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못지 않은 선택, 웃음 필요하다면 이걸 보라
[리뷰] 극단 여행자의 연극·이윤기 선생의 <한여름 밤의 꿈>
▲ 요정 왕 오베론과 여왕 티타니아(책 <한여름 밤의 꿈> 중) ⓒ 달궁
올해는 주로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극으로 감상하고 있다. 연극은 우리 형편상 사치에 속하는지라 자주 접하지 못하지만, 연초에 예술의 전당에서 했던 삼인극 <햄릿>을 워낙 재미있게 봐서, 이번 여름에 명동예술극장에서 하는 <한여름 밤의 꿈>도 보기로 했다. 한 가족 3인 이상이 관람하면 30% 할인을 해주고, 가족 중 청소년이 있으면 청소년 할인도 해주기에 이번 여름, 떠나지 못한 피서 대신이라 생각하며 예약했다.
▲ <한여름 밤의 꿈>이 상연되고 있는 명동예술극장 ⓒ 정민숙
주인공들과 요정 티타니아가 몹시 아름다웠다. 이야기 전개의 원인이 되는 인도인 아기도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알아듣기 쉬운 영어 대사는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대사가 감미로워 닭살 돋는 듯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지만, 읽기만 하면 음유시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두 번째로 한 일은 달궁 출판사에서 펴 낸 <한여름 밤의 꿈> 책을 읽는 것. 고(故) 이윤기 선생님과 딸 이다희씨가 함께 옮긴 책이다. 셰익스피어 희곡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밑바탕에 깔아두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신화 이야기에 해박한 옮긴이는 아주 작은 것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친절하게 풀어 설명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북유럽 신화를 아이들과 함께 독서토론으로 장기간의 시간을 가지고 접했는데, 덕분에 이해가 수월했다.
운명이 얽히고설킨 사각관계
▲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세 쌍의 연인(책 <한여름 밤의 꿈> 중) ⓒ 달궁
이윤기는 셰익스피어가 설명해 놓지 않은 행간의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야기의 처음과 끝은 테세우스와 히폴뤼타 앞에서 끝난다. 요정들의 왕과 왕비인 오베론과 티타니아는 부부싸움을 하다가 인간들의 사랑싸움에까지 관여하게 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부부싸움에서 원하는 대로 결론이 나지 않은 오베론이 부하요정 퍼크를 시켜 사랑에 눈이 멀게 티타니아에게 장난을 치는데, 오베론이 있는 숲 속에 사각관계(한 여자를 두 남자가 사랑하고, 그런 남자를 또 한 여자가 사랑하는 관계)로 얽힌 인간들이 등장해서 그 장난에 얽히게 되는 이야기다.
그 장난이 가능한 것은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꽃 덕분이다. 에로스가 화살로 서쪽나라 처녀왕을 겨눴으나, 그 화살은 처녀왕을 명중시키지 못하고 서쪽나라의 작은 꽃송이에 꽂혔다. 화살을 맞는 순간 진홍빛이 된 이 삼색 제비꽃의 꽃잎 즙을 짜서 잠든 사람의 눈꺼풀 위에 바르면, 남자든 여자든 잠에서 깨어 처음으로 눈에 띄는 상대를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 극단 여행자가 <한여름 밤의 꿈> 연극이 끝난 후 인사하고 있다. ⓒ 정민숙
헤르미아는 아버지가 정해준 정혼자 데메트리오스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그 나라의 지도자인 테세우스에게 아버지 말을 듣지 않는 딸에게 처벌을 내려달라고 한다. 테세우스는 아버지의 말대로 정혼자와 결혼을 하지 않으면, 사형을 당하거나 평생 수도원에 격리된 채로 살아가라고 한다. 그날 밤 헤르미아는 사랑하는 뤼산드로스와 도망가기로 하고, 데메트리오스를 짝사랑하는 헬레나에게 그 사실을 말한다.
헬레나가 데메트리오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고자질하고, 데메트리오스는 사랑하는 헤르미아를 찾기 위해 그들이 만나기로 한 숲으로 가고, 헬레나도 그를 따라간다. 그 네 사람 사랑을 요정 퍼크는 방향을 잘못 잡아 묘약을 엉뚱한 사람에게 눈꺼풀에 발라놓는다. 가슴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헤르미아와 뤼산드로스를 갈라놓고, 짝사랑으로 번민하고 무시당하던 헬레나는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사랑으로 오히려 멸시와 모욕을 느낀다. 자신들의 사랑이 진자인지 가짜인지도 모른 채 열정을 쏟는 뤼산드로스와 데메트리오스도 불쌍해 보인다.
그런 와중에 테세우스의 결혼을 축하하려는 아테네 시민들로 구성된 연극 팀이 숲으로 들어와 연극 연습을 할 때 그 중 한 명인 직조공 보톰에게 요정 퍼크는 당나귀 머리를 씌워 동료들을 도망가게 한다. 왕비 티타니아는 당나귀 보톰에게 사랑을 느껴 온갖 정성을 다 쏟으며 보살핀다.
오베론과 티타니아가 부부싸움을 하게 된 것은 인도 왕실의 꽃미남 소년 때문이다. 시종 삼으려고 데려온 그 소년이 한 눈에 반할 정도의 꽃미남이라 질투가 난 왕은 그 아이를 견습기사로 봉하고 왕의 시종을 삼으려고 했으나, 왕비가 그 소년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나귀 보톰에게 반한 왕비는 그 꽃미남 소년을 왕의 시종으로 내줬다. 왕은 자신의 원하던 바를 이루자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진정한 사랑은 이어주고, 짝사랑은 쌍방향 사랑으로 이어줬다. 잠을 자고 일어난 왕비와 사람들은 한바탕 꿈을 꾼 것처럼 생각하고, 테세우스의 집에서 테세우스와 히폴뤼타, 헤르미아와 뤼산드로스, 헬레나와 데메트리오스, 세 쌍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다. 보톰과 아테네 시민들은 퓌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를 연극으로 올리고, 극이 끝난 후 모두 잠자리에 들 때 오베론과 티타니아는 요정들과 함께 그 집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린다.
공부하고 가서 보면 더 좋을 <한여름 밤의 꿈>
<한여름 밤의 꿈>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위와 같다. 그러나 이윤기는 우리가 이렇게 간단하게 셰익스피어 작품을 대하면 그 작품의 맛을 모른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풀어내면서 인물들을 설명한다.
"테세우스와 히폴뤼타: 테세우스는 절반은 역사적 인물, 절반은 신화적 인물이다. 역사적인 인물 테세우스는 흩어져 있던 아티카 지방 주민을 아테네로 통합하여 하나의 도시국가를 만든 영웅이다. 그는 아테네 시민이 두루 누릴 통일된 명절도 제정했는데 이것이 바로 범 아테네인들의 명절인 '판아테나이아', 즉 모든 아테네인들 축제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양궁 경기가 열렸던 '판아티나이코' 경기장은 바로 이 명절 행사가 열리던 곳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테세우스는, 군주제를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지향한 최초의 통치자이기도 하다. 플루타르코스의 저 유명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역사적인 인물들을 둘씩 짝을 지어 서로 비교한 책인데, 이 책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영웅이 바로 테세우스다. 신화적 인물 테세우스는, 미궁으로 들어가 소머리에 사람의 몸을 지닌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애인 아리아드네가 준 실꾸리를 이용해서 미궁을 빠져나온 영웅이다.
히폴뤼타는 여인 전사들만 산다는 아마존 나라의 여왕이다. 히폴뤼타는 헤라클레스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헤라클레스가 해낸 12가지 어려운 일 중 마지막 열두 번째가 바로 '아마존 여왕의 허리띠 빼앗기'였는데, 헤라클레스 신화에 따르면 히폴뤼타는 헤라클레스와의 싸움에서 목숨을 잃고 허리띠를 빼앗긴 것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테세우스 신화에서는 죽은 것이 아니라서 시대적으로 몇 년 뒤지는 테세우스 신화에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테세우스가 아마존족과 싸울 때 여왕이 히폴뤼타로 나온다."(이윤기가 옮긴 <한여름 밤의 꿈> 6~10쪽)
이윤기는 테세우스 신화를 알아야만 셰익스피어가 써놓은 대사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래동화나 이야기는 이름도 우리식이라 듣고 이해하기도 쉬우며, 다른 사람에게 그 내용을 전달할 때도 별로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써 놓은 희곡의 등장인물들은 이름도 어려운데, 그 이름만으로도 알아야할 배경 지식이 아주 많다. 아는 사람은 무척 재미있을 것이지만, 그 지식을 모르는 사람은 대사가 겉도는 듯한 어려움을 느낄 것 같다.
▲ <한여름 밤의 꿈> 가비오베론 왕의 우리나라 등장인물인 도깨비 왕인 가비. 그런데 그 역할이 다르다. ⓒ 정민숙
특히나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다. 이번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은 8세 이상 이긴 하지만, 그 대사나 내용은 역시 중학생부터가 무난해 보이고, 사랑으로 가슴 아파 보거나, 환희를 느껴 본 사람이라면 꼭 볼 것을 권한다.
우리 말과 우리 장단, 우리 악기들로 음향 효과를 내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보톰역으로 나오는 '아주미'와 도깨비들의 우두머리 돗과 그 남편 가비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는 내공이 아주 깊다. 셰익스피어의 향기를 이렇게 쉽고 즐겁게 바꿔놓다니... 연출가의 역량이 돋보인다.
▲ <한여름 밤의 꿈>의 돗도깨비 여왕으로 등장하지만, 그 역은 도깨비들의 우두머리다. ⓒ 정민숙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충분한 연극. 명동예술극장에서 90분 동안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큰소리로 웃고 와서 그런지 나와 식구들의 얼굴 표정은 온화해 보인다. 기분도 좋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셰익스피어 작품의 훌륭함은 그 대사에 있다.
한바탕 실컷 연극을 보며 웃고 와서 책을 들고 대사를 음미한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현실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때, 자신도 모르게 그 대사가 툭 튀어나와 위로를 해줄 지도 모르겠다. 이 여름이 가기 전 이 두 작품(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 이윤기·이다희의 <한여름 밤의 꿈>)과 꼭 만나길 바란다. 같은 원작에서 나온 두 개의 다른 작품 비교도 아주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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