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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성폭력 당한 아이, 왜 입을 닫았을까

[Upgrade! 反성폭력 감수성! ⑤] 친족성폭력, 분노만큼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

등록|2012.08.17 18:52 수정|2012.08.17 18:52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문제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뉴스 속 끔찍한 사건이 아니라 나와 내 주변의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기 위해 총 10회에 걸쳐 'Upgrade! 反 성폭력 감수성!'을 연재합니다. 성폭력을 둘러싼 고민과 궁금한 점,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적인 경험을 나누며 우리의 인식을 점검했으면 합니다. 더불어 성폭력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걸 공유하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포털사이트의 뉴스란에는 자주 "친딸 성폭행, 아빠는 짐승이었다" 등 만인의 공분을 사는 성폭력 사건 관련 기사가 올라온다. 4촌 이내의 혈족과 인척에 의한 성폭력을 '친족 성폭력'이라고 한다. 흔히들 '근친상간'이라고 표현하지만 근친상간은 혼인이 금지된 성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성관계를 뜻하기에 '성폭력'을 간과하게 만드는 용어다. 1994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이후에는 '친족성폭력'이 법적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2010년 기준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담 1312건 중 12.3%인 162건이 친족에 의한 성폭력 관련 내용이었다. 이중 친부, 의부 등 아버지 역할을 하는 자에 의한 성폭력이 친족 성폭력의 약 절반을 차지했다(그러나 고소율 자체가 현저하게 낮기 때문에 이 통계는 제한된 사실만을 보여준다).

친족 성폭력, 왜 오랜 시간 지속됐나

▲ 성폭력 가해자들은 대부분 "아무도 모르는 비밀로 해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 알아야 할 것을 먼저 가르쳐주는 것이다"라면서 성폭력을 '사랑'으로 위장하거나 왜곡된 성의식을 피해자에게 주입하기도 한다. 사진은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 삼거리픽쳐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아버지나 오빠, 삼촌 등 가족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하는 행동의 의미를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가해자들은 대부분 "아무도 모르는 비밀로 해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 알아야 할 것을 먼저 가르쳐주는 것이다"라면서 성폭력을 '사랑'으로 위장하거나 왜곡된 성의식을 피해자에게 주입하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이 알면 너는 쫓겨난다" "엄마가 알면 엄마, 아빠가 이혼하게 된다" 등의 말로 아이를 협박하거나 회유한다.

이런 탓에 친족 성폭력 피해자는 사건을 알렸을 때 가족들이 받을 충격을 걱정하고, 가족이 해체되거나 자신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설사 주변 가족들에게 말한다고 해도 "거짓말을 한다"며 오히려 피해자를 의심하고 비난하거나 피해 사실을 숨길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하기에 피해자는 피해사실을 드러내기보다는 혼자 참으면서 오랜 시간 피해를 지속적으로 당하기도 한다. 

▲ 주디스 루이스 허먼은 책 <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삼인, 2010)에서 친족 성폭력 가해자와 그 가족에 대해 설명한다. ⓒ 삼인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를 드러내기 힘든 일차적인 이유는 "'가족' 안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사회적인 분위기 탓이다. 자신이 이해받지 못할까봐 두려워 하는 것이다. 

'가족'을 강조하는 한국사회 문화는 가정폭력이나 친족 성폭력을 '집안일'로 은폐하고 외부의 개입을 차단하기 쉽다.

특히 가해자가 학력이 높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은 가해자의 이중적 모습을 간파하기 힘들기에 더더욱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는 성폭력을 싸이코패스나 소수 흉악범에 의한 범죄로만 보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면서, 일상 속의 성폭력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성폭력은 여자를 꼼짝 못하게 해서 때리고 강제로 관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라도 나를 만져서는 안 되고, 나는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다."

한 친족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에서 한 이 발언은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 "어두운 골목길에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로 시작하는 우리 사회의 성폭력 예방 수칙이 친족성폭력 앞에서 얼마나 공염불에 불과한지 알게 해 준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의 양가감정, 피해자를 이해하는 열쇠

친족 성폭력 관련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또 한 가지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갖는 '양가감정'이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분노의 감정뿐 아니라 의존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연민의 감정을 갖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가해자들의 비위를 맞추기도 한다.

▲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주인공 문유정(이나영 분)도 어린 시절 친척 오빠에 당한 성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 LJ필름


이는 성폭력의 가해자지만 피해자를 경제적으로 양육, 보호하고 있고 그 가해자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상황 탓이 크다. 또 장기간 피해상황이 지속되면, 피해자들은 상황을 빨리 끝내려 저항하지 않기도 하며, 더 폭력적인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가해자들에게 순종하기도 한다.

피해자들의 이러한 양가적인 감정이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수사,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발생시킨다.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으면서도 가해자와 친하게 지냈던 사실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며 "거짓 아닌가, 왜 바로 집에서 나오지 않았느냐"고 추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상상해보자. 매일 폭력과 성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밥을 먹어야 하고 학교에 다녀야 하며 일상을 살아야 하는 피해자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을 수 있을까? 다른 가족들이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하고 피해 사실을 폭로했을 때 가족이라는 유일한 끈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 오게 된다. 청소녀가 집을 나왔을 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또한 빈곤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피해자가 가출 이후 자신의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친족 성폭력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세 가지 방법 

일단, 친족 성폭력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기이한 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폭력은 낯선 관계 안에서만 일어난다"는 잘못된 통념, 그리고 폭행과 협박을 동반한 강간만을 성폭력으로 보는 분위기에서는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결코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친족 성폭력은 비정상적인 한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성폭력이 만연한 우리 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기에, 사회가 책임지고 피해자를 보살펴야 한다.

그리고 동거하는 가족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가해자와 시급히 분리시켜야 한다. 가해자를 내쫓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것이 쉽지 않으면 '쉼터' 등과 연계해야 한다. 실제로 피해자들은 '쉼터'가 있는 줄 모르고 가출 이후의 삶이 막막해서 피해를 참고 견디는 사례가 많다. 성폭력상담소나 쉼터 등에 대한 정보를 학교, 아동보호기관, 지역사회의 기관 등에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 2012년 3.8 여성대회 행사에 함께 한 성폭력피해자 쉼터 '열림터'는 1994년 전국 최초로 문을 열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마지막으로 성과 관련한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실제로 어렸을 때 삼촌이나 사촌오빠 등 친인척 등에게 친족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당시 엄마에게 털어놓았지만 가장 믿었던 가족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그 순간 이후로 입을 다물고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참고 양보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 사회 문화에서는 아이들의 감정을 무시하고 별 거 아닌 일로 치부할 때가 많다. 물론 어른들도 그 사실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겠지만, 가족과 얼굴 붉히는 것이 난감해서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자신의 몸이 침범당하는 느낌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주지시켜야 한다. 결국 이는 아이와 '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나랑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 열림터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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