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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시로 아이들과 교감을 이루다

[서평] 주상태 선생님이 엮은 <사진아 시가 되라>

등록|2012.08.20 10:23 수정|2012.08.20 10:23

책겉그림〈사진이 시가 되라〉 ⓒ 리더스가이드

학창시절에 펜팔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여학생이었죠. 우리나라 여배우들에 빗댈 만큼 예뻤죠. 이름이 '케어리 호그리프'였는데, 지금은 영문으로 어떻게 쓰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학생이 갖고 있던 취미는 승마에다 수영 등 갖가지 고상한 것이었죠. 나로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그련 취미 말이죠.

그 학생과 펜팔이 끊겼던 것은 내 인물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내 딴에는 바다 풍경을 하고 있는 노을에 비친 멋진 사진을 보냈었죠. 그게 세 번째 답장이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그 학생이 쓴 편지를 받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참 씁쓸했죠.

그 시절에 펜팔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고등학교 선생님의 지도가 컸죠. 선생님은 주어와 동사와 목적어 정도의 어순만 알고 있던 우리들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줬습니다. 딱히 잘 쓸 필요도 없으니, 펜팔 교본을 보고 그냥 써보라고도 했죠. 어떤 날에는 선생님이 쓴 편지나 다른 친구들이 쓴 편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과도 점점 가까워졌죠.

주상태 선생님이 엮은 <사진아 시가 되라>를 읽고 있자니, 문득 그 추억이 떠올라 몇 자 써보았습니다. 사실 학창 시절에 시를 써본다는 것도 결코 쉽지 않는 일이죠. 영어 단어에다, 수학공식에다, 심지어 소설책 하나 읽는 것으로도 벅찬데, 시까지 쓴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써놓은 이 책의 시들을 읽어보니 꽤나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들처럼 꾸미거나 뭔가 포장을 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감정과 느낌을 시로 읊조리고 있는 까닭입니다. 어떤 시는 두 줄로 끝난 것도 있고, 또 다른 시는 한 장 빼곡하게 쓴 시도 있죠. 저마다 자기 주관과 감정을 잘 드러낸 것 같았습니다.

책 속 사진과 시이 책 50쪽에 있는, 이기현 학생이 쓴 '나를 따라라'는 시입니다. ⓒ 리더스가이드


분홍색 아이유 티셔츠에
파랑 반바지에 빨강 줄이 있는
촌스러운 체육복 바지에
하얀색 바통을 움켜쥐고
머리카락과 눈썹을 휘날리며
선두를 달리고 있는 1등과

이마에 주름이 지고
불안해 보이는 얼굴
긴장해 온몸이 굳은 채 뛰고 있는 2등과

꼴등이라 쪽팔리는지
얼굴도 못 들고
5대 5 가르마가 만들어져도
죽을힘을 다해 질주하는
표정이 압권인 꼴찌

1등·2등·3등
누구라 할 것 없이
전쟁터에 뛰어가는 장군이 아닌
말들처럼 보이는 그들

중학교 1학년 이기현 학생이 쓴 <나를 따라라>란 시입니다. 이 시를 읽고 있자니 학창시절에 열심히 운동장을 뛰었던 봄·가을 체육대회가 떠오릅니다. 맨 앞에 뛰는 친구는 얼굴 표정이 밝아 보이고, 그 뒤에서 뛰는 친구는 죽어라 쫓아가고, 세 번째 친구는 창피해서 그런지 얼굴을 숙이고 뛰고 있죠. 어쩌면 이렇게 사실적인 시를 쓸 수 있는지 참 신기합니다.

책 속 사진과 시이 책 137쪽에 있는, 김하현 학생이 쓴 '작은 신발들을 보며'라는 시입니다. ⓒ 리더스가이드


운동화
부츠
구두
모두모두 작네

난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거지?

발도 크고
손도 크고
나도 저거 신은 적 있는데

김하연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쓴 <작은 신발들을 보며>라는 시입니다. 아동화를 파는 가게 앞에서 찍는 사진을 보며, 옛 추억을 떠올리며 쓴 시 같습니다. 지금은 키도 크고 발도 크지만, 그 옛날 앙증맞게 생긴 신발을 신고 다녔던 그 시절을 자연스럽게 회상토록 하고 있죠.

바로 그것입니다. 이 책 속에 담긴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쓴 시는 죄다 사진과 관련돼 있는 게 특징입니다. 주상태 선생님은 시 쓰기를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사진을 보고 시를 써보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 책이 나온 계기가 되었고요.

기존의 방식에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시를 해석해주었지만 학생들이 여러 번 시를 읽으면서 스스로 시의 감성을 이해하고, 시 속 주인공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시 속 핵심어를 통하여 파악하도록 한 것이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먼저 시를 대하는 학생들이 시가 공부라는 부담이 아니라 스스로 시를 느끼고,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낸 것이 아이들의 시 이해에 더 좋은 결과를 내었다. 그럼에도 시 창작은 아이들이 여전히 힘들어했다. 간헐적으로 사진이나 그림을 이용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사진을 중심으로 놓고 시 수업을 진행해보았다.(224쪽)

사진을 통해 아이들에게 시를 쓰도록 이끌어 준 주상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단순한 선생님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방학이 끝나면 자신이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을 인화하여 예쁜 엽서를 만들고, 그 밑에 멋진 시도 적어서 아이들에게 선물해준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하나로 묶는 데 있어서, 그것보다 더 좋은 교감을 이루는 길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 참 고마운 선생님입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아 시가 되라> 주상태 씀, 리더스가이드 펴냄, 2012년 8월, 260쪽, 1만2000원
* 이 기사는 도서포털 리더스가이드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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