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서슴없이 내뱉은 말 "1년 밖에 못삽니다"
'위암 4기' 암투병 시작한 오빠... 대학병원 환자중심 시스템 아니야
지난 7월, 오빠가 위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무더위에 얼음 따위나 깨물던 평범한 날이었다. 늦은 저녁, 집 앞이라며 연락을 해 온 오빠는 엄마에게는 알리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불길했다. 길에서 만난 오빠의 곁에는 낯익은 오빠의 친구들이 있었다. 더 많이 불안했고 아주 안 좋은 일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오빠, 나쁜 일이지?"
"내가 위암 4기래."
짧고 간단한 말이었지만 오래도록 눈물이 흘렀다. 오빠는 43살의 총각이다. 위암 환자의 보호자가 되는 것은 그렇게 시작됐다. 힘든 일은 준비할 틈 없이 쉽게도 들이닥쳤다. 언니에게 전화를 했고 당분간 엄마에게 알리지 말자는 말에 동의했다. 다음 날 아침 최종진단을 받은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담당 의사를 만나야 했고 얘기를 들어야 했다.
"소견서 써줄테니 다른 병원으로 가셔도 됩니다"
접수담당자는 예약없이 교수를 만나기는 힘들다고 했지만 기다렸다. 종일이 걸려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오빠는 임상실험 대상자가 되는 조건으로 일찍 입원할 수 있다고 했지만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는 실험 대상자가 된다는 사실에 불안했다.
6시간을 기다린 끝에 교수를 만났다. 의사는 어제 환자에게 설명했는데 왜 또 왔느냐고 했고 다른 얘기는 할 것이 없다고 했다. '이런 경우 1년을 본다'는 말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사무적이고 감정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이다.
소견서를 써줄테니 다른 병원에 가도 상관없다고도 했다. 오늘 하루 '100명 넘는 환자를 봤으며 제정신이 아니다'는 말을 덧붙였다. 종일을 기다려 사실을 확인했지만 마음만 더 무거웠다. '의사는 신'이 아닌 것을. 어이가 없었고 기분이 나빴다. 희망 따위는 애초에 버리라는 것이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일까.
수술받지 못한 채 임상 실험 기다리는 환자들
사흘 뒤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임상 실험 대상자가 된다는 동의안에 사인을 하지 않았다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입원할 수 있는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오빠는 조급했고 불안했을 것이다.
환자도 보호자도 병원 생활은 낯설었다. 똑같은 옷을 입은 암환자들이 링거를 꽂은 채 느리게 걷는 병원 복도의 무거운 공기는 내가 모르는 낯선 세계였다. 입원 후 삼일. 수술날짜가 잡혔다.
오빠는 개복을 했지만 수술을 받지 못했다. 임상 대상자 중 수술 후 화학요법과 그냥 화학요법, 두 그룹 중 그냥 화학요법 대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상태가 나쁘지 않으면 일주일이면 퇴원할 수 있지만 오빠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검은 변을 보고 검은 구토를 했고 헤모글로빈 수치는 13에서 8까지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통을 느끼는 오빠를 보며 몇 번이고 간호사에게 말을 하고 의사를 찾았지만 조치는 없었다. 결국 밤이 돼서야 콧줄을 위로 삽입하고 산소 수치를 확인하는 기계를 달고 고통을 없애는 링거를 투입했다. 검은 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주치의는 개복 수술 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으로 보고 방치했던 것이다.
종일을 아프고 밤이 돼서야 소동을 벌이는 주치의나 의사들이 원망스러웠다. 주치의는 사과를 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오빠는 사흘이 넘도록 금식을 한 채 4시간마다 피를 뽑아 수치를 확인했다. 최악의 상황엔 수혈받을 준비를 하고선 말이다.
대학병원은 환자중심의 시스템이 아니었다
병원의 안일한 대처는 이어졌다. CT를 찍기 위해 들어선 촬영실. 의사가 보호자를 찾았다. 병동에 가서 서류에 빠뜨린 서명을 받아오라는 것이다. 난 5층 병동으로 올라가 보호자 동의 사인을 했는데 뭐가 빠진 거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의사의 서명이 빠졌다고 대답했다.
환자가 CT촬영을 하기 위해 내려가는데 실수로 빠뜨린 의사의 서명보다 대처 방법에 화가 났다. 어째서 의사 실수를 보호자에게 떠넘기는지 따져 물었다. 죄송하단다. 하지만 늘 그렇게 해왔기에 아무렇지 않게 보호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그래야 하는 것인줄 알고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왔던 것이다. 병원은 환자를 중심에 둬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았다. 환자들에게 흰 쌀밥을 주는 것도, 입원일과 퇴원일 몇 시간만이 무료 주차인 것도 그렇다. 대학병원은 영리목적이 우선이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의 고통으로 몇 번이나 주치의를 찾아도 보기 힘든 의사나 늘 바쁜 간호사에게도 적응할 수 없었다.
의사나 간호사가 절대 부족인 열악한 상황에서 어쩌면 환자나 의료진 모두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자에겐 생명이 달린 문제다. 그들에겐 힘든 직업이겠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갑인 의료진에게 환자의 처지를 이해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환자나 보호자가 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건조하고 사무적인 의료진들의 말투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라마 <골든타임>의 최인혁 교수와 같은 사람을 기대해서는 안 됐던 것이다.
오빠는 12일 만에 퇴원했고 춘천의 요양 병원에 있다. 우리 가족에겐 더 힘겨운 많은 일이 남았다. 13일 1차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 모든 사실을 감당하기에 엄마는 너무 연로하시지만 이젠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뿐. 오빠는 43살이다. 젊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을 거다. 믿는다.
"오빠, 나쁜 일이지?"
"내가 위암 4기래."
짧고 간단한 말이었지만 오래도록 눈물이 흘렀다. 오빠는 43살의 총각이다. 위암 환자의 보호자가 되는 것은 그렇게 시작됐다. 힘든 일은 준비할 틈 없이 쉽게도 들이닥쳤다. 언니에게 전화를 했고 당분간 엄마에게 알리지 말자는 말에 동의했다. 다음 날 아침 최종진단을 받은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담당 의사를 만나야 했고 얘기를 들어야 했다.
"소견서 써줄테니 다른 병원으로 가셔도 됩니다"
▲ MBC드라마 <골든타임> 한 장면 . ⓒ MBC
접수담당자는 예약없이 교수를 만나기는 힘들다고 했지만 기다렸다. 종일이 걸려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오빠는 임상실험 대상자가 되는 조건으로 일찍 입원할 수 있다고 했지만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는 실험 대상자가 된다는 사실에 불안했다.
6시간을 기다린 끝에 교수를 만났다. 의사는 어제 환자에게 설명했는데 왜 또 왔느냐고 했고 다른 얘기는 할 것이 없다고 했다. '이런 경우 1년을 본다'는 말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사무적이고 감정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이다.
소견서를 써줄테니 다른 병원에 가도 상관없다고도 했다. 오늘 하루 '100명 넘는 환자를 봤으며 제정신이 아니다'는 말을 덧붙였다. 종일을 기다려 사실을 확인했지만 마음만 더 무거웠다. '의사는 신'이 아닌 것을. 어이가 없었고 기분이 나빴다. 희망 따위는 애초에 버리라는 것이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일까.
수술받지 못한 채 임상 실험 기다리는 환자들
사흘 뒤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임상 실험 대상자가 된다는 동의안에 사인을 하지 않았다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입원할 수 있는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오빠는 조급했고 불안했을 것이다.
환자도 보호자도 병원 생활은 낯설었다. 똑같은 옷을 입은 암환자들이 링거를 꽂은 채 느리게 걷는 병원 복도의 무거운 공기는 내가 모르는 낯선 세계였다. 입원 후 삼일. 수술날짜가 잡혔다.
오빠는 개복을 했지만 수술을 받지 못했다. 임상 대상자 중 수술 후 화학요법과 그냥 화학요법, 두 그룹 중 그냥 화학요법 대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상태가 나쁘지 않으면 일주일이면 퇴원할 수 있지만 오빠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검은 변을 보고 검은 구토를 했고 헤모글로빈 수치는 13에서 8까지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통을 느끼는 오빠를 보며 몇 번이고 간호사에게 말을 하고 의사를 찾았지만 조치는 없었다. 결국 밤이 돼서야 콧줄을 위로 삽입하고 산소 수치를 확인하는 기계를 달고 고통을 없애는 링거를 투입했다. 검은 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주치의는 개복 수술 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으로 보고 방치했던 것이다.
종일을 아프고 밤이 돼서야 소동을 벌이는 주치의나 의사들이 원망스러웠다. 주치의는 사과를 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오빠는 사흘이 넘도록 금식을 한 채 4시간마다 피를 뽑아 수치를 확인했다. 최악의 상황엔 수혈받을 준비를 하고선 말이다.
대학병원은 환자중심의 시스템이 아니었다
▲ MBC드라마 <골든타임>의 수술 장면 ⓒ MBC
병원의 안일한 대처는 이어졌다. CT를 찍기 위해 들어선 촬영실. 의사가 보호자를 찾았다. 병동에 가서 서류에 빠뜨린 서명을 받아오라는 것이다. 난 5층 병동으로 올라가 보호자 동의 사인을 했는데 뭐가 빠진 거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의사의 서명이 빠졌다고 대답했다.
환자가 CT촬영을 하기 위해 내려가는데 실수로 빠뜨린 의사의 서명보다 대처 방법에 화가 났다. 어째서 의사 실수를 보호자에게 떠넘기는지 따져 물었다. 죄송하단다. 하지만 늘 그렇게 해왔기에 아무렇지 않게 보호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그래야 하는 것인줄 알고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왔던 것이다. 병원은 환자를 중심에 둬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았다. 환자들에게 흰 쌀밥을 주는 것도, 입원일과 퇴원일 몇 시간만이 무료 주차인 것도 그렇다. 대학병원은 영리목적이 우선이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의 고통으로 몇 번이나 주치의를 찾아도 보기 힘든 의사나 늘 바쁜 간호사에게도 적응할 수 없었다.
의사나 간호사가 절대 부족인 열악한 상황에서 어쩌면 환자나 의료진 모두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자에겐 생명이 달린 문제다. 그들에겐 힘든 직업이겠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갑인 의료진에게 환자의 처지를 이해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환자나 보호자가 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건조하고 사무적인 의료진들의 말투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라마 <골든타임>의 최인혁 교수와 같은 사람을 기대해서는 안 됐던 것이다.
오빠는 12일 만에 퇴원했고 춘천의 요양 병원에 있다. 우리 가족에겐 더 힘겨운 많은 일이 남았다. 13일 1차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 모든 사실을 감당하기에 엄마는 너무 연로하시지만 이젠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뿐. 오빠는 43살이다. 젊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을 거다.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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