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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후조종? 진짜 범인은 남쪽입니다!"

[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경험담] 남측 민간단체와 북의 관계

등록|2012.08.14 16:44 수정|2012.08.14 16:45
지난 10여 년간, 대북지원사업과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하면서 수없이 방문해서 만났던 북한과 북한 사람들.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고, 다르면서도 같은 것 같은 남과 북의 만남에서 발생했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해 볼 지점들을 하나씩 기사로 전합니다. - 기자말

남과 북의 소통을 담당하는 북의 민화협 안내원들

좌충우돌 북한 경험담을 이것저것 늘어놓을 때마다 늘 떠오르는 분들이 있다. 바로 북측 안내원들이다. 안내원들은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분들인데 남쪽 NGO 일꾼들이 이분들을 빼놓고 북한을 접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쪽에게 북한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코드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북한 민화협에 대한 소개부터 하고 다음 글에는 민화협 안내원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민화협의 위상과 관련해 그분들과 주고받았던 대화가 기억난다.

: "'민족화해협의회'가 민간단체인가요 정부 기관인가요?"
: "당연히 민간이지요."
: "남측에서는 민간단체, 시민단체를 NGO라고 하는데 그것은 비정부기구라는 뜻이지요. 민화협이 비정부기구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보기에는 선생들은 공무원인데요?"
: "아니 무슨 말씀을! 당연히 NGO지요. NGO구 말고! 민화협은 북한 정부기관에 속해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쪽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를 상대하니 NGO라고 해야 되겠지요? 정부기관이면 민간단체와 이렇게 수평적 대화를 하기는 어렵겠지요?"
: "흠... 말이 되긴 하네요. North Gorvenmental Organization(비정부 기구가 아니라 북의 정부 기구)이라고나 할까. 하하, 그러면 우리는 SNGO(남한 비정부기구)고 선생님들은 NGO(북조선 정부기구) 겠네요. NGO 선생님들!"

북한 민화협은 조선노동당의 통일전선부에 속한 대남 화해협력사업을 하는 단체다. 북한에도 대중단체가 많이 있지만 남한의 NGO와는 다르다. 잠시 그 배경을 설명하자면, 북한은 국가권력과 북한 내부 주민들과 밀착돼 있는 편이다. 북한의 대중단체는 그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지만, 정부와 대립하지 않고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정당도 청우당, 사회민주당이 있지만 조선노동당과 경쟁관계가 아닌 협력적인 관계라는 게 북의 주장이듯이 북한의 정당 사회단체와 정부와의 관계 역시, 서구식 다원주의의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 그러므로 북한에 정부와 일정한 대립각을 생명으로 하는 NGO는 존립할 수 없다. 이런 독특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북한을 고도화된 관료주의, 주민통제시스템이 완성돼 있는 거대 감옥이라고 볼지, 아니면 지도자를 중심으로 해 일심단결된 사회로 볼지 그것은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남한 사회에서 시민단체와 국가권력과의 유착을 금기시하며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속에서 활동해온 남한의 민간단체 활동가들은 일반적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대단히 심해 북한에서는 정권과 주민이 혼연일체라는 말을 믿기는 어렵다. 더구나 북한 정권의 수뇌부(?)야말로, 남쪽에서는 가장 수용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이므로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아마 북의 민화협 분들도 남측의 이런 정서를 반영해 자신들이 민간의 편에서 민간 통일운동을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악착같이 NGO라고 주장하지 않았을까.

이런 주장을 하는 선배가 있다.
 
"북한 민화협 사람들은 공무원이지 통일운동을 한다고 할 수 없어. 남한 통일운동가들은 정부와 싸우면서 감옥행도 불사하고 꿋꿋하게 통일운동을 해왔는데, 그런 내공이 민화협의 관료들에게 있을 턱이 있나? 남쪽 통일운동가들부터 배우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데, 내공이 없으니 더욱더 위에서 내려온 방침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거든! 공무원들이 통일운동을 알아?"

이런 공격에 대해 북한 민화협 분들은 억울한 표정으로 이렇게 항변한다. 

"남측 분들이 우리의 고난의 행군을 압니까? 1990년대, 주석님 사망과 동구권의 몰락, 북에 몰아닥친 엄청난 자연재해로 엄청난 위기를 맞았을 때 우리 조국이 망하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미국 놈들에 맞서 풀뿌리 캐어 먹으며 자주권을 지키며 투쟁했단 말입니다. 우리는 남측 선생들처럼 정부와 싸우며 민주주의 투쟁을 한 것이 아니지만, 정부와 혼연일체가 되어 조국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사실 이런 식의 논쟁이야 끝이 없을 테고, 문제의 핵심은 남한에서는 민간의 개념이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인데 반해 북한에서는 정부와 민간은 서로 돕는 관계라고 보고 있다.

위상이 어떻든 내가 보기에 북한 민화협 분들은 남측 민간단체들이 북한 사회 내부와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이 남쪽 민간단체의 입장을 다 수용해 주지는 않는다. 북쪽 내부에도 사회 질서가 있고, 합의돼 있는 정책방향이 있으며, 남북관계가 자유롭게 교류할 만큼 서로 준비돼 있지 않은 탓이다. 북한 민화협 분들은 비교적 남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고 남한 민간단체의 요구의 의미도 잘 이해해주는 편이지만 북한 정부의 다른 부처나,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강화된 분배 모니터링에 불쾌해하는 북

▲ 이명박 정부들어 강화된 분배확인에 지원을 받는 당사자들은 불쾌해한다. ⓒ 서영준 화백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남쪽 민간단체들이 밀가루를 보내려고 할 때, 통일부에서는 적어도 세 군데 이상의 영·유아 시설에 직접 가서 분배현장을 꼭 확인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지원을 승인한다. 남쪽에서는 이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상식적인 일이다.

그러나 북한에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밀가루를 지원받는 지역의 인민위원회에서는 남한에서 보내주는 밀가루를 고마운 마음으로 받으려는 순간, 남쪽 단체의 분배 현장 확인 요청 앞에서 뜨악해한다. 남쪽 민간단체들이 왜 자신들을 믿지 못하는지, 영·유아 시설을 참관하겠다면 즐겁게 방문을 도와줄 수 있지만, 분배를 확인해야 한다니... '손님이 아니라 감시자 아니나?'며 '그렇게 못 믿겠으면 뭐 하러 지원은 했는지'라고 답답해한다.

그러니 당연히 분배 현장 방문에 고분고분 협조할 리가 없다. 북한 민화협 안내원들은 이 인민위원회 분들을 설득하는 데 아주 애를 먹는다. 그럴 때마다 안내원들은 남쪽의 요구라면 뭐든지 다해줘야 하느냐는 인민들의 항변을 받는다고 한다. 나는 민화협 분들로부터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한 대북지원이 실제 북 주민들에게서 이렇게 남쪽을 오해하는 계기가 될까봐 더 전전긍긍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들은 바 있다.

이런 사례 말고도, 북의 민화협이 우리와 어떤 합의를 하고 나서 막상 북한의 내부에서 그 의미를 소통하는데 애를 먹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내가 좌충우돌 북한경험담에서도 이런 사례는 여러 번 언급했듯이 말이다. 적어도 아까 그 선배의 말처럼, 북한 민화협이 북한 정부 시책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가끔 남한의 국가보안법 재판에서 '북의 민화협 아무개가 공작원인데, 피고인 누구누구가 그 아무개와 접선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식의 주장이 기소 내용에 포함될 때가 있다. 통일부의 승인을 다 받고 사후 보고서까지 다 올린 문제임에도 이런 식의 공소가 이뤄진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대부분 민화협 안내원이 공작원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재판결과가 나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북한 민화협 당사자들은 우리에게 이런 반론을 한다.  

"우리가 지령을 내린다고요? 오히려 우리를 배후 조종하는 것은 남쪽단체들 아닙니까? 총장 선생도 알다시피, 우리 민화협은 남쪽 단체들과 만날 때, 남쪽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느라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우리는 남측의 그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 북 내부를 설득하느라 다리품 팔아가며 어렵게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우리가 남측 민간단체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측 민간단체가 우리 북 민화협을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진실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 민간단체가 이렇게 북한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비록 '불편한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인정해주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블로그(http://blog.krhana.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이경 기자는 겨레하나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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