고 싶고… 계속 해줬으면 좋겠어요."
"복직하면 저 친구들 못 보잖아요?"
"왜요? 회사 앞에다 카페 차리면 되지. 참 고마워요."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 옆에 차려진 작은 카페 앞에서 김대용(42)씨가 활짝 웃었다. 14년 6개월간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도장(페인트칠)을 하다 정리해고된 김씨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돕기 위해 자선카페를 차린 동국대 학생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김씨는 지난 6월 말 처음 대한문 분향소에 나왔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의 심리치유를 돕는 '와락'에도 나가지 않고 2년 넘게 홀로 지냈다. 그는 '난 아무 문제없다'며 스스로 다독였다. 하지만 혼자서는 버티기가 힘들었다.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누군가 곁에 있어줬으면'하는 마음에 분향소에 나왔다. 힘과 위안이 되는 건 동료뿐만이 아니다.

"(자선카페를 차린) 대학생 친구들이 나와줘서 즐겁고, 고맙고, 많은 위안이 된다."

쌍용차 분향소 옆에 자선카페를 차린 사연

▲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돕기 위해 카페를 연 동국대 학생들이 지난 7일 음료를 만들고 있다. ⓒ 김혜란


지난 7월 1일부터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 옆에 작은 카페가 생겼다. 이름은 '어쩌다 열리는 카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동국대 학생들이 차린 자선카페다.

지난 7일 찾아간 카페는 1평 남짓으로 좁고 허름했다. 주방도 아주 작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인데도 선풍기 하나 없다. 그래도 남녀노소 취향에 맞게 다양한 메뉴를 갖췄다. 특히 가격이 저렴하다. 시원한 아메리카노는 1000원에, 카페라떼는 1500원에 판매한다.

이들이 이렇게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쌍용차 분향소 옆에다 카페를 차린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그 사연은 '와락'에서 시작한다.

동국대 학과구조조정을 반대하며 투쟁하던 학생들은 지난해 12월 총장실을 점거했고 이 과정에서 교직원들과 마찰을 빚었다. 교직원은 학생들을 총장실에서 끌어내면서 폭력을 행사했다. 학생들은 끌려나온 이후에도 본관 앞에 농성텐트를 설치하고 투쟁을 이어나갔다. 교직원들은 농성 텐트를 철거하면서 또다시 폭력을 휘둘렀다.

학생들은 교직원으로부터 폭력을 당한 후 "기댈 곳이 없어 외로웠고, 무력감에 시달렸다"고 호소했다. 학생들은 무작정 '와락' 설립을 이끈 정혜신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정 박사가 이들을 보듬었다. 5주 동안 주 1회씩 집단 상담을 받았다.

당시 정 박사에게 상담받던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이들의 사연을 듣고 찾아왔다. 학생들을 안아주고 저녁식사도 마련해주었다. 동국대에 재학 중인 문가람(23)씨는 "쌍용차문제도 폭력 사태였고, 학생인 저희도 교직원들한테 폭력을 당했기 때문에 많이 공감해 주시고 같이 아파해 주셨다"고 말했다.

문씨는 그때 함께 아파해준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트위터에서 '대한문 분향소 옆에서 카페를 운영할 사람이 있느냐?'고 문의하는 글을 보고, 이를 친구들에 알렸다. 이후 마음이 맞는 친구 5명과 함께 직접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찾아갔다. 문씨는 "저희가 카페를 열고 싶다고 말하자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저희를 알아보시고 놀라고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와락'에서 맺어진 인연이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학생들을 울린 말 "사람은 마음이 힘들어 죽는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인 고동민(37)씨는 '와락'에서 학생들을 처음 만났다. 고씨는 학생들이 집단상담을 받는 동안 뒤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학생들이 심리치료할 때 (자신들에게 폭행을 가한) 교직원들을 이해한다고 하더군요. 저희들도 경찰이나 (회사) 관리자들도 '먹고 살려고 한 일'이라고 이해하는데 저희와 비슷하더라구요."

이번에는 학생들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직접 찾아왔다. 카페운영을 통해 연대하고 싶다고 했다. 고씨는 "카페를 꾸준하게 하는 게 쉽지 않을텐데 꾸준하게 한다"며 "힘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보기엔 작아 보이지만 이러한 소중한 연대들이 계속 진행되고 있어요. 분향소에 시민들이 많이 찾아주시니까 유력한 정치인들도 이제 나서기 시작하잖아요. 시민들이 저희들 문제에 함께 나서주셔야 쌍용차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겁니다."

동국대 학과구조조정 반대투쟁을 해봤던 동국대 학생들은 안다. "투쟁할 때 가장 힘든 게 외로움"이라는 것을. '와락'에서 심리치유를 도와준 정혜신 박사가 해준 말을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사람은 몸이 힘들어서 죽는 게 아니라 마음이 힘들어서 죽는다."

문씨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22명의 죽음을 잊지 않았음을 표현하는 일만이 더 이상의 죽음을 막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는 해고노동자 곁에 있으면서 오히려 치유받는다고 했다. 인터뷰 동안 시종일관 밝게 얘기하던 그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사실 저희가 더 위안을 얻어요. 마음의 짐 덜려고 오는 게 크죠. 22명이 돌아가실 동안 저희가 아무 것도 못했다는 무력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려고요. 23번째까지 방관자로 있기에는 마음이 아주 무겁죠. 여기에서 저희와 한 번이라도 눈 마주치고 인사 나눈 분들은 23번째 죽음은 없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동국대 학생 이상미(23)씨는 "제가 큰 걸 해결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며 "관심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옆에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적자가 10만 원이지만 메울 생각은 없어요"

▲ '어쩌다 열리는 카페' 메뉴 ⓒ 김혜란


카페는 보통 주말에 열지만, 주말에 비가 와서 못 열면 그 다음주 평일 중에서 하루 날을 잡아 문을 연다. 하루 평균 60~70잔 정도가 팔린다. 많이 나갈 때는 100잔도 나간다. 그래도 남는 돈은 별로 없다. 워낙 싸게 팔다보니 수익이 많이 나지 않는다. 이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원치 않아서다.

"처음 시작할 때는 후원금을 많이 모아서 드리고 싶었는데 쌍용차 해고노동자분들이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많이 사드실 수 있게 최대한 싼 가격에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분향소 분위기가 침침했었는데 좀 밝은 분위기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카페 인테리어도 최대한 밝고 예쁘게 꾸미려고 노력했어요." (문가람씨)

시민들이 내는 기부금과 음료를 판매한 수익에서 재료비를 뺀 금액을 합하면 하루에 3만 원 정도가 남는다. 학생들은 한 주의 영업이 끝나는 매주 일요일에 돈을 전달한다. 초기비용 때문에 10만 원이 적자이지만 메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문씨는 오히려 "더 많이 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드릴 때마다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동국대 졸업생 허준기(25)씨도 이날 후배들을 도와주러 왔다. 그는 학부 때 장기투쟁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는 과제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장기투쟁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을 후배들에 얘기해줬다.

"정말 포기하고 싶을 때 사람들이 말 걸어 주고 음료수라도 주고 가면 힘이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적자나도 상관없으니까 와서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빠지거나 외로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고 후배들한테 얘기해줬어요."

시민들의 따뜻한 손길도 이어졌고, 단골 손님도 생겼다. 재료를 기부하거나, 후원금만 내고 가는 손님도 꽤 많다.

"언젠가 유치원 아이들이 소풍 가는 길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주려고 레몬에이드랑 아이스 초코 열 댓 잔을 한꺼번에 주문하신 적도 있어요. 어느 날은 외국인 손님이 오셨는데 후원함에 5000원만 넣어주시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뭐하는지 아시고 주신 거냐?'고 물었더니 아신대요. 음료수라도 드시고 가라고 하니 '괜찮다, 그냥 도와주고 싶다'고 하고 가시더라고요." (문가람씨)

오후 5시께 카페를 찾은 정경이(32)씨는 미숫가루를 주문했다. 정씨는 "이곳에서 자선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트위터에서 봤다"며 "광화문 교보문고 가는 길에 작은 보탬이 돼야 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버스에서 내렸다"고 말했다.

의상디자이너인 엄태기(35)씨는 레몬에이드 한 잔을 주문했다. 그는 분향소에 자주 온다고 했다. 엄씨는 "(카페가 생겨서) 아주 좋다"며 "쌍용차 해고노동자분들한테 시원한 거 드시게 하고 싶을 때 마트까지 가서 사들고 오려면 무겁고 힘들었는데 바로 옆에 카페가 생겨서 좋다"고 말했다.

'언제나 열리는 카페'가 되기 위하여

가끔 몇몇 시민들은 호기심에 "노조와 연관된 것도 아닌데 이 더운 날 왜 이렇게 고생하느냐?"고 물어온다. 학생들은 그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애초 목표는 '어쩌다 열리는 카페'가 '언제나 열리는 카페'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페를 운영할 사람이 부족하다. 문씨는 "한두 시간만이라도 노동기부를 해서 카페를 함께 운영해주실 수 있는 분들이 늘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쩌다 열리는 카페'는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시민들과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잇는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이들은 인터뷰를 마치며 한 가지 바람을 전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분들은 시민들이 분향소에 눈길 한 번 주시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시는 분들이거든요.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면 카페를 계속 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쌍용차 해고노동자 분들이 제자리로 돌아가실 때까지 최대한 함께 하고 싶어요."

▲ '어쩌다 열리는 카페'는 서울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 바로 옆에 있다. ⓒ 김혜란


덧붙이는 글 김혜란 기자는 <오마이뉴스> 1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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