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영토였던 이곳에 '사방치기'가 있다니
[공정여행-여름 만주를 가다②] 조선족이 묻다 "우리는 누구인가요"
▲ 소박했던 하얼빈 공항 안과 달리 주차장은 차들로 가득차 있었다. ⓒ 신정임
"여행처럼 신선하고 여행처럼 다정다감한 생활은 없다.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새것들이다. 새것들이니 호기심이 일어나고 호기심을 갖고 보니 무슨 감상이고 떠오른다."
이태준은 <문장강화>에서 기행문을 설명하면서 여행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맞는 말이다. 인천공항에서 날아올라 2시간 가까운 비행 끝에 하얼빈 공항에 내려서면서부터 여러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북쪽하늘로 바로 왔으면 제주도처럼 1시간도 안 걸렸을 곳이다. 하늘에도 보이지 않는 휴전선이 쳐 있어서 서쪽 바다 위로 돌아오느라 비행시간이 두 배나 걸렸다. 통일만 된다면 기차타고 와도 좋을 텐데 그날은 언제 올까. 평소에 느끼지 못한 반쪽짜리 나라에 사는 처지가 피부로 와 닿는다.
중국에 왔으니 만만디하는 걸로
▲ 과거 러시아의 영토였던 하얼빈엔 여전히 러시아풍의 건물들이 많다. ⓒ 신정임
하얼빈공항은 인천공항과 딴판이었다. 100m 달리기를 하고도 남을 인천공항 로비, 바글거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서서 정신줄 놓으면 미아 되기 십상이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반면 하얼빈공항은 소박했다. 한눈에 공항이 다 들어왔다. 입국 심사대 앞에도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벌써부터 마음이 느긋해졌다. 실제 중국인들이 만만디하진 않겠지만 내 마음은 만만디하는 걸로.
공항 로비에 '국제민주연대'라고 쓰인 종이를 든 한 여성이 서있다. 그 옆에 선 노란머리가 인상적인 젊은이도 우리에게 아는 체를 한다. 젊은이의 이름은 정군. 4박 5일 동안 통역을 맡아줄 조선족 친구다. 만나자마자 자기 이름으로 농담을 한다.
"제가 이름이 정군이라고 하는데도 사람들은 꼭 '정군, 그래서 이름은 뭐야?'라고 물어요. 성은 정이고 이름은 군입니다."
▲ 하얼빈 공항 앞에서 통역을 맡아준 정군과 필자 ⓒ 신정임
87년생이라는 그는 그동안 국제민주연대의 공정여행 통역을 여러 차례 했단다. 북경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데 이번 통역을 위해 휴가까지 내고 왔다고 전한다. 여행 진행자인 최정규 작가는 여러 번 만났는지 만나자마자 그에게 어깨동무를 한다. 친한 동생을 대하듯 곰살궂다. 종이를 들고 있던 여성의 이름은 리링으로 하얼빈지역을 안내해줄 현지 가이드였다. 얼마나 돌아다니면 현지 가이드까지 있을까. 20대의 풋풋함이 느껴지는 그녀가 소개할 하얼빈의 숨은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하얼빈 공항을 나서자 한편에 빽빽한 나무숲이 보인다. 그 숲 너머 너른 옥수수밭이 있다. 하얼빈이 속한 중국 동북지역은 최대 옥수수산지다. 물론 우리에게 익숙한 출출할 때 먹으면 그만인 그 옥수수는 아니다. 가축들의 사료용이다. 어르신들이 하던 "옛날 배고팠던 시절엔 옥수수 먹고 컸다"는 얘기를 이제는 소나 말들에게 들을 판이다. 혹시 저 옥수수들이 유전자조작 옥수수는 아닐까. 갑자기 가축들의 안위가 걱정된다. 그들을 먹고 있는 우리들의 건강까지도.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지 못하는 인간들의 조급함이 부끄럽다.
자연 앞에 겸허해지자 마음먹으며 버스로 향하는데 공항 안에서와 달리 공항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 차 있다. 인구 대국 중국에 왔으니 많은 사람들에도 익숙해져야 하나. 급히 버스에 몸을 싣는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호랑이 사육장, 동북호림원
▲ 오른쪽의 넓은 공간이 세계 최대 호랑이 사육지인 동북호림원이다. ⓒ 신정임
중국의 행정지명은 성(省), 현(縣), 향(鄕), 진(鎭), 촌(村)으로 내려간다. 하얼빈은 헤이룽장성의 성도로 중국에서 10번째로 큰 도시다. '하얼빈'은 '그물을 말리는 곳'이란 뜻의 만주어다. 예전엔 불과 몇 가구 살지 않는 작은 어촌마을이었는데 19세기에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장하면서부터 도시로 급성장했다. 하얼빈은 '백조 목 위의 진주'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러시아 시베리아에서부터 흘러오는 아무르 강이 하얼빈을 지나가는데 그 강이 백조를 닮았단다. 중국에선 아무르 강을 헤이룽강이라고 부르는데 우리에겐 흑룡강으로 더 익숙하다.
러시아와 맞닿아 있고 러시아 영토였던 적도 있어서 그런지 버스가 지나가는 거리엔 러시아풍 건물들이 많았다. 서울에서 늘 보던 네모반듯한 고층빌딩들이 별로 없다. 건물에 풍차 바람개비를 다는 등 건물들이 제각각 멋을 냈다. 도시가 품은 역사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첫 번째 탐방지는 동북호림원이었다. 세계에서 제일 큰 호랑이 사육장인 동북호림원엔 1000마리에 가까운 호랑이들이 살고 있다. 멸종된 한반도 호랑이와 유전자 구조가 일치하는 시베리아 호랑이들이다. 시베리아 호랑이도 멸종 위기종이어서 이곳에서 어느 정도 키우면 야생으로 방사하기도 한단다. 매일 주는 먹이만 받아먹는데 익숙한 호랑이들이 야생에 나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지리산에 풀어놓은 반달가슴곰들이 새끼를 낳았다는 뉴스를 얼핏 봤던 기억이 난다. 동물의 생존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질긴 게다.
동북호림원도 상상 이상이었다. 우선 큰 규모에 입이 벌어졌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도는데도 끝이 없다. 호랑이를 어쩌다 한 번 보는 것도 아니다. 곳곳에서 나타난다. 백호도 보인다. 전 세계에 10마리뿐이라는 호랑이와 사자의 교미종도 2마리 있다.
날쌔게 오리 잡아먹는 호랑이, 사파리는 저리 가라
▲ 동북호림원의 호랑이들. 여름날씨 탓인지 잠을 자는 호랑이들이 많았다. ⓒ 신정임
앞에 간 중국인들이 호랑이 먹이를 샀다. 먹이 값도 만만치 않은지 이렇게 관광객의 주머니를 턴다. 그 덕에 호랑이의 식사시간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호랑이의 먹이는 살아있는 오리였다. 사육사가 커다란 웅덩이에 오리를 던지니 오리가 살아보겠다는 듯 열심히 헤엄을 친다. 하지만 호랑이가 더 날쌨다. 채 2~3분 만에 달려든 두 호랑이 중 한 호랑이 입 속으로 오리가 사라졌다.
동물원에서는 갇혀 있는 호랑이를 봤는데 지금은 우리들이 버스에 갇혀 있다. 몸을 너무 창문 밖으로 내놓지 말라고 버스 기사가 단단히 당부한다. 일행 중 한 명이 한 마디 한다.
"에버랜드 사파리는 비교가 안 되네."
▲ 동북호림원엔 길목마다 초소가 설치돼 있었다. ⓒ 신정임
우린 작은 버스에 갇혔지만 사실 호랑이들은 커다란 우리에 갇힌 셈이다. 그 우리가 너무 커서 길목마다 철조망이 달린 철문과 감시 초소가 설치돼 있다. 높다란 초소는 탈옥하는 죄수들을 감시하는 교도소 초소를 닮았다. 초원을 달리지 못하고 인간들의 눈요깃거리로 전락한 산중호걸의 어깨가 초라하게 다가온다. 여름날 오후의 나른함을 견딜 수 없다는 듯 많은 호랑이들이 땅에 배를 붙이고 꼼짝 않고 있다. 맹수가 아니라 한번 쓰다듬고 싶은 애완동물의 모습이다. 호랑이들 옆에 누워 낮잠 한숨 자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초소에도 호랑이들의 나른함이 전해졌는지 초소 안 감시인들의 표정도 한없이 무료하다.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도 있다.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러닝셔츠만 입거나 아예 웃통을 벗어젖힌 감시인도 있다. 호랑이보다 그들의 표정을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간혹 여성들도 보인다. 초소 감시일은 남성 몫일 거라는 내 선입견을 빗나갔다. 요즘 같은 시대에 남자 하는 일, 여자 하는 일이 어디 따로 있나. 그곳을 나서면서 그들에게 마음 속 감사를 전했다. '좁은 공간에 갇혀 호랑이들을 지켜보는 당신들의 노동이 있어 다채로운 여행이 됐네요. 고마워요.'
부동산투기 성행하는 사회주의 나라
▲ 곳곳에서 아파트 공사를 하고 있는 하얼빈은 최근 부동산 투기바람이 불고 있다. ⓒ 신정임
한참 돌았더니 뱃속에서 신호를 보낸다. 최 작가가 눈치 챘는지 밥을 먹으러 가잔다. 오늘 저녁식사는 바로 1달 전 하얼빈 외곽에 식당을 연 정군의 외삼촌 네로 정해졌다. 버스가 하얼빈 중심가를 지나가는데 곳곳에서 고층 건물을 올리고 있다. '하얼빈은 공사중'이라고 푯말을 달아야 할 정도다.
"몇 년 전만 해도 하얼빈이 농촌 마을의 풍경이 있었는데 2년 전에 큰 다리가 놓이면서부터 개발붐이 불었어요. 부동산가격이 10배 이상 오를 곳도 있대요."
정군이 부동산 투기가 성행하는 중국의 현재를 전한다. 아직 '중화인민공화국'이란 이름을 놓지 않고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부동산 투기라니. 그 어색한 이율배반에 중국인들은 상당히 익숙해진 모습이다.
▲ 저녁을 먹은 공정여행 일행이 식당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식당 간판엔 '중한요리'라고 적혀 있다. ⓒ 신정임
버스가 한적한 시골풍경을 간직한 곳에 멈춰 섰다. 간판에 '중한요리'라는 한글도 보이는 식당이다. 바로 옆 식당의 한족인 주인이 조선족을 채용해 한국인 관광객들 대상으로 장사를 해서 떼돈을 벌었다고 최 작가가 귀띔했다. 옆 가게에서 경계하는지 우리 버스가 들어서자 몇 사람 나와서 기웃거린다. 버스에서 내려 "삼촌" 하고 부르는 정군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겨우 20명이 먹어서 매상에 얼마나 보탬이 될까 만은 조카가 외삼촌에게 큰소리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아서 한 일 없이 뿌듯하다.
중국 특유의 회전식 테이블 위에 음식들이 담긴 큰 접시가 차례차례 들어온다. 간판 그대로 중국과 한국 음식의 짬뽕이다. 북어포 무침, 고기볶음, 중국식 흰빵…. 다른 무엇보다도 중국에 와서 된장찌개를 먹을 줄은 몰랐다. 저마다 품평을 내놓는다. "나름 괜찮은데…." 한국에서 먹던 맛은 아니지만 입에 맞다. 다들 계속해서 젓가락을 움직인다. 중국인인 리링만 "전부 빨갛다"고 푸념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반찬들이 정말 다 붉은 색이다. 우리가 고추장을 '격하게' 사랑하는 민족인 건 인정해야겠다.
중국인도 한국인도 될 수 없는 조선족
▲ 통역인 정군의 외삼촌이 문을 연 식당은 시골마을의 정취가 느껴지는 하얼빈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도 최근 재개발 열풍에 휩싸여 주민의 80%에 이르던 조선족들이 떠나가 현재는 20%도 안 남았다. ⓒ 신정임
식당 마당의 작은 텃밭 앞에서 부른 배를 두드리고 있는데 식당에서 한국노래가 흘러나온다. "사랑의 콩깍지 씌어 버렸어. 나는 나는 어쩌면 좋아" 장윤정의 목소리가 통통 튄다.
정군의 외삼촌이 이 지역에 조선족들이 정착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희 부모님 고향이 경상도에요. 일제 때 농사지을 길이 막막해 조선인들이 봄이면 걸어서 하얼빈까지 와서 농사짓고 가을걷이 끝내고 다시 조선으로 넘어가고 그랬대요. 당시 이곳은 러시아 땅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었어요. 걸리면 죽는 걸 알면서도 먹고 살게 없으니까 목숨 걸고 이 멀리까지 와서 터를 잡게 된 거죠."
이곳은 원래 조선족이 80%를 차지했던 마을이었다.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한족들이 계속 들어와 지금은 조선족이 채 20%가 안 된다고 한다. 마을에서 밀려난 조선족들은 한국, 일본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다. 정군의 부모님도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에 영주권을 신청해 놨는데 언제 받을지는 알 수 없다. 정군이 조선족에겐 3개월 관광비자만 나온다고 아쉬워했다. 몇 년째 부모님을 못 만나고 있다면서 그가 힘없이 웃었다.
"지금 마을이 죄다 공사중이에요. 1층이었던 건물을 하루만에 2층으로 올리는 것도 예사예요. 건물 면적, 마당에 심은 꽃까지 다 가격을 매겨서 아파트 평수를 쳐준다니까 날림으로 짓는 거죠. 집을 짓는 게 아니라 벽만 막아놓는 수준이에요."
▲ 정군의 외삼촌 식당 앞에 그려져 있던 사방치기. 수십년 전 한반도를 떠나온 조선족들이 여전히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 신정임
식당 앞 공터에 누군가 사방치기를 그려놓았다. 어렸을 적 돌을 던져 놓고 외발로 통통 뛰어가 돌을 주워 와서 "야호!" 외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여기서 한국까지 거리는 얼마나 될까. 수십 년 전 조국으로부터 수만 킬로미터를 건너왔지만 조선족은 한민족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묻는다. 중국에서는 중국인이 아니라 하고 한국에서도 한국인이 아니라고 한다. 내 손이 잘못 닫힌 문틈에 끼인 듯 아프다. 쓰라린 가슴을 위무하는 듯 붉은 해가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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