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람회 끝나도 지원시설은 여전히 공사 중?
자산유원지 내 호텔부지 수년 째 방치... 시측 "원상복구가 방침"
▲ 호텔부지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호텔 부지로서는 최적의 장소일까요? 사진 왼쪽에 오동도와 여수세계박람회장이 있습니다. ⓒ 황주찬
▲ 옛 모습호텔 부지 공사 전 모습입니다. 사진 왼쪽으로 팔각정과 오동도가 보입니다. ⓒ 황주찬
지난 16일 오후, 전남 여수시 수정동 자산유원지를 찾았습니다. 아름다운 호텔부지는 땅만 흉물스럽게 파놓은 상태입니다. 그 땅 옆을 지나가는 관광객이 눈살을 찌푸립니다. 보기 싫은 그곳, 위험하기도 합니다. 오동도는 유명한 관광지라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오동도 찾은 관광객 중 일부는 옆에 있는 자산공원도 오릅니다. 오동도 입구에 난 작은 계단을 따라 구릉을 오르면 예쁜 팔각정이 나옵니다. 시원한 남해바다와 박람회장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경치 좋은 곳이죠. 걱정은 팔각정과 잇닿은 곳에 호텔 부지가 있는데 관광객들이 걷기에 불편합니다.
지난 17일 오후, 여수시청을 찾아 "자산유원지 내 호텔부지가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고 말하자 시 담당 공무원이 말합니다.
"그 땅은 박람회 지원시설로 승인을 받았다. 박람회 끝났는데 호텔 못 세웠으니 당초 목적이 사라졌다. 때문에 '실효(失效)'된 사안이다. 여수시 방침은 원상복구다. 여수에 호텔이 더 있을 필요 없다."
지난 2012년 8월 12일 여수세계박람회가 막을 내렸습니다. 자산유원지 내 호텔, 기초도 못 닦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시 도시계획과 박형욱 도시계획팀장은 "호텔을 세우기로 한 I업체 대표가 수시로 바뀌는 통에 공사를 이어가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마냥 늘어진 공사장, 박람회가 남긴 또 다른 모습입니다. 2008년 12월 30일 업체는 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합니다. 호텔을 세워서 박람회 찾은 외지인에게 잠자리를 제공할 계획이었죠. 하지만 4년이 흐른 2012년 8월, 업체와 시가 맺은 양해각서는 종잇조각으로 변했습니다.
시가 여러 업체와 맺은 양해각서를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와 각서를 채결한 당사자는 큰 권리를 갖지만 이행해야 할 의무는 거의 없습니다. 또, 각서를 체결한 지역은 업체가 권리를 포기하지 않은 한 다른 용도로 쓸 방법이 없습니다.
때문에 양해각서 남발은 시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 아닙니다. 특히, 양해각서는 다른 용도로도 악용되는데 경제력이 부족한 업체가 사업 자금을 금융권으로부터 대출 받기 위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박람회를 준비하면서 여수시는 이런 불평등한 각서를 곳곳에 체결해 놓았습니다.
호텔 짓는데 시는 터널 공사 추진, 급하게 서두른 박람회 탓
▲ 터널호텔 공사 업체가 종화동 해안도로와 오동도를 잇는 터널도 뚫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터널은 여수시가 돈 들여 뚫었습니다. ⓒ 황주찬
▲ 호텔부지위성사진으로 본 호텔부지입니다. 위성사진으로만 봐도 경치가 좋은 곳입니다. ⓒ 황주찬
업체는 그곳에 관광호텔과 가족호텔을 지을 생각이었습니다. 객실 수 186실로 지하 2층과 지상 10층짜리 멋진 호텔을 지으려 했는데 계획이 어그러졌습니다. 담당공무원 말을 들으니 하청업체에 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공사가 여러 번 중단됐답니다.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업체는 그곳에 어떻게 건축허가를 받았을까요? 오동도 옆 호텔부지는 허가받기 참 까다로운 녹지거든요. 허가 과정을 살펴보니, 업체는 박람회 지원시설인 호텔을 세우겠다는 명분이었습니다. 박람회를 준비하는 여수시는 숙박시설이 태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호텔 짓겠다고 나선 업체를 반길 수 밖에 없었죠.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업체는 호텔 건축 허가를 받은 후 느닷없이 종화동 해안도로와 오동도 잇는 터널을 직접 뚫어 시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유는 호텔 건립과 터널공사가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호텔 짓고 있는데 땅 밑에서 터널 공사를 하면 건물이 악영향을 미칠게 뻔합니다. 때문에 업체는 터널 굴착을 직접 하겠다고 나선겁니다. 이런 상황도 알고 보면 급하게 서두른 박람회 탓입니다. 터널 뚫을 예산을 빨리 확보해서 도로를 연결했으면 업체가 나설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업체 측, "여수시와 조직위원회가 큰 호텔 지으라 강요" 주장
▲ 종화동 해안도로종화동 해안도로입니다. 오동도로 이어지는 도로 옆 바다를 매립해 호텔 부지 공사현장 진입도로를 냈습니다. ⓒ 황주찬
▲ 팔각정과 수직절벽오동도 입구에서 작은 구릉을 오르다 보면 만나는 팔각정입니다. 더 올라가면 자산공원입니다. 팔각정 바로 아래로 수직절벽이 만들어 졌습니다. ⓒ 황주찬
업체는 터널 뚫고 호텔도 지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됐습니다. 결국, 터널 공사에 대한 부담을 느낀 업체가 시간만 끌더니 2010년 11월 19일 시에 터널 공사는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박람회가 열리기 전에 터널을 뚫어야 하는 시는 난처한 입장에 빠졌죠.
마음이 급한 시는 자체 예산을 들여 터널을 직접 뚫습니다. 시가 알아서 터널을 뚫었지만, 업체는 터널 굴착 때문에 내부 갈등이 크게 번진 상태였습니다. 시간만 까먹고 있던 업체는 2011년 11월, 당초 계획한 규모보다 절반 축소된 호텔 건립 계획을 시에 제출합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계획을 변경하던 업체는 결국, 박람회가 끝났는데도 호텔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21일 오전, 업체 관계자와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호텔 건립이 늦어지는 이유가 궁금해 물었더니 "사업 재개 하려고 준비 중이다"며, "당초 우리는 호텔 지을 생각이 없었다"고 말하더군요.
이어 그는 "빌라형 콘도를 만들 계획이었고 규모도 절반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2010년 당시 박람회 조직위원회와 여수시가 박람회를 대비한 숙박시설 확보가 급하니 큰 호텔을 지어라"고 말했답니다. 덧붙여 "지금이라도 설계를 변경해 빌라형 콘도를 만들겠다"고 말합니다.
여수시 도시계획과 담당자에게 이러한 업체 입장을 전달하니, 담당자는 이미 박람회가 끝난 상태라 원상복구만이 최선이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이도 최선일 수는 없습니다.
여수 대표하는 아름다운 곳 훼손, 책임지는 사람 없나요?
▲ 위험팔각정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인도 끝부분은 위험한 낭떠러지입니다. 간판이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 황주찬
▲ 호텔부지한려해상 국립공원이 시원스레 펼쳐진 곳에 호텔부지가 흉물스럽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진 왼쪽으로 팔각정이 보입니다. ⓒ 황주찬
업체는 국제적인 행사를 핑계로 쉽게 건축허가를 받아 놓고 정작 건물은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시간은 흘러 박람회는 끝났고요. 호텔은 땅만 파 놓은 상태입니다. 이 모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업체에게 모든 책임이 있을까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망가졌는데도 정작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업체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여수시 도시계획과는 자산유원지 내 호텔부지에 다른 시설을 세울 계획인가 봅니다. 또, 투자유치사업소는 박람회지원 특별법이 폐막 이후에도 이어질 예정이라며 좀 더 지켜보자고 말합니다.
건축과는 "업체가 제출한 호텔 건축 축소 계획 심의 결과 재심의 결정이 났는데 업체가 재심의에 필요한 서류를 내지 않고 있다"며 도시계획과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답니다. 시의 무책임한 행정과 업체의 수수방관 속에 자산유원지 팔각정을 오르는 관광객들이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습니다.
여수시는 국제적인 행사를 끝냈지만 여전히 박람회 지원시설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시 곳곳에 양해각서 채결한 흔적이 남아있죠. 흉물스런 호텔부지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박람회를 준비하면서 양해각서만 교환하고 공사를 미루고 있는 다른 지역의 거취를 결정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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