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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로 경연대회 여는 나라

[주장] 입학사정관제는 필요하지만 이런 식으론 안 된다

등록|2012.08.21 16:45 수정|2012.08.21 16:45
2004년 처음 도입돼 그동안 시범 시행되던 입학사정관제가 어느새 입시의 '주류'가 돼가고 있다. 올해 입시에서는 125개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를 채택, 정원의 13.5%인 4만7000명을 선발한다. 서울대는 전체 정원의 무려 80%를, 서울교대와 카이스트, 포스텍, 울산과학기술대 등은 100% 가까이를 이 전형으로 뽑는다.

처음 입학사정관제 도입 당시 나는 이 제도에 희망을 걸었다. 입학사정관제가 내건 '점수와 함께 사람을 보는 입시전형'이란 모토 때문에 그랬다. 교과부에서 발행한 <입학사정관제, 예약> 등 입학사정관제 관련 책들은 이 제도를 통해 교육 정상화를 이룰 수 있다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즉, 입학사정관제는 학생의 수치화된 점수만이 아닌 그의 생활환경과 성장배경 속에서 그 점수가 의미하는 바를 읽어내고, 현재 점수가 아닌 미래 가능성을 보는 진정한 입시 제도이며, 나아가 사교육을 무력화해 더 이상 소득격차가 교육격차로 고스란히 이어지게 하지 않을 수 있단 설명이었다. 

믿었던 입학사정관제의 '배신'

하지만 그것이 입학사정관제의 이상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수능시험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하며 나를 분노케 또 좌절케 한 것은 바로 텝스 등의 외국어 공인점수와 각종 대외 경시대회였다.

특히 현장에선 입학사정관제로 가장 '피 보는' 이들이 영어와 사회과 교사들이란 말이 있다. 영어 말하기 대회와 영어 토론대회, 모의유엔 등 각종 영어 관련 대회와 영어 공인점수 대비 때문에 영어과 교사들이 피를 보고 경제경시대회, 법경시대회, 증권경시대회, 모의재판, 모의국회 등 사회과 관련 대회 때문엔 사회과 교사들이 그렇다. 이런 대회들이 한둘이 아니고 여기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또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일선 교사들이 이들을 개별적으로 일일이 도와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아니 어떤 대회들은 중등 교사들의 전문성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 대회들과 관련해 사교육의 도움을 받는 아이들이 적지 않고 이를 나무랄 수도 없다. 또 법무부 주최 생활법 경시대회와 모의재판 대회의 경우 '사법연수원생들이 선호하는 아르바이트'란 얘기까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교육에서 지식 습득만큼 중요한 것이 교과, 비교과 관련 각종 활동이다. 그렇지만 입시제도의 변화에 발맞춰 등장한 이 대회들이 과연 '교육적'이기만 한 것인지 나로서는 정말이지 회의적이다. 그것이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중고생들의 과도한 스펙 경쟁에 대한 보고들이 이어지면서 몇 해 전 교과부는 중대한 발표를 했다. 그것은 입시에서 대학에 제출하는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대외수상기록과 외국어 공인점수는 일체 기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교과부의 결정을 비웃듯 여전히 대학들은 외부경시대회와 외국어 공인점수, 나아가 학교의 수준까지 입시에 주요한 요인으로 반영하고 있다. 외국어 공인점수와 외부경시대회성과들이 생활기록부에선 배제되는지 몰라도 대학들마다 따로 관련 자료들을 제출받아 평가하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자기소개서 6번 항목의 이름은 아예 '자기소개서 관련 증빙서류 목록'이다. 경시대회성과와 공인점수들을 표에 기재하고 실제 자료들을 첨부하도록 돼 있다. 연세대의 경우엔 '창의성/우수성 입증자료 요약서'에 역시 생활기록부에서 배제된 것들을 기재하게끔 돼 있다. 그래서 실제로 학교마다 또 전형마다 공인점수 몇 점 이상, 경시대회 수상 몇 개 이상 등의 커트라인 목록까지 존재한다.

또 자기소개서에 특목고, 자사고 등 소속 학교를 언급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응시생들은 "우리 학교는 외국어 관련 수업이 많아", "우수한 학생들 때문에 내신성적이 좋지 않아" 등의 문구를 통해 학교 정보를 녹여내는 편법 아닌 편법을 쓰고 대학들은 이 신호들을 놓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생활기록부 기재 제한이나 학교 정보 미기재 등의 교과부 대안은 그야말로 '순진한 발상'이거나 '눈가리고 아웅'이 아닐까?

학생들이 내 교과목과 관련해 스스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좋았던 나는 초임시절부터 신문반 지도나 모의재판 동아리 지도 등을 즐겨왔다. 또 토론대회나 사회경시대회 같은 교내 대회를 여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의 지도가 대입을 위한 스펙 경쟁에 일조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과연 이것이 진짜 교육인지, 내가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힘이 빠져갔다. 특히 자기소개서 경연대회란 대외 경시대회의 존재를 안 순간엔 더 그랬다.

'자기소개서 경연대회' 심사 기준은 대체 무엇?

올해 5월에도 고려대 캠퍼스에서 열린 '전국 고교생 자기소개서 경연대회'는 한국인문사회연구원이 주최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했다. 입학사정관제에서 자기소개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또 앞서 언급했듯 대학들은 경시대회 수상 실적 같은 스펙을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올해에도 이 대회엔 상당수의 학생들이 참가했다. 그런데 자기소개서에 관한 대회가 열리고 자기소개서와 관련해 상을 준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얘기일까?

경연대회를 열어 상을 준다는 것은 참가자들을 상대평가 해 우열을 가린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글쓰기 능력'이 우열의 기준이라면 나는 '자기소개서는 논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자기소개서의 목적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소개해 읽는 이가 나를 제대로 알게 하는 데 있다. 자기소개서가 글솜씨를 뽐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란 얘기다. 따라서 글쓰기 능력을 배제한다면 자기소개서로 우열을 가릴 것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참가자들의 삶 그 자체다. 그런데 몇 편의 우수 자기소개서들을 가려내 상을 준다니 그렇다면 상을 받는 아이들의 삶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삶보다 더 낫다는 것일까? 어떻게 누군가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삶보다 더 낫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는 걸까?

또 본래 입학사정관제가 무엇인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입학사정관제는 사람을 보기 위한 제도다. 수치화된 생활기록부 상의 점수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자기소개서다. '이 학생의 수학 점수가 이렇게 낮은 것은 낙후한 지역에서 아프신 부모님을 간호하느라 그런 거였구나, 이런 역경 속에서도 이만큼 점수를 올렸으니 사교육을 많이 받는 지역 학생들의 높은 점수보다 더 큰 의미가 있어'하는 식으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바로 자기소개서다. 그런데 그런 보조 도구로서의 자기소개서들만을 상대평가 해 상을 주는 게 대체 교육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한편 이렇듯 어이없는 이 대회 관련 안내문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본 대회 수상실적은 대입 전형 시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음'.

진정한 입학사정관제를 위하여

입학사정관제는 점수 위주 획일적 평가를 보완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다. 진정한 의미의 입학사정관제는 그렇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위험하다. 공인인증점수나 각종 대외 경시대회 성과를 항목화해 반영하는 것은 사교육 시장을 활성화시키며 어린 학생들을 과도한 스펙 경쟁에 내몰게 된다. 바로 그런 위험요인들 때문에 교과부가 생활기록부에서 관련 사항들을 기재하지 못하게 했던 것 아닌가. 그럼에도 대학들이 첨부자료들로 교과부의 대안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교과부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만 할 때다.

또 자기소개서란 그저 자신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지 '잘 써야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자기소개서 경연대회가 열리고 나아가 합격을 위해 자기소개서 대필까지 불사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왜곡된 인식 때문인 것이다. 학생의 진면목을 그저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면 자기소개서의 기능은 그것으로 족하다. 학생의 진면목을 그저 있는 그대로 평가할 수 있다면 입시의 기능이 그것으로 족하듯이.
덧붙이는 글 교육희망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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