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공부하는 로봇이 된 아이, 창발성을 뺏는 학원
오늘 오랜만에 한 지인을 만났습니다. 사업하던 사람이었지만, 한때는 오디오 마니아기도 했고, 기분 좋은 자리에서는 노래 몇 곡쯤은 사양치 않는 가수라고 해도 좋을 사람이었습니다. 한때 시작(詩作)에 몰두하기도 했고, 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서울 외곽의 한 작은 마을 마을회관 2층을 작업장으로 쓰고 있답니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공간이기도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신의 소소한 일들을 틀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제가 마을 어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하는 공간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작업실을 구할 형편이 될 때까지 기한을 두지 않고 무료로 쓰라고 했답니다. 환경이 더 평화로워져서인지 원래 동안이었던 얼굴은 훨씬 좋아 보여서 삼십대를 넘지 않은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쉰 살을 넘긴 그에게 이런 평화가 찾아온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잘 압니다. 20여 년간 회사의 CEO로서 사는 동안 심한 부침을 경험한 사람이었고 지금, 가정을 건사하는 경제활동은 부인에게 의탁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아들의 근황이 궁금했습니다.
"큰 아이는 올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문제에요. 대학에 다니면서도 일요일이면 마치 고등학생처럼 가방에 책을 가득 넣어서 도서관으로 가는 겁니다. 하루는 그 아이를 찾아가 보았어요. 도서관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들을 나무랐습니다. '지금 수학정석을 공부할 게 뭐냐? 놀아라. 책도 읽고 친구도 만나라. 아빠는 네가 스펙을 갖추느라고 4년간의 대학 시간을 다 보내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라고……. 공부만 했던 아이들이 공부 외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요. 그 공부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들의 친구들도 막연하게 공부만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사회가 아이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저도 그 말에 섬뜩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집의 둘째 아들은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습니다. 생각이 깊고 그 표현능력이 뛰어난, 누구도 그 아이의 그림 몇 점을 보면 천부적 재능을 확신하게 됩니다.
"둘째는 지금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미대를 가고 싶어 해요. 그래서 올해 들어 어쩔 수 없이 미대입시학원에 보냈어요. 최근 아이가 점점 생기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며칠전에 그 학원에 들러서 원장님께 아들이 그린 그림들을 보여 달라고 했어요. 그동안 아이가 학원에서 그린 그림을 보면서 저는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유롭던 아이의 상상력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원장님께 아이의 애초 창발성은 어디로 갔는지 물었습니다. 원장님은 정해진 시간에 과제를 수행하는 입시를 위해서는 이렇게 스킬을 익히는데 치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와 아들을 불러놓고 얘기했습니다. '너는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 아빠가 바라는 것은 단지 네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라고……. 학원 다니는 것을 그만둘 시기를 상의 중입니다."
문제는 '지역'이 아니라 '능력'이다
캐나다에서 31살 젊은이가 왔습니다. 자선운동을 하고 있는 강현석씨는 토론토에서 나고 자란 이민2세였습니다. 저는 그와의 잠깐 동안의 대화에서도 이 젊은이에게 매혹되고 말았습니다. 몬트리올에 있는 대학에서 영화와 디자인을 전공한 이 젊은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제3국의 빈곤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위해 그들의 자존을 회복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줄 곧 해오고 있었습니다.
- 대학을 졸업하고도 봉사활동만 하면 스스로는 어떻게 자립할 수 있나? 봉사를 하드라도 본인도 먹고 살아야하지않나?
"네! 굶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돈이 필요하면 세계 각국의 디자인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얼마 전에도 미국과 캐나다 회사의 일을 해주었습니다."
- 한국에 있으면서 어떻게 미국과 캐나다의 일을 수주할 수 있나?
"요즘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 호환되는 디자인 툴들이 보급되어있고 인터넷을 통한 통신도 자유롭습니다. 스카이프를 통한 현지 회사 팀원들 간의 그룹회의도 제가 있는 어느 곳에서나 가능합니다."
- 지금은 지역적 한계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만이 문제인 시대가 되었지. 사실 한국의 디자인 회사들도 옆방의 부원이나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자신의 책상에서 메신저나 스카이프로 하고 있으니 세계가 모두 한 사무실로 통합된 것이나 마찬가지지.
"맞습니다. 제가 일이 필요하면 인터넷에 공고된 수많은 일들 중에서 저와 맞는 일을 골라서 하면 됩니다. 북미뿐만 아니라 유럽과 남미의 일까지도..."
- 한국은 어떤 일로 왔나?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왔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했어요. 한국어도 배우지 않았고 한국이민자커뮤니티에도 참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점점 한국을 알고 싶더군요."
- 한국어를 공부한 뒤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자선활동에 참여해왔지만, 이제부터는 한가지 일에 몰두하고 싶어요. 병행해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싶습니다."
- 우리가 꼭 알아야할 언어다. 너의 건강한 생각과 실천을 지켜보겠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공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입니다. 예술은 창의성이 생명입니다. 뚜렷한 주관과 자신의 능력이 소용될 만한 영역을 찾아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캐나다 청년을 통해 목적으로서의 공부가 아니라 세상에 필요와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일들을 찾아 헌신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공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공간이기도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신의 소소한 일들을 틀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제가 마을 어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하는 공간입니다."
두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아들의 근황이 궁금했습니다.
"큰 아이는 올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문제에요. 대학에 다니면서도 일요일이면 마치 고등학생처럼 가방에 책을 가득 넣어서 도서관으로 가는 겁니다. 하루는 그 아이를 찾아가 보았어요. 도서관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들을 나무랐습니다. '지금 수학정석을 공부할 게 뭐냐? 놀아라. 책도 읽고 친구도 만나라. 아빠는 네가 스펙을 갖추느라고 4년간의 대학 시간을 다 보내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라고……. 공부만 했던 아이들이 공부 외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요. 그 공부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들의 친구들도 막연하게 공부만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사회가 아이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저도 그 말에 섬뜩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집의 둘째 아들은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습니다. 생각이 깊고 그 표현능력이 뛰어난, 누구도 그 아이의 그림 몇 점을 보면 천부적 재능을 확신하게 됩니다.
"둘째는 지금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미대를 가고 싶어 해요. 그래서 올해 들어 어쩔 수 없이 미대입시학원에 보냈어요. 최근 아이가 점점 생기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며칠전에 그 학원에 들러서 원장님께 아들이 그린 그림들을 보여 달라고 했어요. 그동안 아이가 학원에서 그린 그림을 보면서 저는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유롭던 아이의 상상력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원장님께 아이의 애초 창발성은 어디로 갔는지 물었습니다. 원장님은 정해진 시간에 과제를 수행하는 입시를 위해서는 이렇게 스킬을 익히는데 치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와 아들을 불러놓고 얘기했습니다. '너는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 아빠가 바라는 것은 단지 네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라고……. 학원 다니는 것을 그만둘 시기를 상의 중입니다."
문제는 '지역'이 아니라 '능력'이다
▲ 캐나다의 자선운동가, 강현석. 건강한 생각을 현실에서 실천하고 있는 주관 뚜렷한 젊은이를 만나는 것보다 더 신명나는 일은 없다. ⓒ 이안수
캐나다에서 31살 젊은이가 왔습니다. 자선운동을 하고 있는 강현석씨는 토론토에서 나고 자란 이민2세였습니다. 저는 그와의 잠깐 동안의 대화에서도 이 젊은이에게 매혹되고 말았습니다. 몬트리올에 있는 대학에서 영화와 디자인을 전공한 이 젊은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제3국의 빈곤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위해 그들의 자존을 회복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줄 곧 해오고 있었습니다.
- 대학을 졸업하고도 봉사활동만 하면 스스로는 어떻게 자립할 수 있나? 봉사를 하드라도 본인도 먹고 살아야하지않나?
"네! 굶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돈이 필요하면 세계 각국의 디자인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얼마 전에도 미국과 캐나다 회사의 일을 해주었습니다."
- 한국에 있으면서 어떻게 미국과 캐나다의 일을 수주할 수 있나?
"요즘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 호환되는 디자인 툴들이 보급되어있고 인터넷을 통한 통신도 자유롭습니다. 스카이프를 통한 현지 회사 팀원들 간의 그룹회의도 제가 있는 어느 곳에서나 가능합니다."
- 지금은 지역적 한계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만이 문제인 시대가 되었지. 사실 한국의 디자인 회사들도 옆방의 부원이나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자신의 책상에서 메신저나 스카이프로 하고 있으니 세계가 모두 한 사무실로 통합된 것이나 마찬가지지.
"맞습니다. 제가 일이 필요하면 인터넷에 공고된 수많은 일들 중에서 저와 맞는 일을 골라서 하면 됩니다. 북미뿐만 아니라 유럽과 남미의 일까지도..."
- 한국은 어떤 일로 왔나?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왔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했어요. 한국어도 배우지 않았고 한국이민자커뮤니티에도 참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점점 한국을 알고 싶더군요."
- 한국어를 공부한 뒤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자선활동에 참여해왔지만, 이제부터는 한가지 일에 몰두하고 싶어요. 병행해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싶습니다."
▲ 중국 서안의 인도에서 간략 한자(簡略漢字)인 간체자(簡體字)로 대체된 가운데에서도 전통 한자(傳統漢字)인 번체자(繁體字)자를 어른에게 배우고 있는 중국의 어린이. ⓒ 이안수
- 우리가 꼭 알아야할 언어다. 너의 건강한 생각과 실천을 지켜보겠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공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입니다. 예술은 창의성이 생명입니다. 뚜렷한 주관과 자신의 능력이 소용될 만한 영역을 찾아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캐나다 청년을 통해 목적으로서의 공부가 아니라 세상에 필요와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일들을 찾아 헌신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공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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