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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주는 안철수'도 생중계... 언제 말하나?

안철수 원장 잠행 두고 비판 목소리... "야권 관계 고려한 신중행보" 분석도

등록|2012.08.29 21:20 수정|2012.08.30 07:49

▲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열리는 후기 학위수여식에 참석하는 안철수 원장을 취재하기 위해 취재진 수십명이 몰리자, 안 원장이 학위수여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리 취재진을 만나겠다며 건물밖으로 나와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 권우성


▲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열리는 후기 학위수여식에 참석하는 안철수 원장을 취재하기 위해 취재진 수십명이 몰리자, 안 원장이 학위수여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리 취재진을 만나겠다며 건물밖으로 나와 기자들과 명함을 교환하고 있다. ⓒ 권우성


취재진 : 염색 하셨네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 염색한 적 없는데….

29일 안철수 원장과 취재진의 대화는 어색했다. 마치 소개팅 자리에서 남자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여자에게 던진 멘트가 헛다리짚을 때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그만큼 안철수 원장은 취재기자들과의 접촉을 피해온 셈이다.

이날 오후 경기 수원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학위수여식에 참석하는 안 원장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몰려든 것도 이 때문이다. 안 원장은 지난달 19일 저서 <안철수의 생각>을 내고 같은 달 23일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한 이후,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개적인 활동도 없었다.

안 원장은 이날 현안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잠시 카메라 앞에 섰다. 안 원장은 취재기자 10여 명에게 "제 담당(기자) 인가요? 정말 고생 많다"며 명함을 건넸다. 안 원장이 기자들과 명함을 주고받은 장면은 YTN을 통해 생중계됐다.

이는 안 원장이 입을 닫은 상황에서, 안 원장의 대선 출마를 궁금해 하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나선 언론사가 빚은 촌극이었다.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가 넉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안 원장은 언제 국민에게 자신의 뜻을 밝힐까?

▲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열리는 후기 학위수여식에 참석하는 안철수 원장을 취재하기 위해 취재진 수십명이 몰리자, 안 원장이 학위수여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리 취재진을 만나겠다며 건물밖으로 나오고 있다. 안 원장 뒤는 대변인인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 ⓒ 권우성


안철수 원장, 저서 출간 후 잠행... "국민과 만나는 단계"

안철수 원장은 <안철수의 생각>에서 "제 생각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일을 해나가겠다"며 "제 생각에 동의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후 안 원장이 공개적인 행보를 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그는 철저한 비공개 행보를 고수했다. 안 원장은 유민영 대변인을 통해 이메일로 자신의 동정을 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난 5일 안 원장은 이틀 전인 3일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을 관람했다는 사실을 유 대변인을 통해 취재진에게 전했다. 그는 당시 "매우 고통스러운 이야기다, 차분하게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안 원장은 국민의 의견을 듣는 기회를 가질 예정이라는 입장도 내놓았다.

안 원장이 처음으로 대중 접촉에 나선 사실도 비공개였다. 그는 13일 서울 가회동 김영사에서 독서모임 회원들과 만났다. 이튿날 유 대변인이 일부 기자들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다. 16일 안 원장이 전북 전주에서 학계 등 전문가들과 만나 지역 현안 등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사실도 그날 저녁 유 대변인을 통해 취재진에게 전달됐다.

23일에는 날짜를 특정하지 않은 안 원장의 동정도 전달됐다. 유 대변인은 "(안 원장이) 이번 주에 은평구에서 참여예산을 실천하는 30여 명의 교육 프로젝트 관련자들의 경험과 비전에 대해 듣고, 이후 자활센터를 방문해 10여 명의 자활 근로자들과 사회복지사들의 고충과 의견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이날 춘천 시니어클럽의 시장형 사업장인 '우리기름 방앗간'을 방문해 수익 사업에 참여하고 계신 어르신들과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참기름 시연도 해주셨다, 이 자리에는 60~70대의 어르신들이 10여 분 참석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안 원장의 이 같은 행보에 관련, 유 대변인은 "(안 원장이 대중을 만나면서) 정말 좋은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분들이 말씀을 잘해주신다, 하지만 카메라가 온다고 하면 (그런 분위기는) 불가능하다"며 "안 원장은 지금 단계에 충실하다, (안 원장이) 국민과 만나 이야기를 듣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고 전했다.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열리는 후기학위수여식에 참석하는 위해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권우성


"야권까지 고려해야 하는 안철수, 고민 깊을 수밖에"

대선출마 입장 표명을 미룬 채 잠행에 들어간 안철수 원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적지 않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조용하게 국민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안철수 원장의 선의를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국민들이 안철수 원장의 생각과 입장을 알고 싶어하는데, 국민 소통 도구인 미디어를 피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안 원장이 야권과의 관계를 고려해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안 원장이 공개적인 행보를 하고 대선출마 입장을 밝힐 경우 야권 후보 단일화라는 판이 깨질 수도 있다,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며 "시기를 검토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문제는 시간이 안 원장이나 야권 편이 아니라는 데 있다. 박근혜 후보가 광폭행보를 보이는 와중에 민주통합당 경선은 파행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 원장과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단일화를 하더라도 대선에서 질 수 있다"(28일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고가 나온다. 안 원장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는 이유다.

민주진보진영 원로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23일 "(안 원장이) 일단 나와서 판을 키우고, 돕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최근 논의가 확산중인 시민연합정부론을 제안한 김헌태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안 원장이 대선출마 선언을 통해 민주진보진영과 함께 하는 로드맵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안철수 원장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29일 취재진이 안 원장에게 "대국민소통 행보를 하고 있는데, 어떤 얘기를 많이 듣느냐?"고 묻자, 그는 "도움 되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다, 다음에 종합해서 말하겠다, 그런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취재진이 "언제쯤이 되겠느냐?"고 재차 질문하자, 안 원장은 "저도 모른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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