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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째 '신혼', 우리 집 밥상을 소개합니다

새벽에 들어와 밥하는 남편... 집안일 못하는 아내

등록|2012.08.13 16:40 수정|2012.09.04 18:52

2010년 10월 내 생일일 년에 두 번, 내 생일과 큰아이 생일 때만 찍을 수 있던 남편의 밥상 ⓒ 배지영


2012년 5월 꽃차남 생일큰 아이의 코뼈 수술과 겹쳐서 그랬는지 조금은 단순한 남편의 밥상 ⓒ 배지영


밥상 사진은 일 년에 두 번, 내 생일과 큰아이 생일 때만 찍을 수 있었다. 예쁜 그릇도, 특별한 음식도 없다고 사진을 못 찍게 하는 남편 마음을 돌리는 것은 어려웠다. 밥이 달린 문제라 나 혼자 섣부르게 저항하며 카메라를 들이댈 수도 없었다. 큰애와 열 살 차이로 꽃차남이 태어났지만, 요지부동. 남편이 정한 밥상 사진 촬영 금지는 풀리지 않았다.

사실, 나는 살림을 못하는 '멍청이'다. 웃자고 하는 소리면 좋겠지만, 진짜다. 결혼하고, 밥은 줄곧 조신한 솜씨를 가진 남편이 했다. 친구들 중에 우리 부부 결혼이 가장 빨랐다. 우리 집은 주말에 밤새 놀고먹기 좋은 곳이었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밥하는 남편은 그네들 싸움을 부채질하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그 무렵 남편의 번뇌는 밥상을 도맡은 주부 역할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미술학과를 나왔지만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해서도 아니었다. 남편의 화실 친구 중에 H대 미대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사람이 있다. 남편은 그 예술가 친구를 몹시 부러워했다. 그 친구의 오른쪽 손바닥은 굳은살이 있더란다. 이유는 '스타크래프트'를 하도 많이 해서...

'팬티'와 '런닝', 그의 정장차림입니다

2011년 1월세 살, 열세 살짜리 자식들을 데리고 워터파크 다녀온 날. 무조건 맛있는 것 해 놓으라고 전화를 했더니 남편이 차려놓은 밥상 ⓒ 배지영


젊고 활력 있던 30대 시절의 남편은 틈틈이 '날밤을 까며'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술도 많이 마시고 돌아다녔다. 어느 날 아침에는 토하고 괴로워하며 자기도 해장국 끓여주는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을 했다. 나는 국을 시원하게 끓일 줄 몰라서, 술이 확 깨는 이단 옆차기로 남편을 일으켜 세웠다.

남편은 덥든 춥든 집에서 입는 정장 차림(팬티와 런닝)으로 밥을 했다. 새벽까지 축구를 보거나 영화를 봐도 아침이면 부엌에 있었다. 큰아이의 이유식, 유치원 도시락, 초등학교 소풍 김밥을 쌌다. 나는 애잔한 영화 <해피투게더>를 보면서 대폭소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무슨 일이든, 거기가 어디든, 밥을 하는 양조위 때문이었다. 딱 남편이었다.

올봄에 우리 집은 경사를 맞았다.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더 이상 소풍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된 것이다. 그런데 꽃차남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네 살, 남편은 앞으로 9년 더 김밥을 말아야 도시락을 졸업한다. 남편은 "나는 오십이 넘어도 아들 소풍 김밥 싸고 있을 거야"라는 푸념을 했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그래도 다행인 줄 알어. 꽃차남 낳은 것처럼, 셋째라도 낳아봐라. 그럼 육십 넘어서도 도시락 싼다이."

2007년 4월어느 날 저녁, 큰 아이가 아빠 김밥 먹고 싶다며 남편을 소환한 날. 모임 하다 온 남편은 김밥 싸고 다시 나갔다. ⓒ 배지영


2008년 1월, 요리 준비하시는 아버지아주 건강했던 시절의 아버지, 그때는 아버지가 차려주신 밥을 참 많이 먹었다. 내가 아버지 옆으로 가면 "치나 봐라. 저~ 가 있어. 아버지가 해야 맛있다"고 말씀하셨다. ⓒ 배지영


나이가 들었어도 부엌에 서는 한 남자를 알고 있다. 내 시아버지 강호병님. 재료만 있으면 무슨 요리든 할 수 있다고 하시는 분. 자식들 먹이고 싶어서 손수 물고기도 잡고, 닭도 잡아 밥상 차리시는 아버지. 손주들이 라면 먹고 싶다고 하면, 당면까지 넣고 끓여서 라면은 쳐다보기 싫게 만드는 귀여움의 소유자. 내가 아버지 옆으로 다가서면 이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치나 봐라(비켜라). 저~ 가 있어. 아버지가 해야 맛있다."

아버지는 우리 집에 두 번 오셨다. 11년 전에 우리가 이사했을 때와 2년 전 겨울. 아버지는 대장암 수술을 앞두고 암세포를 줄이는 치료를 받고 계셨다. 새벽에 집을 나서서 병원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셨다. 가느다란 희망을 붙잡고, 시누이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군산과 서울을 오가던 때라 끼니를 밖에서 해결할 때가 잦았다.

아무리 시장해도, 아무리 고급 음식점에 가도, 사 먹는 밥이 안 넘어가는 날이 있기 마련.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 시누이들은 한 사람을 떠올렸다. 바로 우리 남편. 당신들의 막내 아들은 깊은 밤에 고속도로를 몇 시간째 달려오는 식구들을 위해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고, 전을 부치고, 생선을 구웠다. 그리고는 정갈하게 밥상을 차리고 기다렸다.

꽃차남에게 아빠는 어떤 사람일까

2010년 11월, 가느다란 희망을 잡고 서울을 오가던 때사 먹는 밥이 도저히 안 넘어가는 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시누이들이 떠올린 사람은 우리 남편. 그날 남편은 정갈하게 밥상을 차리고 기다렸다. ⓒ 배지영


꽃차남에게 아빠는 '밥하는 사람'이다. 네 살짜리 아이는 의자를 딛고 올라서서 칼질하는 아빠 손에 제 손을 얹으며 함께 요리하자고 한다. 꽃차남은 아빠가 깨뜨려준 달걀을 푼다. 열이 안 떨어져 어린이집에 결석한 날에도 살뜰하게 형아 운동화 빠는 일에 끼어든다. "햐! 신발 빠는 모습에도 감동할 수 있네." 나는 그 순간을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하지만, 남편은 이내 절규했다.

"나는 밥 하고 청소해도 되는데... 우리 아들은 안 돼."

어머니한테 내 남편도 '우리 아들'이다. 어머니 품으로 안긴 황소 태몽을 꾸고 나서 아기를 낳던 날, 쌀 씻을 물조차 없던 가뭄이 끝나고 '또랑'마다 물이 넘쳤단다. 그 아기는 자라 결혼해서 밥을 한다. 어머니는 똑같이 돈 벌면서 자식 키우는데 누가 음식 하면 어떠냐고 하신다. 물론 딱 한 번 "왜 너는 우리 아들 데려다가 밥 시키냐"고 하신 적은 있다.

2012년 5월, 꽃차남꽃차남에게 아빠는 밥 하는 사람. 제 아빠 흉내를 내는 중이다. ⓒ 배지영


2012년 6월, 꽃차남열이 안 떨어져서 어린이집도 못 간 날. 제 형아 운동화를 빨고 있다. 야무진 손놀림, 신발 빠는 모습에도 감동을 했던 날. ⓒ 배지영


이런 남편도 밥하기 싫은 날이 있다. 몽땅 사서 먹고, 배달시켜 먹자고도 한다. 나는 순종적인 아내라 "그래!"라고 긍정하지만, 남편은 한 끼도 못 넘기고 다시 부엌에 선다. 고기를 좋아하는 큰 아이를 위해 고기를 굽고, 고기를 싫어하는 아내를 위해 오이소박이를 담그고, "오늘은 브로콜리하고 오징어 주세요"라고 콕콕 집어 말하는 꽃차남을 위해 식재료를 데치고 삶는다.

남편은 '처자식을 먹여 살린다'는 원론적인 의미에 충실한 사람. 그러나 퇴근 시간이 따로 없고, 주말에도 약속이 많아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짧다. 남편은 "미안한 마음에 밥하는 것에 더 정성을 쏟는다"고 말했다. 저녁에도 집 근처에서 약속이 있으면 집에 온다. 예전에는 꽃차남 봐 주는 분이랑 '내외'하느라 머뭇거리더니 지금은 그것마저도 던져 버리고 밥상을 차리고 나간다.

남편의 빈자리... 나는 도전을 선택했다

2011년 10월식성이 각기 다른 처자식 때문에 골고루 차린 남편의 밥상 ⓒ 배지영


2011년 11월"좀 간단하게 먹자"고 저항하고 싶지만 막상 밥상 앞에서는 닥치고 먹는다. ⓒ 배지영


올해 초, 남편은 무척 바빴다. 자정이 넘어들어왔다가 새벽에 나갔다. 그런데 집에 오면 씻고 바로 자는 게 아니라 쌀 안치고, 국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있다. 이건 다 나 때문이다. 내 오랜 벗이자 친동생인 지현은 우리 집에 오면 저절로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게 된다고 했다. 놀러 왔는데 가만히 있으면 어쩐지 자신이 파렴치하게 느껴진단다.

운전을 못하는 사람, 옷을 못 입는 사람,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 길을 못 찾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못하는 게 꼭 하나씩 있기 마련인데 나는 집안일을 못한다. 요리나 정리는 낯설고 두려워 도망치고 싶은 분야. 한두 번 해도 감이 안 오고, 다시 해 보려고 하면 어느새 일의 순서는 까맣게 잊은 뒤다.

나는 남편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남편이 차리는 밥상 이미지부터 머릿속에서 지웠다. 겁내지 않고 할 수 있는 간단한 반찬을 인터넷에서 찾았다. 그리고는 한 끼에 반찬 한 가지인 식단을 짰다. 양파대패삼겹살볶음, 닭봉스파게티소스조림, 데운 두부와 김치볶음, 피망버터볶음밥, 스파게티, 버섯전, 두부전.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생선구이나 김... 때로는 누룽지도 정식 메뉴로 삼았다.

2012년 7월의 어느 토요일애들 데리고 나가서 캐치볼 하고 왔더니 남편이 우렁각시처럼 차려놓은 밥상 ⓒ 배지영


며칠 전인 2012년 8월나는 요새는 자주 "여보, 간단하게 좀 먹자, 애들 살아갈 시대는 식재료가 엄청나게 비싸진다고"라며 잘난 척을 좀 한다. 그러나 내 말은 남편에게 먹히지 않는다. ⓒ 배지영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돌아왔다. 몇 달간 남편이 매달린 일은 침통하게 끝난 채 말이다. 남편은 집에서 차려입는 정장 차림을 하고 다시 부엌에 섰다. 나는 그동안 밥을 좀 해봤다. 이제는 남편이 차리는 '신혼 밥상'(접시에 반찬을 덜어서 먹으면 신혼이라고 '애정남'이 그러더라) 앞에서 잘난 척도 한다.

"앞으로 제굴이(큰 아이)랑 꽃차남이 살아갈 시대는 식재료가 엄청나게 비싸질 거야. 좀 간단하게 먹자. 내 식단 봤지? 그래야 애들도 나중에 커서 적응한다이."

지난해 봄, 나는 C형 간염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의 동정표를 받아 이제는 식탁 맞은편 책꽂이에 카메라 놓는 고정석부터 만들었다. 그릇도 없고, 대작 요리도 없고, 그저 그런 밥상이라고 부끄러워하는 남편의 밥상을 대놓고 찍는다. 말려도 소용없다. 나는 공식적으로 '간댕이'가 아파서 투병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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