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발길을 돌리는 곳'이라니... 참 운치 있습니다
인생의 진리 깨닫게 되는 청양 장곡사를 추천합니다
▲ 장곡사장곡사 뒤편 언덕에서 본 장곡사 풍경. ⓒ 정도길
직장생활을 30년 넘게 하면서 8월 초, 중순경 이전에 휴가를 떠나 본 적이 별로 없다. 뜨겁게 햇볕이 내리쬐는 땡볕을 맞으며 억지 고생할 필요가 없기 때문. 그러나 올해는 예전과는 달리 8월 중순 짧은 이틀의 휴가로 집을 나서야만 했다. 팔순 어머니의 소소한 축하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가족 형제들의 모임으로.
충청지방에 비가 억수로 쏟아진 지난 13일. 당진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청양 칠갑산에 도착했다. 장곡사로의 여행은 오락가락하는, 때로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으며 가야만 했다. 습도가 높은 탓인지 후텁지근하다. 찝찝한 느낌은 일주문을 지나 숲속 길을 들어서니, 조금 나아진다. 장곡사 입구에 도착하니, 때를 맞춰 비는 그쳐준다. 시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울어대는 매미소리와 불경소리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 대웅전보물 제181호 장곡사 하대웅전. ⓒ 정도길
▲ 대웅전보물 제162호 장곡사 상대웅전. ⓒ 정도길
산 속에 포근히 자리한 장곡사. 신라 문성왕 12년(850년),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 전통사찰이다. 보편적으로, 절의 주 전각인 대웅전은 하나이건만, 이 절은 상·하대웅전, 두 곳으로 가람 배치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장곡사 상대웅전은 바닥이 마루가 아닌, 무늬가 있는 벽돌을 펴놓은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하대웅전도 그리 크지 않은 소규모 건축물인데도, 맞배지붕을 한 다포 방식 공포를 받쳐주고 있어, 그 어느 사찰 대웅전과 비교해도 아름다움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이 사찰 상·하대웅전 내 약사여래는 일념으로 기도하면 난치병이 낫는다는 가피력이 있어, 전국에서 많은 신도들이 찾아와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 대웅전장곡사 하대웅전 모습. ⓒ 정도길
절 마당에 들어서자 포근하다. 사방으로 배치된 전각은 잘 짜여 있어 포근함을 더해준다. 자주 찾는 절이지만, 절터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왜일까? 대웅전 앞 우물가에서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런데 바가지 옆엔, 동전과 종이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놓여있다. 물 한잔 보시에 동전 몇 개를 놓고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 보시물 한 모금 떠 마시고, 동전 몇 개를 얹어 놓았다. ⓒ 정도길
전각을 구경하며 발길을 옮기는데, 안내 문구 하나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그대의 발길을 돌리는 곳.'
사찰에서는 스님이 거처하는 곳이나, 수도하는 공간에는 신도들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말로 간단히 '출입금지'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데, '그대의 발길을 돌리는 곳'이라. 참으로 부드럽고 무엇인가 느끼게 하는 정감이 넘치는 표현이다. '발길을 돌린다'라는 뜻은, '멈추거나 자제'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대의 발길을 돌리는 곳, 과유불급의 진리를 깨달아
▲ 과유불급그대의 발길을 돌리는 곳 ⓒ 정도길
'그대의 발길을 돌리는 곳'은 비단, 사찰의 이 곳뿐일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발길을 돌려야 하는 곳은 곳곳에 많다는 생각이다. "정도가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이라는 말과 같이. 적당한 선에서 멈췄다면 그때까지 이뤘던 것은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하는 욕심 때문에 전부를 잃어버리고 마는 인간세계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불가에는 탐(貪·탐욕), 진(瞋·성냄), 치(痴·어리석음)라는 세 가지 독을 말하는 삼독이라는 것이 있다. 삼독도 그 어느 선에서 발길을 멈춰야 하고, 흔히 말하는 물질욕·명예욕·권력욕도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 하리라. 그래야 그나마 이뤘던 것도 잃지 않을 터.
▲ 대웅전보물 제181호 장곡사 하대웅전. ⓒ 정도길
'그대의 발길을 돌리는 곳'에서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았다. 죽비를 한 대 맞은 기분으로, 잠시 화두에 빠져들고야 말았다. 매일같이, 매시간,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잠시나마 깨닫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눈을 뜨니 개운하다. 경내 출입을 금지하는 곳이 아닌, 또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경내를 한 바퀴 도는 내내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숲 속 언덕에 자리한 삼성각. 삼성각은 한국 불교 사찰에서 독성각·산신각·칠성각 등 삼신을 모신 전각을 말한다. 절에는 부처와 보살을 모신 본당과 삼신을 모신 삼성각을 두는데, 삼신은 불교 본래의 신앙 대상이 아님에도, 언제 어떤 연유로 같이 두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열심히 기도 중이라, 조용히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 장곡사연한 연두색 숲 속 사이로 본 장곡사 풍경. ⓒ 정도길
짙은 녹색이 아닌, 아직까지 연두색 빛을 띤 나무 이파리 사이로 보이는 장곡사 가람은 조화롭고 아름답다. 언덕에서 꽃망울을 막 틔우기 시작한 상사화 몇 그루.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내렸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 가까이 가니, 인기척을 느꼈음인지 내려앉지 않고 자리에 맴돌기만 한다. 한 동안 숨을 멈추고 기다린 끝에, 겨우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있었다. 사소한 것이라 할지 몰라도, 자연에 동화됨은 인내가 있어야 하는 법을 배웠다.
▲ 고추잠자리장곡사 경내 언덕에서 고추잠자리와 한 동안 함께 놀았다. ⓒ 정도길
충청남도 도립공원인 칠갑산 서쪽에 자리한 장곡사는 국보 두 점과 보물 네 점 등 국가지정문화재와 지방문화재 한 점이 있다. 국보로는 제58호 철조약사여래좌상 부 석조대좌(상대웅전 안치)와 제300호 장곡사미륵불괘불탱이 있다. 보물로는 제162호 장곡사 상대웅전, 제174호 장곡사 철조비로사나불좌상 부 석조대좌(상대웅전 안치), 제181호 장곡사 하대웅전 그리고 제337호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하대웅전 안치)이 있다. 지방문화재로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지정된 장곡사 설선당이 있다.
▲ 일주문장곡사 일주문. ⓒ 정도길
사찰 여행에 있어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이러한 국보급 보물과 지방문화재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다보니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다시 검색하여 미완의 공부를 마쳐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실물을 제대로 관찰하고 머리에 새긴다면, 진한 감동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을 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남 거제지역 신문인 <거제타임즈>와 블로그 <안개 속에 산은 있었네>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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