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노르웨이의 경마, 우리와는 이렇게 달랐습니다

[노르웨이, 문화보다는 자연이다⑦] 세계유산 브뤼겐

등록|2012.08.27 09:48 수정|2012.08.27 09:48

▲ 한자호텔 ⓒ 이상기


차에서 내린 우리는 브뤼겐 지역을 보기 위해 핀네고르(Finnegård) 거리로 걸어 내려간다. 왼쪽으로 레스토랑과 화장품·기념품 등을 파는 멋진 상가 건물이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자 오른쪽으로 한자호텔(Det Hanseatiske Hotel)이 보인다. 그리고 이 거리가 브뤼겐(Bryggen) 거리와 만나는 커브에 유명한 한자박물관이 있다. 1704년에 지어진 목조건물로, 한자 상인들의 회의 장소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모임도 갖고, 회의도 하고, 사교도 했다. 그들은 또한 식사도 하고 도제를 교육시키기도 했다. 그들은 회의도 하고, 식사도 하던 장소로 쇠츠투에네(Schøtstuene)라고 하는 공간을 마련했는데 우리식으로 말하면 식당 또는 주방이 된다. 그리고 그 옆에는 5층 짜리 석조건물인 상공회의소가 있다. 벽에 있는 숫자로 보아 1480년에 처음 지어졌고, 1712년 다시 지어졌으며, 1912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 같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브뤼겐을 둘러보다

▲ 한자 상공회의소 ⓒ 이상기


이 건물은 다른 건물보다 훨씬 더 화려해 보이는데, 그것은 르네상스 스타일로 짓고 그 위에 화강석으로 마감을 했기 때문이다. 이 건물에서 상인들은 업무를 보고, 회의를 하고, 증권을 거래했다. 그리고 그 옆 니콜라이 교회길을 지나면 브뤼겐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올드 브뤼겐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다. 올드 브뤼겐은 베르겐이 한자의 도시로 번성하던 수세기동안 심장이자 신경 역할을 했던 곳이다.

▲ 브뤼겐의 목조건물 ⓒ 이상기


여기서부터 브뤼겐 박물관 방향으로 옛 건물들을 즐비하게 나타난다. 적갈색, 갈색, 흰색을 띤 3층집들이다. 보이는 것만 해도 스무 채는 되는 것 같다. 이들 중 상당수는 1702년 화재 후 다시 지어진 건물로 12~14세기 북유럽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들은 현재 예술학교·공방·상가·박물관·카페·나이트클럽·기념품점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 로젠크란츠탑 ⓒ 이상기


이들을 지나 나는 로젠크란츠탑(Rosenkrantztårnet)과 호콘 홀(Håkonshallen) 건물을 잠시 바라본다. 로젠크란츠탑은 1560년대 베르겐을 통치했던 에릭 로젠크란츠에 의해 거주지 겸 성채로 사용됐다고 한다. 그러나 1944년 독일군의 침공 때 심각하게 파괴됐으며, 1966년 게르하르트 피셔에 의해 복원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호콘 홀이 있는 곳은 원래 베르겐 성이 있던 장소다. 13세기 왕이 된 호콘 호콘손(Håkon Håkonsson: 1217~1263)은 베르겐을 수도로 정하고 이곳 언덕에 왕궁을 건설하게 됐다. 그리고 공식적인 의식을 행하는 건물로 호콘 홀을 짓게 됐다. 지금도 이곳에서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가 가끔 열리고, 건물의 일부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박물관 뒤로 흰 천을 두른 마리아 교회가 보인다. ⓒ 이상기


이들 성채 건너편 드레겐(Dreggen) 지역에는 또 마리아 교회가 있다. 베르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100년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1408년부터 1766년까지 한자 상인들의 중심 교회가 됐다. 설교단은 후대인 바로크 시대 만들어졌다. 그리고 제단에 있는 세 개의 금장식 조각에는 성모자상이 표현돼 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중세말 작품이다. 그러나 현재 마리아 교회는 온몸을 흰 천으로 두르고 있다. 수리를 위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브뤼겐의 진정한 가치

▲ 브뤼겐 박물관의 복원된 상선 ⓒ 이상기


이제 나는 잠시 브뤼겐 박물관에 들른다. 이 박물관은 1976년 문을 열었으며, 1955년부터 1972년까지 브뤼겐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조사 결과 얻어진 출토품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12세기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건물의 기초를 옮겨놓았을 뿐 아니라 중세의 상선을 복원해 놓았다. 그리고 고대 북유럽 문자로 쓰여진 비문·도자기·일상생활 용품 등이 상설 전시돼 있다.

여기에 상선의 건조와 이를 통한 무역에 관한 자료가 시청각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브뤼겐이 항해술과 무역업을 통해 북유럽의 중심도시로 성장해 가는 과정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는 12세기 브뤼겐이 건설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다. 브뤼겐 박물관에서는 매년 연구총서를 발간하고, 서점·기념품점·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 올드 브뤼겐 지도 ⓒ 이상기


박물관을 보고 난 나는 이제 브뤼겐의 속살을 보기 위해 올드 브뤼겐으로 들어간다. 올드 브뤼겐은 도로명이 큰집이나 마당을 뜻하는 고르덴(-gården)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는 중세 이후 브뤼겐의 역사를 대변하는 건물과 유적이 대여섯 개 있다. 먼저 베르겐의 구시청(Town Hall) 건물과 와인판매점이 있다. 옛날 유럽에는 시청의 지하에서 와인을 팔곤 했다.

▲ 소망의 샘 옆 대구상 ⓒ 이상기


두 번째로 구시가 광장 안에 있는 소망의 샘을 살펴봐야 한다. 소망의 샘은 벨 저택의 끝 마당에 있다. 샘에는 새롭게 돌을 둘렀으며, 그곳에는 올랍 5세를 기리는 동판문자를 새겨 넣었다. 관광객들이 브뤼겐의 복원을 소망할 경우 이 샘에 동전을 자유롭게 던지도록 돼 있다. 그리고 이 샘 옆에는 나무로 만든 마른 대구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베르겐이 대구잡이를 통해 번성했기 때문이다. 대구는 합죽이처럼 입을 다물고 몸은 말라 비틀어져 있다. 길이가 7~8m는 돼 보인다.

소망의 샘 옆 엥휘에르닝엔 건물 끝에는 노르웨이 전통음식을 파는 브뤼겐 트락퇴르스테드(Tracteursted)가 있다. 트락퇴르스테드는 옛날 빵집과 식당으로 사용되던 건물로, 1708년 이래 베르겐 최고의 음식점으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음식뿐 아니라 내부 장식에서도 브뤼겐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엥휘에르닝엔 건물 중간에는 테타(Theta) 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독일군의 노르웨이 점령 당시 레지스탕스들이 저항을 벌이던 곳이다.

▲ 건물의 복원 ⓒ 이상기


올드 브뤼겐의 한쪽 끝 부 건물(Bugården)에는 또한 브뤼겐 예술학교(Kunstskole)가 있다. 그리고 그곳 지하실에는 아렌트 마이어(Arent Meyer) 창고가 있다. 이 건물이 유명한 것은 흰 돌로 지어진 벽 덕분에 1702년 브뤼겐 대화재 때도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지하 창고에는 중요한 기록물이나 가치 있는 물건·무기 등을 보관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특별한 경우에만 들어갈 수 있다.

이들을 보고 밖으로 나오다 보니 낡은 건물을 뜯어내고 새롭게 복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브뤼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 복원 프로그램은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가 복원과 보존이다. 브뤼겐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으로 수리·보수·유지·기록·조직을 포괄한다. 둘째가 교육을 통한 전문지식의 획득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프로젝트의 홍보와 정보의 확산이다.

▲ 건물 복원 프로젝트 ⓒ 이상기


그 첫째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 복원은 현재 기초 정비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기초로 흙을 채워 다지고 그 위에 바닥돌을 깐다. 돌 위에는 나무 판자가 깔릴 예정이다. 그리고 나서 벽체가 나무 기둥과 판으로 지어질 것이고, 그 위에 지붕이 얹어지는 순서로 일이 진행될 것이다. 이 사업은 노르웨이 삼림연구소·노르웨이 문화유산연구소·코펜하겐 국립박물관 등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토르게 어시장

브뤼겐을 벗어나면 길은 자연스럽게 항구와 토르게(Torget) 어시장으로 이어진다. 중간에 바닷가로 차카리아스브뤼겐(Zachariasbryggen)이라 하얀 목조건물이 보인다. 어부들의 조합으로도 사용되고 해산물 식당으로도 사용된다. 간판을 보니 바와 나이트클럽도 있다. 이곳 주변에는 우리식 좌판을 차린 시장 상인들로 시끌벅적하다. 게·새우·홍합·연어·대구·참치 등 해산물이 그득할 뿐 아니라 그들을 요리한 음식냄새가 진동을 한다. 외국 관광객을 상대로 한 바깔라우, 빠에야 등도 보인다.

▲ 토르게 어시장 ⓒ 이상기


함께 한 우리 회원들 중 일부는 이들 음식과 해산물을 사 먹는다. 아내와 나는 시장을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본다. 그리고 해변선착장으로 가 물 건너 브뤼겐을 다시 한 번 조망해 본다. 볼수록 정감이 간다. 이곳 선착장에서는 보트 투어가 출발한다. 나는 바다 쪽으로 멀리 눈길을 주고 난 다음 베르겐 관광정보센터로 간다. 이곳에서 나는 베르겐과 브뤼겐에 관한 여러 가지 자료들을 얻는다.

다른 문화유산은?

관광정보센터를 나온 아내와 나는 알메닝엔 거리로 발길을 돌린다. 알메닝엔 거리는 상업과 문화의 거리다. 이 거리의 초입에는 노르웨이를 빛낸 사람들의 청동조각상이 양각돼 있고, 거리 너머 저 멀리 요한네스 교회가 보인다. 이것을 보고 나는 길을 건너 생필품 시장건물 쪽으로 간다. 중간에 루드비히 홀베리(Ludvig Holberg: 1684~1754)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 홀베리 동상 ⓒ 이상기


이 동상은 욘 뵈뤼에손의 작품으로 1884년 이곳에 세워졌다. 그 이유는 그가 이곳 베르겐 근교의 파나(Fana)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1702년 베르겐 대화재 후 쾨벤하운에서 공부했고, 1704년 대학을 졸업한 후 전 유럽을 편력했다. 1716년 다시 쾨벤하운으로 돌아왔고, 이후 철학교수 자리를 찾았다. 1718년 홀베리는 풍자적이고 희극적인 자신의 문학적 자질을 발견하고 시와 소설 그리고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1722년까지 그는 런던·파리·로마 등을 방문하며 코메디(Commedia dell'arte)를 공부했고, 이후 모두 26편의 극작품을 쓰면서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넘어 유럽에 까지 이름을 날리는 극작가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바로크와 계몽주의 시대를 산 노르웨이-덴마크 출신의 대표적 작가인 동시에, 전 유럽적인 작가이다. 그는 말년에 덴마크의 쉬앨란트주 테르스뢰세(Tersløse)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죽었다.

▲ 베르겐 대성당 ⓒ 이상기


홀베리 동상을 보고난 우리는 12-13세기에 지어진 대성당을 찾아간다. 베르겐 대성당은 뷔외르빈(Bjørgvin) 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여기서 뷔외르빈은 베르겐의 옛 이름이다. 여기서 베르그와 뷔에르는 산을 뜻한다. 그리고 뷔에르 뒤에 붙은 빈은 초원 또는 목초지를 뜻한다. 이 성당에 대한 기록은 1181년에 처음 나타나는데 성인 올라프에게 헌정된 것으로 되어 있다.

호콘 4세(1204~1263) 시절에 불에 탄 후 1270년에 재건되었다. 몇 번의 화재를 거쳐 1463년 대성당이 됐고, 1623년부터 1640년 사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외관은 고딕양식이고, 내부는 1880년대 건축가 크리스티안 크리스티에 의해 중세풍에서 로코코풍으로 바뀌었다. 성당의 오르간이 특히 유명한데, 지금도 콘서트용으로 자주 연주된다.   

베르겐 경마장 이야기

▲ 베르겐 경마장 ⓒ 이상기


이들 문화유산을 보고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시내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진 베르겐 경마장(Travpark)으로 간다. 그곳 경마장 건물 안에는 사무실과 환전소·기념품점·휴게실뿐만 아니라 식당과 술집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 베르겐의 유일한 한국인 식당이 있다. 경상도 출신의 아주머니가 경영하는 식당인데, 여행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식당을 운영한다고 한다. 음식을 먹어보니 여행사들이 부탁할 만도 하다.

그런데 밥을 먹은 나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경마는 어떤 의미를 가지며, 경마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들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경마는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Sport)고 오락(Spill)이라고 한다. 경마가 오락이 되는 건 일종의 복권처럼 마권을 사고 배팅을 해 배당을 받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곳 경마장은 1985년 6월에 문을 열었으니 그 역사가 27년이나 된다.

▲ 경마용 마차 ⓒ 이상기


휴게소에서 바깥 경마장을 살펴보니 1000m 트랙이 보인다. 나는 잠시 나가 경기관람석을 살펴본다. 실내체육관의 관람석처럼 만들어졌다. 경마가 열리는 날 이곳에서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열광할 것이다. 오늘은 다행히 일요일이어서 경마가 없었다. 그들이 경마를 하는 방식은 말등에 타고 하는 우리의 방식과는 다르다. 이륜마차를 말에 연결하고 그 위에 앉아 말을 달리는 방식이다.

▲ 경마 그림 ⓒ 이상기


휴게실에 이륜마차 외에 사륜마차가 있는 걸 보니 아마 옛날에는 사륜마차 경기도 있었던 모양이다. 자료를 보니 2011년 6월 11일 순혈종 이륜마차 경기에서 크롬웰이 1분 11초 3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나와 있다. 다른 자료를 보니 경마 종목도 여섯 가지는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모든 게 노르웨이어로 돼 있어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점심시간을 이용, 노르웨이 경마에 대해 공부할 수 있어 좋았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