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꼭 진료한 후 처방해야 합니다
서울 페인트맨이 시골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법
페인트 회사만 15년 다녔으니 페인트맨이라 부른다고 누가 토를 달까. 이 시대에 직장인들 누구나 그렇듯 퇴직 후가 걱정이던 김혁씨. 그가 15년 페인트회사를 접고, 농촌도시 안성에 내려와 페인트 장사를 시작한 사연부터 재밌다.
후임자 구해 달랬더니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
본사에서 페인트대리점을 관리하던 김혁씨. 대리점이 전국에 있다 보니 시골도시까지 관리하고 살았다. 어느 날 그에게 안성 삼화페인트 대리점 하던 어르신이 부탁을 해왔다. 그 어르신은 그 자리에서 이십 수년을 페인트가게를 하셨다.
부탁을 받고 알아보려다 문득 든 생각. '그럼 내가 한 번 해볼까. 안 그래도 퇴직하고 나서 이후의 생활이 걱정이었는데. 이왕이면 미리 지금부터 자리 잡자. 이왕이면 모르는 분야보다 평생 알아왔던 분야로 발을 내디뎌 보자'. 이런 생각이 그와 그의 가족을 안성으로 인도했다. 서울가족이 일종의 귀촌을 하는 셈이다.
거기다가 농촌도시 안성엔 다양한 시골 손님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시골일수록 일찌감치 페인트 DIY 문화가 발달 되어 있음을 그는 알았다. 시골사람들은 자신의 집, 담장, 벽, 창고, 지붕 등을 자신이 페인트칠 하는 게 일상이다. 반면 도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자신이 하기보다 업자들이 해놓은 집에 살기 마련이다.
이렇게 작년 초에 장사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 정착하는 것도 전 주인 어르신의 도움이 컸다. 3개월 동안이나 지속적인 관심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단다. 웬만하면 점포를 팔고 나선 손 털어 버리기 십상인데 말이다. 참 특이하고 고마운 경우라 하겠다.
지금도 그 어르신은 장사가 잘 되는 지를 염려해준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아따. 내 먼 조카여. 잘 봐주더라고"라며 소개하고 다닌단다. 자신이 평생 장사한 그 자리가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르신은 아들 같고 조카 같은 사람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페인트도 진료가 끝나야 처방하는데
"파란색 페인트 줘"
"어르신 어디에 쓰실 건데유?"
"그냥 파란색 페인트 달라니까."
이렇게 무대포로 나오는 어르신을 만나면 김혁씨도 난감하다. 이럴 때도 그는 차근차근 질문한다. 어디에 사용할 건지, 주변 환경은 어떤지, 그 전에는 어떤 종류의 페인트를 칠했었는지 등. 이런 진단이 끝나고 나야 처방을 한다. 마치 의사가 진료가 끝나야 그에 맞는 처방을 하듯.
사람들은 이런 그를 답답해하기도 한다. 그냥 손님이 달라는 대로 주면 되지 뭘 그렇게 까지 하느냐면서. 장사 한 번하고 말 것도 아니고, 처음 시작도 전 주인 어르신의 도움을 받았으니 다른 어르신들께 돌려 드리고 싶기도 하고. 이런 이유로 그는 대충하는 법이 없다. 페인트 통이 여럿이면 어르신들 알아보기 쉽게 통에다가 매직으로 일일이 기록해주곤 한다. 저 페인트는 어디에 쓰고, 이 페인트는 어디에 쓰고.
한 번은 자신의 집이 아주 덥다는 어르신을 만났다. 그 집을 진단한 후 특수 페인트를 권했다. 그 페인트가 맞아 떨어져서 그 집이 아주 시원해졌단다. 그 후로 그 팔순 어르신은 장에만 오면 이 가게에 들른다고. 같이 귀촌한 김혁씨의 어머니와 친구가 될 정도로 서로 사이가 좋단다.
페인트를 친절하게 팔았더니 그게 고마워서인지 한 어르신은 오른손 그림을 그려왔다. 김혁씨 어머니의 손도 그려왔다. 그 어르신 나름의 감사의 방식이었다. 그는 이렇게 시골 어르신들에게 사랑받고 산다.
비수기와 성수기, 시골사람들 라이프스타일에 달려
의외로 장날은 비수기다. 시골 사람들은 장날엔 장보는 것에만 집중한다. 먹고 입는 것을 사는 것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장보고 나면 호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다. 계획을 세워 페인트칠을 잘 하지 않기에 미리 사다두는 것도 드물다. 필요한 당일에 사가기에 장날은 사지 않는다. 한마디로 장날은 페인트칠하는 날이 아니라 장보는 날이다.
뭐니 뭐니 해도 토요일 오후가 최고다. 그 시간에 사서 일요일에 페인트칠을 한다는 거다. 일요일에 어르신들은 집에 찾아온 자손들과 함께 칠할 수도 있다. 반면에 일요일 오후는 꽝이다. 일요일 오후에 페인트를 사면 월요일 오전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농촌도시에도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은 분주하다.
"요즘은 사람들이 인내심이 좋아졌어요.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죠."
무슨 이야기일까. 경기가 어려운 만큼 사람들은 페인트칠 계획을 세우는 걸 미룬다고. "내년에 하지 뭐"라며 참는다는 이야기다. 깔끔함을 미덕으로 아는 도시인들보다 농촌 특유의 털털함이 더욱 페인트칠을 미루게 만든다.
수도권 사람들은 친환경 소재의 페인트를 많이 찾는다. 그들은 페인트칠을 할 땐, 계획을 세우고 콘셉트를 정해서 추진한다. 반면에 시골 사람들은 오래 가는 거, 때 타지 않는 거, 전에 사용해오던 거를 주로 찾는다. 시골사람들은 생각났을 때 마음먹고 페인트칠을 하는 편이다. 페인트는 완제품이 아니라 반제품이라는 김혁씨. 페인트가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완성되는 완제품이 된다는 거다.
페인트는 자신의 밥줄이라는 그. 이제는 경쟁 체제가 심한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그. 앞으로의 계획은 '잘 먹고 잘사는 거'라고 말하는 그. 가족이 건강하게 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그. 이미 그는 뼛속 깊이 시골 페인트 가게 아저씨가 된 듯하다.
후임자 구해 달랬더니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
본사에서 페인트대리점을 관리하던 김혁씨. 대리점이 전국에 있다 보니 시골도시까지 관리하고 살았다. 어느 날 그에게 안성 삼화페인트 대리점 하던 어르신이 부탁을 해왔다. 그 어르신은 그 자리에서 이십 수년을 페인트가게를 하셨다.
부탁을 받고 알아보려다 문득 든 생각. '그럼 내가 한 번 해볼까. 안 그래도 퇴직하고 나서 이후의 생활이 걱정이었는데. 이왕이면 미리 지금부터 자리 잡자. 이왕이면 모르는 분야보다 평생 알아왔던 분야로 발을 내디뎌 보자'. 이런 생각이 그와 그의 가족을 안성으로 인도했다. 서울가족이 일종의 귀촌을 하는 셈이다.
▲ 김혁6평 남짓한 그의 페인트가게. 여기서 그는 시골 사람들과 어르신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 송상호
거기다가 농촌도시 안성엔 다양한 시골 손님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시골일수록 일찌감치 페인트 DIY 문화가 발달 되어 있음을 그는 알았다. 시골사람들은 자신의 집, 담장, 벽, 창고, 지붕 등을 자신이 페인트칠 하는 게 일상이다. 반면 도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자신이 하기보다 업자들이 해놓은 집에 살기 마련이다.
이렇게 작년 초에 장사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 정착하는 것도 전 주인 어르신의 도움이 컸다. 3개월 동안이나 지속적인 관심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단다. 웬만하면 점포를 팔고 나선 손 털어 버리기 십상인데 말이다. 참 특이하고 고마운 경우라 하겠다.
지금도 그 어르신은 장사가 잘 되는 지를 염려해준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아따. 내 먼 조카여. 잘 봐주더라고"라며 소개하고 다닌단다. 자신이 평생 장사한 그 자리가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르신은 아들 같고 조카 같은 사람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페인트도 진료가 끝나야 처방하는데
"파란색 페인트 줘"
"어르신 어디에 쓰실 건데유?"
"그냥 파란색 페인트 달라니까."
이렇게 무대포로 나오는 어르신을 만나면 김혁씨도 난감하다. 이럴 때도 그는 차근차근 질문한다. 어디에 사용할 건지, 주변 환경은 어떤지, 그 전에는 어떤 종류의 페인트를 칠했었는지 등. 이런 진단이 끝나고 나야 처방을 한다. 마치 의사가 진료가 끝나야 그에 맞는 처방을 하듯.
사람들은 이런 그를 답답해하기도 한다. 그냥 손님이 달라는 대로 주면 되지 뭘 그렇게 까지 하느냐면서. 장사 한 번하고 말 것도 아니고, 처음 시작도 전 주인 어르신의 도움을 받았으니 다른 어르신들께 돌려 드리고 싶기도 하고. 이런 이유로 그는 대충하는 법이 없다. 페인트 통이 여럿이면 어르신들 알아보기 쉽게 통에다가 매직으로 일일이 기록해주곤 한다. 저 페인트는 어디에 쓰고, 이 페인트는 어디에 쓰고.
한 번은 자신의 집이 아주 덥다는 어르신을 만났다. 그 집을 진단한 후 특수 페인트를 권했다. 그 페인트가 맞아 떨어져서 그 집이 아주 시원해졌단다. 그 후로 그 팔순 어르신은 장에만 오면 이 가게에 들른다고. 같이 귀촌한 김혁씨의 어머니와 친구가 될 정도로 서로 사이가 좋단다.
페인트를 친절하게 팔았더니 그게 고마워서인지 한 어르신은 오른손 그림을 그려왔다. 김혁씨 어머니의 손도 그려왔다. 그 어르신 나름의 감사의 방식이었다. 그는 이렇게 시골 어르신들에게 사랑받고 산다.
비수기와 성수기, 시골사람들 라이프스타일에 달려
의외로 장날은 비수기다. 시골 사람들은 장날엔 장보는 것에만 집중한다. 먹고 입는 것을 사는 것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장보고 나면 호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다. 계획을 세워 페인트칠을 잘 하지 않기에 미리 사다두는 것도 드물다. 필요한 당일에 사가기에 장날은 사지 않는다. 한마디로 장날은 페인트칠하는 날이 아니라 장보는 날이다.
뭐니 뭐니 해도 토요일 오후가 최고다. 그 시간에 사서 일요일에 페인트칠을 한다는 거다. 일요일에 어르신들은 집에 찾아온 자손들과 함께 칠할 수도 있다. 반면에 일요일 오후는 꽝이다. 일요일 오후에 페인트를 사면 월요일 오전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농촌도시에도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은 분주하다.
"요즘은 사람들이 인내심이 좋아졌어요.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죠."
무슨 이야기일까. 경기가 어려운 만큼 사람들은 페인트칠 계획을 세우는 걸 미룬다고. "내년에 하지 뭐"라며 참는다는 이야기다. 깔끔함을 미덕으로 아는 도시인들보다 농촌 특유의 털털함이 더욱 페인트칠을 미루게 만든다.
▲ 친환경인증마크친환경 인증마크는 이렇게 생겼다며 마크를 보고 친환경페인트를 사라고 일러주는 김혁씨. 그가 가리킨 쪽을 최대한 크게 카메라에 잡았다. ⓒ 송상호
수도권 사람들은 친환경 소재의 페인트를 많이 찾는다. 그들은 페인트칠을 할 땐, 계획을 세우고 콘셉트를 정해서 추진한다. 반면에 시골 사람들은 오래 가는 거, 때 타지 않는 거, 전에 사용해오던 거를 주로 찾는다. 시골사람들은 생각났을 때 마음먹고 페인트칠을 하는 편이다. 페인트는 완제품이 아니라 반제품이라는 김혁씨. 페인트가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완성되는 완제품이 된다는 거다.
페인트는 자신의 밥줄이라는 그. 이제는 경쟁 체제가 심한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그. 앞으로의 계획은 '잘 먹고 잘사는 거'라고 말하는 그. 가족이 건강하게 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그. 이미 그는 뼛속 깊이 시골 페인트 가게 아저씨가 된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지난 24일 안성 인지로터리에 위치한 김혁 씨의 가게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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